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달다’가 ‘단가?’로 바뀌는 순간

La Reserve Claret 15/Chateau Teyssier16

by HERMITAGE

[La Reserve Claret 2015]

향이 단것이지 맛이 단 건 아니었다. 포도의 단맛이 아니라 다른 과일 맛이 나는 것 같다. 한 잔을 마셔본 뒤 병을 천천히 돌려 본다. 하얗고 심플한 배경에 작지만 영롱한 ‘크라운’ 하나가 보인다. 깨알 같은 글씨로 맛을 설명해 놓은 것 같아 읽다 보니 가장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


"이 와인은 [조나단 말터스]가 만들었습니다. "


[와인메이커]의 이름을 새겨 넣을 만큼 프라이드가 있는 사람은 누굴까. 조나단이 궁금해졌다. 그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한 것이 나중에는 조금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그는 프랑스에서부터 시작해 또 미국에서 와인을 만드는 영국인 [와인메이커]였다. 21살부터 석유 가스 정제 사업을 하다 와인 메이커라는 직업을 갖게 된 건 그의 나이는 36살 때 일이었다. 사업을 하며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던 그는 프랑스 보르도 지방으로 아내와 함께 한 달간의 휴가를 떠난다.


보르도에 머물며 수없이 많은 포도밭을 보면서 와이너리 사업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된다. 어느 날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수줍음 많은 호주 출신의 와인 메이커를 만났고, 영국으로 돌아가 그들에게 받은 몇 병의 와인을 주변에 소개하며 테이스팅 하게 했다. 그러자 지인들은 영국으로 수입하고 싶다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2년간 호주 와인을 대신 팔아주면서 거래를 익힌 그는 그 후 사업을 정리하고 프랑스 보르도로 돌아간 지 3년 만에 첫 작품으로 [르돔(Le Dome)]을 출시한다.


그의 첫 와인은 지금까지도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적으로 묘사된다. 와인업계에서 그의 명성은 [로버트 파커]에게 르 돔(Le Dome)으로 3번이나 100점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가라지 와인] [컬트 와인]이 유행하기 시작했던 당시 1990년대 초. 그러니까 왕년에 남다른 선구안을 갖고 와인을 만들어 이름 꽤나 날렸던 [와인메이커]였으며 지금까지도 [가라지 와인]의 창시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그때부터 이어져온 명성으로 프랑스 보르도에서, 또 미국의 나파밸리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녹여내고 있다. 와인은 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 메이커의 개성을 담아내는 것이라는 3가지 메시지를 이렇게 정리한다.


[Largeness, Concentration, Definition]


조나단에 대해 알게 될수록 [르돔(Le Dome)] 이 정말 궁금해졌다. 그가 만든 대부분의 와인들은 그의 자신감과 확고한 철학, 고매한 명성만큼이나 대부분 꽤 높은 가격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바로 만나보기엔 어려울 수 있겠지만 [라 리저브 클라렛]으로 가벼운 시작은 그가 만든 와인을 더 궁금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다음은 [샤또 테이시에]를 집어 들 차례가 될 거라 확신한다.


VIVINO : 3.5


[Chateau Teyssier 2016]

[La Reserve Claret 2015]을 경험한지도 어언 일 년 하고도 절반의 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거센 눈발이 휘날릴 정도로 찬 바람이 땅을 얼어붙게 만들었던 한겨울에 <클라렛>을 만났다. 훌륭한 과실 맛과 가볍게 즐기기에 편안한 (멜롯)의 산뜻한 기억은 오래전이지만 선명하게 남아있다. ‘조금 싱겁게 느껴진다’ 표현할 수 있는 맛 때문에, 또 유명 와인메이커의 ‘입문용’ 와인이 대개 그렇듯이 사람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나뉘었다. 그래도 괜찮은 가격, ‘홈술'이 잦아진 요즘, 집에서 고기 구울 일도, 삶을 일도 전보다 많아졌을 홈 파티에서 꽤 괜찮은 성능으로, 무난히 페어링 하기 좋다고 說破(설파)하다 보니 그럼에도 여러 번 권했다.


<테이시에>에 블렌딩한 품종은 (멜롯)과 (카베네 프랑) 두 가지로 <클라렛>과 비슷하지만 입안에서는 더 묵직하고 달달한 느낌을 받았다. ‘켐벨포도’만 먹다 ‘머루포도’를 먹었을 때 정도의 차이는 같은 보랏빛 포도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만드는 정도였다. 요즘 마트에 자주 보이는 붉은빛의 작은 알맹이를 가진 ‘데라웨어’ 만큼 그리 달큼한 정도는 아니다. 심지어 <클라렛>에만 아주 조금, 포함되어 있던 (카베르네 쇼비뇽)은 빠져있다. 천재 와인 메이커는 ‘출발점’에 있는 와인이 사람들에게 실망스러움을, 맛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태에 노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예방 차원에서 가능하다면, 병을 미리 오픈해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와인이 갖고 있는 섬세한 맛을 표현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오픈 직후의 컨디션과 어떤 맛이 나는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일을 그르친다. <테이시에>가 <클라렛>과 다른 점은 두 개 품종을 블렌딩 한 것만으로 끝까지 흐트러짐이 없었다는 것이고, 그건 맛의 피니시에 관련된 이야기다. 둘의 차이를 ‘훨씬'이라고 하기엔 과장된 표현일 수 있겠지만 <클라렛>의 피니시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누군가는 <클라렛>을 맹숭맹숭하다 했고, 물을 탔거나 들어갔을 법한 맛에 마무리가 부족하다 할지도 모르겠지만 마무리에 놓쳐버린 피니시가 아쉬워, 위로하기라도 하듯 진득한 과실 향과 단단한 구조감이 만들어내는 착각,


‘달다’를 ‘단가?’로 바꾼다.


<테이시에>는 거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코어의 힘은 묵직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아주 무겁지 않고 <클라렛>이 놓친 부분을 진중하게 끝까지 이어나간다. 오픈 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몽글하게 과하지 않은 탄닌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한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전부, 속도감 있게 비워냈다. 풀바디 스타일보다 미디엄 바디, 그 정도의 묵직함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만족할 무게감. ‘조금 무거운’ 정도까지는 그래도 비교적 목 넘김이 날카롭지 않고 부드럽다.


양고기같이 개성 넘치는 고기보다, 자주 먹는 소, 돼지고기와 더 잘 어울리고 산미도 꽤 있는 편이라 한식과도 좋은 조합이 되어 줄 것으로 보인다. 굽거나 삶은 고기와의 ‘케미’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일상적인 반찬으로 구성한 식탁에 <테이시에>를 곁들인다면, 개인적으로는 김치가 연상되는데 김치볶음밥이나, 김치(찜)(찌개)와 함께 한다면 일상을 재해석한 특별한 저녁 시간을 만들 수 있다.


호기롭게 <클라렛> 다음 순서인 <테이시에>를 고르겠다 다짐했었다. 두 와인의 미묘한 차이를 경험해 보고 싶었고 단번에 <르 돔>을 향할 순 없으니 순차적으로 단계를 밟아 나간 것이다. 많은 와인을 고르고, 골라내고 있지만 한 병 만으로 각인된 유명 와인메이커의 와인을 이렇게 진도 나가듯이 마시는 경험은 <조나단 말터스>가 처음이다. 그의 力作(역작)에 도달하기까지 앞으로 시간이 좀 걸린다 해도 괜찮다. 아직까지 올라야 할 순서가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생테밀리옹의 토질을 한데 모아 표현한 독보적인 맛, 그의 천재성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다는 <Chateau Laforge Saint-Emillion Grand Cru>가 다음 <조나단 말터스>의 작품 순서가 될 것이다.


VIVINO : 3.8


Hermitage

@big_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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