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그곳에서 마주한 가장 작고 연약한 존재
살아 움직이는 死體(사체)가 묵묵히 갈아 넣은 영혼이 생각보다 많이 모여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건 다행스럽게도 자발적인 의지에서였다. 영혼을 갈아 넣고 돌려받은 대가 로그 동안 가졌던 것 중 가장 크고 비싼 걸 골랐다. 손이 떨리는 줄도 몰랐다.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주는 상 이라던가 혹은 이걸로 어떤 생산성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합리화는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게 만들었다.
여러 가지 것들을 눈에 밟히는 대로 주워 담다 보니 값싸게 돌려받은 대가가 초라해 보였다. 허무하다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딱히 아깝지도 않았다. 소유했다는 해본 적 없음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에 익숙했다. 이전부터 작은 것 하나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꾸준하게 무덤덤한 척하며 목표치에 다다를 때까지 얌전하게 기다려야 했다. 삐져나오는 흥분과 기대감을 감춘 채.
그런 일상의 반복은 재미없고 활기차지도 않으며 그저 좌절하지 않으려 애써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버텨 내며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대개 작은 것들이었다. 얻어낸 것들의 크기가 크지 않았지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되었다. 부탁하지 않아도 되고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비록 겨우겨우 만들어낸 아주 자그마한 세상이었지만 그나마도 온전히 혼자만의 것이라는 것에 위안이 되었다. 조금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아쉬운 소리를 하기는 죽어도 싫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다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도와달라고 말하는 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잘못은 이미 혼자 너무 큰 잘못으로 관대하지 못하게만 받아들이는 탓일까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는 게 참 어렵다. 대부분은 누구보다 잘못한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런데 상대방에게는 이 과정이 꼭 필요하다. 미안하다고 하는 말은 한 번 더 자책하기 위해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없이 손목이 묵직하기에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게 되었다. 언제부터 그랬던 건지 아주 잠시, 골똘히 생각해 봤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두꺼운 옷을 껴입고 어디라도 괜찮다는 듯 걷다 지쳐 걸 터 앉은 곳에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숨을 고르는 동안 손에 꽤 무거운 걸 쥐고 있었다는 걸 그냥 알게 되었다.
그렇다 해도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처음부터 해본 적이 없어 앞으로 해야 할 타이밍을 놓친 것 같았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걸 설득하다가 되려 더 모르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또 언제부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줄곧 혼자가 편해 불편함에서부터 도망치 듯 달려갔던 운동장은 언제고 텅 비어있었다. 어린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간 운동장은 유난히 더 차갑게 크고 휑하게 넓은 느낌이었다. 길을 잃기 직전만큼만 익숙해지던 이전의 풍경들은 더 낯설게만 느껴졌고 없던 사람들마저 오고 가는 모습이 텅 빈 바탕에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운동장에서 뒤 뜰로 천천히 걸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다. 뒤뜰에서 무당벌레 한 마리를 잡았다. 주황색 천으로 비를 피할 수 있게 마련된 가림막 같은 것이 덮어져 있는 곳에 바닥은 주황색이었다. 축축하고 습한 기운이 지면 위 공기에까지 가득했다.
집 근처 놀이터에서 발견한 것보다 훨씬 크고 색도 특이한 놈이었다. 방수 천에 반사된 빛으로 껍질의 색깔이 유난스럽게 달라 보였다. 특이한 걸 골랐다는 생각에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되돌아 갔다. 조심한다고 힘을 꽉 쥐던 손을 들고 걷다가 생각했다.
집까지 가서도 조금 전처럼 살아있을지는 모르겠다.
만약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이제 곧 죽게 될 테니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래도 혹 시라 도안 전하게 집에 도착하게 되어形態(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면 무당벌레들만 모여있는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야 한다. 거기에는 크기도 제각각이고 패턴의 모양과 개수도 조금씩 다르지만 살아있거나 또는 죽어있는 무당벌레들이 모여있는 방이다.
무당벌레는 주황색과 빨간색으로 단지 두 가지 종류였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껍질색과 같은 주황색, 나머지는 붉은색 액체가 묻어난다. 큰 놈은 작은놈에 비해 3배가 크다. 그런데 작은놈은 큰 놈에 비하면 5배는 작다. 그렇게 크게 두 종류다. 나머지 공간엔 공허와 텅 빈 그런 종류의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처음엔 분명 빈 공간이었지만 다시 열어보니 꽤 많이도 모여있다. 하나둘씩 쌓여 가던 게 확인해 보지 않았던 시간만큼 공포감으로 채워져 있다.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빛을 보지 못하는 동안 그 안에선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문을 열자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감정이 흔들렸다. 일렁이던 속에서 멀미가 난다고 생각할 때쯤 조금씩 걸음이 빨라진다. 거기에서 어떤 얘기도 통하지 않는다는 건구태여 말을 보태지 않게 되는 것이고, 이 모든 것 들을 혼자 겪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걸 보면 한편으론 서글프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 같아 금방 체념한다. 잘못된 건 아무것도 없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 자리가 그리고 매 순간이 많은 것들을 바꿔놓기도 하니까.
그런 와중에도 소음으로 가득 차 있던 머리만큼은 고요하다. 가벼움이 필요할 땐 단순해지는 것만큼 간단한 방법은 없다. 한 번 더 얽매일수록 눈에 보이는 세상엔 영원한 것이 없음을 떠올린다. 기대고 싶을 때 멈춰 서게 되고 눈이 감길 땐 한 번 더자세를 고쳐 앉아야 한다. 그저 잠시 들리기만 했을 뿐 언제고 아무 곳에도 온전히 도달한 적은 없었다. 공허함은 목적지에 이르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아주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그걸 깨닫는다는 건 얄팍하기만 했던 깊이를 아주 조금은 알아차렸다는 증거였다.
먼발치여야만 했다. 그토록 원했던 적당한 거리감은 너무 가까워지지 않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갑작스러움은 대단하지도 그다지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평범하고 무난히 조용하게 흐른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에게서 너무 깊이 몰입하고 있다. 감정에 골이 지나치게 깊을 땐 과몰입 하게 되고, 그게 위험하다는 걸 충동적으로 알게 됐을 땐 깊은숨으로 가다듬어지지 않는다. 고쳐지지 않는 것에 모든 걸포 함해야 한다면 두려움과 부끄러움도 언젠가 함께 해야 한다.
어떤 것으로 한정된 결말은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하기에 마지막은 언제나 두렵다. 감정이 다채로워지지 않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미 너무 많이 담겨 있어 보이지 않을 만큼 흘러넘치는 날이 많아졌다. 감정이 튀면 하루를 망친다. 마무리가 좋지 않은 다음날은 베갯잇에 싸한 얼굴로 눈을 떠야 한다. 초점이 바로 선명하게 잡히지 않아 놀란 가슴이 아주 조금씩 두근거린다.
Hermitage
@big_be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