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zes Hermitage Silene
Hermitage
성역에 들어갔다. 이제 더 이상 바깥으로 나오고 싶지 않아질만큼 이 엄숙하고 음울한 요새가 마음에 든다. 정체성을 찾은 것 같다. 스스로를 표현하는 단어를 Hermitage(에르미따쥬)라고 지은 줄도 모르고 처음엔 Hermitage(허미티지로)만 생각했다. 1550년경 스코틀랜드의 이야기긴 하지만 허미티지를 묘사하기론 ‘튼튼하지는 않으나 험난한 지형으로 인한 사악함 때문에 얻기 힘든 오래된 집’으로 되어있다. 다시 말해 한 번 들어오기 까다롭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다시 바깥으로 나가기 어렵다는 그 견고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헤미 티지로 프로필을 대신하기로 했다. 텅 빈 황무지에 유령이 출몰할지도 모르겠다는 터무니없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황량한 줄만 알았던 입속에 잉크통을 쏟았다. 색만 진한 게 아니라 맛도 진하다. 중후한 대다 묵직하기까지 하다. 그곳은 헤미 티지가 아니라 프랑스의 에르미따쥬였다. 불현듯 정말 아주 얼핏 그게 Syrah(시라) 같았다.
Rhone
[론]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 생각했다. 프랑스 와인에 대해서 또 레드 와인에 관하여 조금씩이지만 천천히 경험해보고 있다 생각했지만 [북부론]이라는 성역에 들어와 보니 모든 데이터가 초기화되는 즐거움이 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동안 쌓아오던 와인의 순서를 재배치하는 기분이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마셔왔던 모든 와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다. 영화를 스포일러 당하고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듯, 와인을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사전에 정보를 알아보고 마시기보다 시놉시스 정도 눈에 띄는 포스터를 참고하는 정도다. 가장, 최고 이런 종류의 말을 함부로 쓰면 저항이 생긴다. 저항을 뚫고 곱씹어 생각해 봐도 <아마로네> 이후 취향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을 준 최초의 와인이다.
Jean Louis Chave
16대를 이어오고 있는 농후함의 끝판왕을 맛본 것 같다. 1481년부터 와인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Syrah(시라) 품종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단일 품종으로 탄탄한 구조감과 복합적인 맛을 가진 와인을 찾기 어렵다는데 동의할 것이다. 품종을 나라에 한정할 순 없지만 호주에 경우에 구조감까지는 찾아볼 수 있었지만 복합적이라고 하기엔 다소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 마주하지 못한 Syrah(시라)가 더 많을 테니 한정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어디까지나 경험해 본 기준안에서의 판단이다.
북부의 론을 자칫 부르고뉴를 떠올릴 만큼 그 섬세하고 유려한 시작에 대부분 착각에 빠질 것이다. Syrah(시라)가 주는 강렬함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는 강하기만 한 다크 초콜릿 같은 첫인상이 다소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런 경우엔 보랏빛 [말벡]으로 선회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굳이 [말벡]을 꺼내는 이유는 [장루이 샤브]가 만든 이 100프로의 Syrah(시라)가 그동안 마셔왔던 말벡이 보여줬던 가장 이상적으로 복합적인 맛들을 농도 짙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과 중간, 끝을 모두 겪고 나면 이렇게 화려한 레드와인을 만드는 생산자 [장 루이 샤브]라는 이름의 위대함에 대해 떠올린다. 이미 그 위상은 잘 알려져 있지만 마셔보는 순간 전율이 된다. [남부론]에게 받았던 인상이 [론]의 전부라고 믿었던 지난날들이 부끄럽다. [북부론]에서 대부분 최고급 Syrah(시라)를 만들고 에르미따쥬는 그중에서도 고향에 속하는 곳이다 화강암과 자갈 지대로, 놀라울 정도의 복합적 토양에서 자란 포도가 [장루이 샤브]의 손을 거쳐 최고급 단일 시라를 담은 와인으로 탄생하는 과정은 명실상부한 최고의 와이너리인 동시에 지금까지 중에서도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한다.
VIVINO : 3.9
Hermitage
@big_be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