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달

볕이 잘 들지 아니하는 그늘진 곳

by 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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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뭐가 그렇게 잘못됐는데”




납득할만한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였냐 되묻는다면 당장 생각나는 말이나 뚜렷한 문장은 없었다. 단지, 그냥 좀 내버려 뒀으면 했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고, 어떠한 사건 때문에, 반드시 因果(인과)에 걸맞은 호응을 해야 한다거나 일방적이던 그렇지 않았던, 그러한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解明(해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곱씹어 보면 대체 뭐가 그렇게 잘못된 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 아니라 그러기로 하지 않았던 것인데,‘끼우지 않았냐’라기보다, 또는 ‘끼우기를 주저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라기보다, 잘못이라고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기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하는 건지, 할 수는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미 그전에 결론은 정해져 있었는지 모른다. 다만, 거기에

가까이 가야 할 명분이 필요해 때를 그때로 정했을 뿐이었던 것을, 얼마간, 꽤 적지 않은 시간을 붙들고 있었다. 납득할 만한 이유 따위를 만들어야 하고, 늘어놓는 건 辨明(변명) 밖에 되지 않았다. 진심은 늘 어려웠다. 眞僞(진위)가 뭔지, 어느 걸 골라야 할지 모호했다.



해가 들어올 땐 암막 커튼을 굳게 여몄다.

언제나 直射光線(직사광선)이 부담스러웠다.




오래전부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익숙해서, 차라리 가장 어둡게 칠 할 수 있는 쪽에 섰다. 어둠 뒤에서 무겁고, 두꺼워서 당장은 벽의 뒷면까지로 돌아 들어가는 게 쉬워 보이지 않았지만 결국엔 그렇게 했다. 몇 번의 총성을 들어야 했고, 波長 (파장)이 꽤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걸 볼 수 있었다. 뜨거운 햇살보다 나은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를 택했다. 해가 떨어지면서, 잠시나마 숨 막히던 시간 틈에서 호흡을 고르고 조금은 어긋나 벗어났다. 짙어진 그늘만큼, 보고 싶은 것들만 더 환하게 빛 췄기 때문에 어리숙하게 가려진 것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수면 아래였다. 숨을 참고, 시선을 내리깔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外面(외면)이거나, 그럴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 아니라, 이유를 잃어버렸다.


걷다 본 출렁이던 다리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멀리서 훑어만 봤지 그것도 몇 분, 머물기 무섭게 빠져나갈 때뿐이었다. 다가설수록, 반대편에선 보이지 않던 희미한 불빛이 파도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곤 언제 그랬냐는 듯 쉽게, 아무렇지 않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빛을 따라 걷는 길 끝에 뭐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대답 없는 이유에서 찾을 건 없었다. 길이 점점 좁아지는 것을 느꼈다. 여기에선 무언가를 타고 갈 수도, 어떤 僥倖(요행)도 바랄 수 없었다.



모두가 달리는 도로 위 한복판에서, 절반 이상을

걸어온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앞으로 걷는 일뿐이다.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어려운 한 편, 새까맣게 보이지도 않는 일렁이는 강물이 얼마큼 저편에 있는지 노려본다. 추측할 수 없는 수온이, 여긴 어딘가에 상류이면서 하류인, 다른 곳과 아주 폭이 다르지만은 않은 일정한 움직임,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멈춰 있는지 모를 인상이다. 가만히 숨을 죽이고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듯 비슷한 결을 만들어 내며 제자리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무한한 반복적인 움직임, 빛은 누군가에 의해 밝혀지고 있을 뿐, 없어도 이미 놓아져 있는 길을 걷기만 하고 있다. 끝까지 가본 일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더 있었을까. 멈춰서, 다시 한번 아래를 내려다본다.


상반되는 양쪽의 한가운데에서, 이미 지어진 건물이 낡아가는 소리, 새로운 시멘트가 육중한 철골에 발리다 내는 삭막한 소리의 중간에 와있다. 그 아래 아무 생각 없이 깔려있는 강의 한복판, 지도상 한가운데에 애매하게 멈춰, 눈부신 점멸등을 마주하지 않고서는 건널 수 없는 길에서, 막 바뀐 수동 신호에 반대편에서 날아들 이유 모를 광속의 차에 치이는 상상을 멈추고 다시 절반의 걸음을 걷는다. 제자리로 가는 일이, 원치 않았던 짧기만 한 밤을 지나 새벽이 오면 아침은 다시, 일상으로 빨려 들어가기에,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Hermitage

@big_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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