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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Feb 15. 2024

쏘다니던 길에서 답을 찾다

신정동 만춘원



그건 썩 괜찮은 티저였다. 거창하지도 번거롭지도 않을 딱 그 정도 에너지였다. 말끔히 정리하는 하루가 어찌나 필요했는지 벌써 반나절이 지났다. 언제나 뭔가 대단하기만을 바라던 기대는 아니니까. 단지 떠올리는 것만으로 무해하지 않다. 무엇을 먹게 될지 어디로 갈지 모르는 발걸음이 분주할수록 기분은 무뎌졌다. 그런 와중에도 쏘다닐 기운은 있었는지, 어줍지 않은 하루가 되지 않기를 바랐던지, 횟수도 그렇지만 끼니를 챙기는 것 같은 일에는 점점 더 소홀했다. 무엇보다 멈춰서 가만히 두었다 돌보지 않는 그런 분주함을 즐긴다. 하루 온종일을 무언가에 몰두하는 일이란 어쩌면 순간에는 가장 이로운지 몰라도 한참 지나고 나면 미처 챙기지 못했던 아쉬움이 밀려온다. 여전히 몰입은 하지만 충분히 움직이고, 조금씩 두드려보면서 하나둘 정리한다. 멈추거나 고이던 시간들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그들은 멈춘 듯 움직이기를 반복한다


머릿속 선택지는 다양했다. 그럴수록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으려는 마음만 남고 모두 지워졌다. 굶으려던 하루가 대신 대견해하는 것 같았다. 무슨 정신에서였는지 걷기로 한 길보다 더 크게 돌아 멈춰 있는 GPS 위치 표시를 봤다. 가기로 했던 길도 아니었는 데다 슬슬 배가 고팠다. 시간은 여섯 시를 향해 가고 있었고 이 정도 공복은 익숙하다. 갈증은 시간이 타들어가고 있음을 알렸고 이젠 더 이상 선택을 미루거나 도망치는 것만으론 하루가 부족했다. 결정을 해야 했다. 너무 무겁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혼자 앉기에 스스럼없이도 좋을 그런 공간과 메뉴, 말하자면 단출한 담백함을 바랐다. 진중함이 그다지 먹힐 것 같지 않은 느지막한 주말 오후이자 아쉬움의 끝을 부여잡는 얼마 남지 않은 저녁나절이다. 머지않아 정신을 차리면 눈을 밝히는 햇살이 드는 창을 애석하게 원망해야 할 무거운 아침이 찾아온다. 쉴 새 없이 손써야 할 일 없이 혼자 앉아 고기를 구워 먹는 일과는 달리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좋을 기본 메뉴가 필요하다




그건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는 없다. 규정하기로 하지 않았지만 발걸음은 그 같은 사실을 말해준다.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흔하지 않게 작정했었는지, 별다른 계기 없이 떠오르는 이름만으로 가고 있는지 말이다. 너무 흔한 이름이라서 가끔은 직접 만들어 보겠다는 어김없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다지 새롭지도 않은 익숙한 발상이다. 하지만 반대편엔 유려한 기름칠로 시뻘겋게 물든 가게에 앉아 오롯이 한 그릇을 훌쩍 비워내는 부족한 낭만은 흉내 낼 수 없다. 코에는 기름진 향수가 남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주방에는 팬보다는 타종해야 할 것 같은 거대한 웍이 불을 짓누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눈으로 먹는 안주는 그만하면 충분하다. 조금 어설픈 단무지를 곁들인다거나 요리를 조금 내어놓는 곳이라면 함께 나오는 자차이, 한 입에 씹어 삼킬 수 있는 크기로 썬 양파와 춘장을 쌈장 고추장 찍듯 찍어 리프레시를 하는 재미는 또 한 편의 재미가 되어주었다가 든든하기를 바라는 식사라는 본업의 꾸밈없는 후원이 된다.




의심 없는 확신을 조금 거두어내고 조금의 망설임을 뒤로한 채로 붉은빛이 감도는 눈망울을 한 뒤 어설프지 않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처음의 시선이 가득한 눈빛이 몇 차례 확인되면 ‘편하신 자리에 앉아’라는 멘트를 확인하고 피해가 되지 않으면서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아늑한 테이블을 고른다. 입구를 등지고 가능한 주방이 눈에 들어오는 천혜의 요새다. 가족단위로 둘러앉은 사람들과 동네를 벗어나지 않고 가벼운 차림으로 방문한 몇몇의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를 하고 좁지만은 않은 공간을 충분히 채워 넣고 있었다. 사람 냄새가 날 만큼 쌓아 올린 초록색이거나 투명한 병들이 널브러지지 않고 꼿꼿했으며 따르는 소음 또한 너무 과하지 않게 적당했다. 얼굴은 얼큰했지만 점잖으려 애쓰는 분위기, 식사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술자리를 품어내는 편안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이곳을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쯤 자리에서 부르지 않고도 주문할 수 있는 첨단 시스템은 손가락을 분주하게 만들었다. 


단일 메뉴, 단일의 주류, 오래도록 고민할 필요 없다. 변주를 줘야 할까. 첫인상에서 평범함보다 강렬함을 뒷짐 지고 약간의 유난을 더해보자. 호기심을 자극해 두면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마주하던 일상에서 분주할 필요 없이 더뎌지고 무뎌지던 하루의 끝을 조금은 설레는 시간으로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넓은 자리에서 물드는 단지, 한 시간 남짓 되는 찰나의 시간 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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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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