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으로부터 생각해 낼 수 없을지라도 인식할 수 있는 追想(추상)
뇌리에 남은 건 旣視感(기시감) 뿐이었다.
몸속 어딘가에 자라난 작은 독립된 深淵(개체)가 꿈틀거렸다. 그건 매우 이질적이어서 어느 순간이 돼서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곧 그걸 어떤 방식으로 든 분출해야 한다는 것도. 손을 날카로운 것에 베이게 하거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심박수를 어지럽힌다거나 하는 돌출된 흥분상태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모호하지만 어렴풋이 피어났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숨이 찰 만큼 벅찬 설렘으로 자라났다. 조금씩 적응을 해 나갈 땐 어딘가 묵직하게 잘 익어가는 과일처럼 안에서부터 깊숙이 자리 잡았다.
익숙하고 낯설게 자리 잡은 기억이 追想(추상)을 만들어냈다.
지금이 여러 해 중 어디쯤이라는 것도 되물었지만 금방 대답할 수 있었다. 짤막한 대화를 높은 건물의 꼭대기까지 기어이 끌고 왔다. 아무것도 모르고 왔을 테니까 상황을 처음부터 설명해야 했다. 어디에서부터 어디쯤에 있지만 그렇게 되었다고. 어떤 이유로 사과를 하자마자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바뀌었다. 뒤섞인 감정의 과잉이 오랜 시간 원망으로 쏟아졌다. 그걸 전부 안고서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이제 와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지금 당장 어디라도 갈 수 있다는 게 대답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방법을 터득해 여기까지 왔으니 대답은 충분히 되었으리라는 착각 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얼마간의 대화가 오갔고, 주변으로부터 또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멀리서 조금씩만 보이던 사람. 무뚝뚝한 표정에서 감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많은 상황들에 대해 자세히 들어 알고 있을지도 모를 표정들이었다.
'주목받는 걸 두려워 나 했던가.'
어떤 상태로 이 안에 들어와 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긍정적인 반응은 기대하지 않았다. 짐작은 했지만, 싸늘함은 등줄기를 식은땀으로 서늘하게 만들었다. 눈 밑에 짙은 어둠의 시선에서 ‘경멸’이라는 말을 쓰기에 무리 없어 보였다. ‘침착해야 했다.’ 휩쓸린다면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처량함이 熟知感情(숙지감정)이 되어 돌아온다. 호흡을 길게 가져가기로 했다. 내공 있는 대처였다. 수면 아래 발길질은 생존에 관련된 일이다.
미묘한 떨림이 이제 막 시작했다. 조금씩 解凍(해동) 되는 무언가처럼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가 흘러나왔다. 기나긴 여행에 끝에서 어딘가로 가야만 하는 벌어진 시간의 틈이 나타났을 때였다. 하늘 위에 구름은 구름 아래 하늘인지 땅 위에 하늘인지 모호했다. 땅을 딛고 선 바닥 위로 하늘에 구름이 거꾸로 내려왔다. 소스라치진 않았지만 그만큼 차가운 난간 벽을 붙잡고 심호흡을 시작해, 전부 세 번을 생각하고 두 번째에 아래로 떨어졌다.
고층 건물 아래로 몸을 던진다.
처음엔 高空(고공) 비행이었다.
초록색 빛의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고 엄청난 양의 빗방울이 폭우가 되어 쏟아져 내리는 아열대 기후 아래 바다. 물의 온도를 확인하기 전에 날아올랐다. 세찬 빗물과 중력은 날갯짓을 거부해 深淵(도약) 하지는 못했지만 멀리 서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深淵(심연)의 바다에 고꾸라지기 전에 탈출했다. 바람에 몸을 실을 정도의 움직임만으로.
다시, 시간의 틈에서 빠져나와 도착한 곳에는 어떤 진실을 찾아 발버둥 쳤고 마음만 급했다. 가능한 많은 것들을 설득해야 했고 아주 자세히 얘기하면서 시간을 넘나들 수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예컨대 일어났던 일들을 줄줄이 늘어놓으면서 설명한다거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자 답변이 그랬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기억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말해주지 않으면 모를 수밖에 없는 일들을 단번에 알아맞히기도 했으며
'이는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정황상의 矛盾(모순)은 실제보다 이전이었고 반대라면 이 후보다 더 멀리 있는 미래에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가능한 熱辯(열변)을 토해 어긋난 시간을 고쳐 썼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차츰 누그러졌다. 경계심 같은 것들에서 멀어져 몰입한 무의식 속 망각이 간략하게 저장되어 있는 기억을 재해석하면서 착각과 혼란 대신 최초의 未視感(미시감)을 맞이한다.
Hermitage
@big_be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