紛失

시린 바닥은 대리석이라 느껴질 만큼 차가웠다

by HERMITAGE

일부를 보고 나서야 아래가 멀리까지 보이는 유리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왜, 전망대 같은 높은 건물에 올라가면 높이를 실감하게 끔 만들어 놓은 유리로, 바닥이 훤히 보이는 그런 구조였다. 사방은 흰색의 가죽, 그러니까 소파 형태로 둘러져 있는 구조로, 원한다면 의자처럼 걸 터 앉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고, 바로 아래쪽에 앉았다.


그것은 매우 사적인, 정사각형 형태였다. 둘러싸인 흰색의 帳幕(장막) 아래, 움푹 팬 그 자리에서, 처음엔 막연히 차가운 바닥인 줄만 알았지만 실은 유리 바닥으로 되어 있는 사각형 안의 사각형의 형태. 왜, 그러니까 先史遺蹟地(선사유적지)나 과거 垈地(대지)의 집터 같은 곳으로見學(견학) 가면 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였다. 사람들이 한강 둔치에 보이지 않은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딱 그만큼만 떨어져 자리를 펴고 앉아 있는 것처럼, 둘러싸인 어떤 것들에 어느 정도 가려져 있으면서, 동시에 위쪽으로는 창밖에서 안으로, 또 앉아서는 밖으로 볼 수 있는 창이 보이는 위치였다.


조금 떨어진 다음, 멀리서 보게 된다면 거대한 정육면체 같아 보였을 것이다. 가장 바깥쪽에는 생각보다 더 기다란 통유리로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블라인드는 보이지 않았고, 특급호텔의 객실의 거대한 창처럼 ’ 틴팅’ 작업 같은 것으로 마감되어 있는지,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다.


서성이는 수많은 사람들은 언제쯤 자리가 나올지를 苦待(고대) 하기라도 하듯 분주하게 움직이며 들여다보는 걸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작은 心術(심술)이 났다. 이 자리를 계속해서 지켜야겠다고 조심스럽게 다짐했다. 반드시 나가야 한다거나, 당장이라도 이곳을 벗어나야 하는 게 아니라면, 실제론 그랬어야 할지라도 상관없었다. 주변에 앉아 있던 세 사람은 모두 익숙한 얼굴이었다. 한 명은 쉴 새 없이 이곳 상황을 설명하는 공통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혼자만의 사색의 시간을 가졌으며 마지막 한 명은 조금 멀찌감치에서 멍하니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그때쯤 바닥에 조금 까슬하면서 부드러운 정도의 러그가 깔려 있음을 그래서 흰색의 가죽 재질로 된 소파 형태의 자리가 아닌 유리로 된 바닥에 앉아 있는지 알게 되었다. 불편하지 않아서였을까. 앉아야 할 자리가 움푹 파인 그곳이 맞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이런 비슷한 인테리어 구조에 대한 기억은 압구정 거리 한복판에서 몇 달이었지만 갤러리 같은 외관 디자인에 거대한 규모, 옥상 테라스에는 흰색 가죽의 정사각형 형태의 공간을 처음 본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은 그때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지금은 터만 남아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공간이 되었지만 그곳에 내부에는 정사각형 형태로 가운데는 안이 훤히 보이는 통창으로 사방이 둘러져 있고 안에선 거대한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건물 한쪽에 놓여있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장막처럼 둘러진 좌석이 여러 개 난간 쪽으로 줄지어 서 있었다. 기억을 주섬주섬 정리하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이제 자리를 다른 누군가에게 물려줘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일행은 두 명이 더 늘어나 총 여섯이 되었는데, 나중에 온 둘 또한 관계가 없던 사람은 아니었다. 모두가 옷가지와 짐을 챙겨 일어나려던 찰나, 있어야 하는 무언가 하나가 빠졌다.


모두 자신의 것을 챙겼지만, 자리를 離脫(이탈)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곳에선 이미, 모두가 대화를 통해 자리에서 벗어나기로 했고, 이어지는 다음 장소에 대한 논의가 끝난 상태였다. 당혹스러움에 주변을 헤집고 다녔지만 비슷하게 닮아 있는 것 말고는 찾지 못했다. 보고 싶은 대로 보이는 효과는 생각 속에만 있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머릿속에서 꺼내 보이게 만들었다. 대화는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방법으로의 접근이 필요해 나온 새로운 시선이었다. 이곳을 관리하는 책임자를 찾아 상의해보자는 것이었다.


책임자는 멀리 있지 않았다.




주의를 살피자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行色(행색)이 풍기는 분위기는 주-욱 이곳이 주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느낌과 달리,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그래서 옮기다 멈춘, 시선은 그가 선 곳에 닿았다.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적지도 않은 일부만을 紛失(채색) 한 것처럼 눈에 띄게 입혀져 있었다.


눈길이 쫓아 닿은 곳엔 바위 같은 얼굴 위, 하얗거나 검은 수염이 뺨의 대부분에 듬성듬성 나 까칠해 보였고, 일반적으로 동그랗거나 네모난 것이 아닌 독특한 프레임, 가벼운 소재로 처리되어 있어 걸쳐 쓰는데 그다지 부담을 주지 않을 무게의 안경을 올려 쓰고는 아, 장발의 머리에 오래되어 보이는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애써 누른 양 갈래의 곱슬기가 있는 머리칼은 바닥을 향해 아무렇게나 가리키고 있었고 북적이는 인파에도 별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때때로 한 번씩 무언가를 아주 잠깐씩, 쳐다볼 뿐이었다. 시선에서는 사람들을 물 흘려버리듯 아주 잠시만 머물렀고, 그가 눈 안에서 금방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몇 번의 작은 움직임이 있은 뒤 사람들 무리에서 유유히 빠져나갈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제야 그를 붙잡아 세웠다.


“저기, 제 구두가 없어졌는데요”



그는 나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퉁명스러운 표정에 또 다른 방법이자, 새로운 시선이라 생각했던 처음으로 돌아가 그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홀로 채색되어 있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올라 본능적인 확신을 멈출 순 없었다.


‘조금은 더 강한 포지션을 취해야 한다.’




시간이 없었다. 나머지 일행 다섯 중 한 명만이 남았고, 모두 약속된 장소로 이동했다.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조급한 마음을 억눌렀다. 가기로 한 그곳은 사적인 공간일까, 공적인 공간일까. 그러고 보니 이 세계의 대부분은 무채색으로 되어있으며 그런 사실을 이제 와서야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숨을 쉬고 있다,’ 인지하지 않아도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는 것처럼 인지가 시작되면 부자연스러운 헤아림이 시작된다.不調和(부조화)는 언제 어디에서든 일어나고 있다.


무언의 대답이었다. 외부적인 요소만으로 알아차릴 수 있고 크게 다르지 않게 맞아떨어졌다. 불쾌감이 올라왔지만, 그가 本來(본래) 퉁명스러운 사람일 수 있으며, 원인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으니 침착해야 했다. 이성적이어야 한다. 억누른 감정을 비집고 나온 차가운 이성은 어떤 문제에서 멀어지는 데 최대한 멀리 끌고 나갈 힘이 있다. 지금, 그 힘이 필요하다. 감정에 둘러싸인 나는, 내가 아니다. 충동에서 도망쳐, 감정과 떨어트려 분리하지 않으면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을 수 없다.


모두 각자 문수(文數)가 다른 각자의 다섯 켤레의 신발을 신고 먼저 다른 곳으로 가버린 사실 때문에 계속해서, 이 짧은 순간에도 속으론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사실, (十九文半)십구 문 반의 구두가 사라진 것에 恨歎(한탄) 했다. 당장 맨발로 걸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모두가 한 켤레를 준비할 때, 그것이 사라져 버린 적은 없었지만 불안은 그전에 비교적 가벼운 다른 하나를 더 집어 들게 만들었다. 본능적으로 그랬다. 끝이 있었기 때문에 시작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닌 것처럼. 시작이 있을 땐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외면한 체 시작하는 모든 것처럼.


“같은 걸로 사드릴게요, 그럼 되죠?”




다시 한번 유유히 빠져나가려고 한다. 같은 것. 가격, 연락처 같은 어떤 신상에 관련된 비슷한 정보 하나 없이, 시간 정도는 확인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끝이 난 것처럼 말하고는 그걸로 됐다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찾을 수 없을 거라는 본능적 不安(불안)에 물러설 수 없어, 빠져나가는 그를 쫓았다. 그렇게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기왕 시작한 거 끝을 봐야겠다.’ 멈춰 세운 그는, 전보다 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속에서 넘쳐흐르는 화를 참고 있어서였는지 지속된 煤煙(흡연)으로 태운 숨에서부터 올라온 煤煙(매연)이 느껴졌다.


“알았어요. 내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 여기 이 자리에서 봐요.”


:紛失 마침


Hermitage

@big_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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