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전생에 디오니소스가 아니었을까

Louis Jadot, Bourgogne Pinot Noir

by HERMITAGE

Louis Jadot, Bourgogne Pinot Noir 2018

메두사를 연상하게 하는 포도 알맹이를 머리에 얹은 얼굴, 라벨을 수놓은 <루이자도>의 상징인 <바쿠스>를 처음 봤을 때부터 홀린 듯 머릿속에 각인됐다. 그리스 신화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술의 신, 바로 포도주의 신이자 제우스의 아들이다. 사람들에게는 <디오니소스>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한 번이라도 포도를 닮은 머리칼에 관심을 갖고, 왠지 모를 친근함에 마음이 동해 본 사람이라면 <바쿠스>라는 이름을 어렵지 않게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부르는 여러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인간의 근심을 덜어주기도 하지만 때론 취하는 기쁨이 터지는 광란으로 발현되기도 하다, 잔잔한 풍요를 상징하기도 한다.


무언가에, 취하게 만들어 너그럽게 만드는 것, 이상과 현실을 공존케 하는 섞기 힘든 이중성을 갖고 있다. 성장과 죽음, 도취와 쾌락, 잔인함과 즐거움같이 정반대의 이질적인 개념을 동시에 갖는다. 모순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더 자연스럽고 인간답게 느껴진다. 개념을 의인화했다. 해석이 주는 품격에서, 곱씹어 보면 지금의 술이 하고 있는 긍정적인 역할과 닮아있다. 격정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 각자의 취기를 빌려 격앙된 사람들, 반대로, 이름이 주는 의인화된 개념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백과사전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동시대를 비슷한 나이대로 살았을 누군가는 한 번쯤은 들춰봤을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떠오른다. 초록색의 눈을 가진 사람들의 미처 생각해 볼 수 없었던 나라의 오랜 이야기지만 일어나는 일들은 살고 있는 이곳의 드라마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거기엔 막장 드라마의 설정도 힐링되는 시트콤도,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도 있었다. 인물들에 몰입해 관찰하다 보니 그리스에, 로마에 살며, 익숙해진 이름들이 조금씩 눈에 익기 시작했다.


어느 날엔, 영문 이름이 필요했다. 사무적인 이유였지만 정해야 했다. 오래전에 사용했던 이름을 잠시, 떠올렸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영어학원에서 지었던 아이디 같은 이름이 있긴 했지만 이제 와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가볍지 않으면서도 나름의 진지한 의미가 필요했다. 너무 흔한 것은 싫었다. 이름의 의미 속에서 힌트를 얻게 한 건 와인이었다. 포도를 머리에 얹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바로 생각나는 이름으로 하고 싶진 않았다. 대놓고 ‘홀릭’ 같아 보이는 것 같았다. 다르게 부를 수 있기를 바랐다.


백과사전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결국 선택한 건 <바쿠스>의 별칭, <리베르>였다. 대지의 풍요, ‘성장’을 관장하는 전원의 신이자 동일한 존재로 해석한다. 어원은 ’ 자유롭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또, 포도나무를 상징한다고 하니 고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리베르>가 되었고 [루이자도]에 마음을 빼앗기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샤블리>로 [루이자도]를 처음 알게 됐고 이제는 ‘엔트리급 피노누아’. ‘부르고뉴 피노누아 입문’으로 <루이자도>를 마신다. 대단한 ’ 정석’이라는 표현보다 클래식하고 담백한 ‘기본’이라는 설명이 함께 다닌다. 어느 장르든 기본이 가장 어렵다. 정석이란 기본에 기초하지 않고는 마음을 움직일 만한 감동을 연출해 내기란 어렵다는 전제를 깔고 간다. “기본은 한다”라는 말이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큼의 보이지 않는 노력의 대가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기본에 닿기 위해, 氣焰(기염)을 토할 만큼 힘찬 몸짓으로 출발점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순간이 오는 데까지의 시간을 감히 헤아리기조차 벅찬 일이다. <루이자도>는 연간 약 구백만 병의 다채로운 와인을 만들어 입문의 기본부터 숙련된 마지막 페이지까지, 종류별 다양한 선택지로 제공한다는 점은 넓은 영역을 구석구석 아우르고자 하는 그들의 섬세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다음 단계로, 정수가 될 만한 작품을 선보이는 그들의 진심인 모습에서 <리베르>이자 <바쿠스>의 얼굴이 새겨진 와인을 기본에 닿고자 하는 마음으로 정석처럼 고른다.


VIVINO : 3.7


Hermitage

@big_be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