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a Ardanza Reserva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격변하는 요즘 어느 장단에 리듬을 타야 할지 길을 잃었다. 잠은 좀 잤냐, 밥은 먹었냐 와 같은 일상적인 질문이었다. 그런 얘기를 했었나 싶을 때쯤 집 앞으로 찾아왔다. 밤낮이 바뀌었지만 멈춰 설 순 없었다. 지금 멈추는 건 뛰어내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꿈에서 깨어나도 몽롱함은 여전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웨이팅 줄을 서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줄이 어쩐지 싫지 않다. 힘을 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광경이었기 때문에 미처 놓치는 순간에도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4-5시간씩 자던 질 낮은 수면 패턴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고 매일 대중교통에 치여 오가는 시간이 고정되자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적당한 한잔이 필요했고 기대 이상의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메뉴를 시켰다. 정성스럽게 준비해 주셨고 이런 세심한 배려가 이곳에서는 일상이 되었다. 밖은 아직 기온이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이곳엔 그런 기복은 없었다.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무작정 와인을 챙겨 온 것이다. 좋아하는 가게에 갔고 콜키지를 부탁드렸다. ‘피곤할 때 마시면 좋을 리오하’라는 얘기를 종종 하곤 하는데 세부지역인 리오하 알타는 처음이었다. 아메리칸 오크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선 ‘바닐라’라고 외친다.
점점 더 커져가는 시간의 무게가 크리엔자로는 위로가 어렵다. 그만큼 와인 입맛만 오르막으로 걷고 스페인을 바라보는 눈이 또 한 번 성장했다. 어제 마실 때 보다 지금이 그리고 앞으로 고를 새로운 와인들에 수준이 오르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맛이었다. 꽃밭인 그림을 걸고 있는 한정판이 그래서 더 눈이 간다.
‘르누아르 에디션’
병을 집어 들었을 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2 빈인 것을 고려했고 조금은 늦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염려도 있었지만 아주 잠깐의 칠링과 디캔팅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첫 잔부터 놀라울 정도의 생명력의 맛을 봤다. ‘죽지 않고 살아있어 줬구나’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공기에 노출될수록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했는데 그런 기복이 비냐 아르단자의 출구 없는 매력이다.
한 번은 처음 첫 잔 같았고 또 다음은 아예 새로운 맛이었다. 산미가 있다 없기도 하고 적당히 길을 잃었다 제자리로 오기도 했다. 긴 시간을 이 한 병에 몰두하며 다음 잔은 어떤 맛일까를 고민한다. 가장 아껴 오래 마신 와인이었다. 그러자고 했다. 한 병이지만 꼭 두 병 같은 한 병으로.
라벨이 꽃밭인 게 마음에 든다. 템쁘라뇨에 가르나차를 얹어 도수를 높였다. 색감도 살리고 강화도 되니 블렌딩의 맛이 바로 그런 게 아니겠는가 순수하고 고결해 보이는 그림 속에는 이질적이게 도 분에 넘치는 강렬함을 담고 있다. 균형 잡힌 구조감을 또 한 번 스페인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건 기분 좋은 변화였다. 누군가 이 와인을 구입할 수 있다면 시간을 오래 두고 찬찬히 보라고 말하고 싶다.
VIVINO : 4.3
Hermitage
@big_be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