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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Jan 21. 2024

나는 감자국이로소이다

소문난성수감자탕



감자(국)에서 자랐다. 강원도 사람이냐고? 아니다. 서울 태극당 인근(지금은 버거킹이다) ‘감자탕'의 기원을 주장하는 ‘감자국'을 무형문화재, 혹은 전통이라 해야 할 만큼 만들고 있는 동네에 살았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직장인들의 소울푸드이자 대학생들의 임시 거처인 감자탕은 감자국으로도 불렸다. 기원과 어원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 누구도 명쾌하게 정리하지 못했지만 혼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해 보인다. 무엇으로 부르는지 뭐가 중요한가. 끓이다 깊어지면 그만인 것을. 아무튼 난 곳은 조금 다르지만 자란 곳에는 누군가에게 부여받은 타이틀, ‘서울의 3대 감자국’ 근처였다. 시장통은 진작부터 낡아있었고 도심과 그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이렇게 오래된 유물 같은 가게가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 드라마였다. 막 스무 살이 되던 그때를 시작으로 ‘감자탕’, ‘뼈해장국’이라는 이름에 자주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땐 무슨 맛인지 몰랐다. 손으로 뜯지 않으면 먹을 이유가 없는 거라고, 먹을 줄 모르는 거라는 말도 들었다. 감자가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대체할 만한 시래기나 깻잎처럼 다른 재료가 대신하기도 했다. 스타일의 차이까지 차츰 섭렵해갈 즈음 여전히 뚜렷한 매력을 찾기란 혼란스러웠다. 어쩐지 손을 써야하는게 번거롭고 밥까지 볶아 비벼 그을리는 데에는 적지 않은 인내심을 필요로 했으며 지금만큼 소주로 적시는 재미를 미처 알기 전에는 그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인지, 깊이 공감하지는 못했다. 애써 그런 척을 하며 삼삼오오 몰려가 넓고 낮은 냄비에 푸짐하게 올려 얹은 돼지뼈와 속속들이 튀어오르는 국물 속에서 달라지는 부재료들이 먼저 알맞게 익기를 기다리곤 했다. 



추운 날에는 그런 이유로 국물이 생각난다면, 더운 날에는 진득한 부르스타의 화력을 작게 하여 은근히 끓여 내는 동안 적당히 차갑게 나오는 막걸리라거나 맥주와도 유독 잘 어울렸다. 기본 안주가 되는 깍두기를 부지런히 씹으면서 말이다. 한편 반찬 같기도 했다가 녹진한 메인메뉴였다가 자극적인 밥이 되어주었다. 감자국에 오래 머무르는 동안, 가게의 형태는 시장에서 멀끔한 거리의 깔끔해진 모습으로 달라졌고, 감자국이라 부르든 탕이라 부르든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로 세대는 교체되었다. 자극적인 맛으로 점철되기에 이르러 김치의 맛은 흐리멍덩해졌고 어디에선가 먼 곳에서 누군가 찾아오는 날이면 꼭 한번 들르던 전통은 사라졌다. 정겨움이 더 컸던 걸까. 이제 본연의 매력을 진정 알게 되었을 무렵이었을까. 흔들리는 진실에 맥없이 동네를 떠났다. 무던하던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백종원 선생님이 다녀가셨을 수도 있고, 누가 정해 놓은 타이틀에 걸리는 지역과 장소, 동네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최선과 최고의 맛은 분명 아닐 거라는 환상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퇴근 직후 빠르게 흘려보내야 하는 ‘간술’에서도, 점심엔 따로 먹고 싶어 이름을 조금 달리 부르는 뼈다귀 해장국으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국물만큼 녹진하게 끓여 내고 싶은 하루를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감자탕 중자 이상의 든든한 연료로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붉지 않은 주황빛 국물의 매력은 대체로 MSG를 연상케 하는 날카로운 자극이었지만 건강함을 마주할 때면 이렇게 시작해 오래도록 끓이면 언젠가는 발현되고야 마는 점철된 자극을 기대하며 화력을 높이기도 했다. 건강한 맛을 선호하게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기도 했고, 결과적으로는 곁들이는 기본 찬의 익힘 정도의 새기가 만족을 판가름하는 정확한 척도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제야 비로소 감자국 출신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성수동에서 누가 소문낸 건지 이제 뻔히 다 아는 사실이지만 지금 기나긴 줄이 완성되기 전에도 여러 번 들렀다. 테이블에 앉았던 그날들의 무리들은 그게 무슨 맛이었는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극에 점철된 맛도 아니었고 좋아하는 슴슴함까지도 아닌 중간 어디쯤에 팽팽한 균형이었다. 회전율을 위한 속도 전쟁은 치열했고, 사무실에서 나와 먹는 쓴 입맛에도 퍽 인상적이었으니 시간이 흐른 뒤에 찾아갔을 땐 그땐 미처 알지 못했던 자극의 경이로움이 시작됐다. 적당히 모든 것이 갖춰진 안정감 있는 플레이로 이어져 소주를 주문하는 속도는 더욱 거세졌다. 이렇게 아래쪽으로 열이 올라온다는 사실이 혼란스러워 보이는 인덕션스러운 화구에 재밌어하면서 시끌벅적한 성수동 골목 한가운데 가장 북적이는 유동인구 사이에서 누구보다 얼큰한 테이블 하나를 끓여 냈다.   





EDITOR

: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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