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꺼지지 않는 초심

Bodegas Castano, Hecula Monastrell

by HERMITAGE

Bodegas Castano, Hecula Monastrell 2018

지금도 어디에선가 [헤쿨라]를 마주친다면 사회 초년생으로 당시엔 무거웠지만 돌이켜보면 가벼운 발걸음으로 빳빳한 수트를 입고 출근하던 길이 생각난다. 와인에 본격적으로 진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그 시작점에 있던 와인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당시엔 어떤 와인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조용히 혼자 으스대던 뭔가가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떡상’ 할 코인을 미리 사뒀다거나 하는 것처럼 골라뒀던 와인이 업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광경을 지켜보는 걸 재밌어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였다.


이제 와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당시엔 개인적인 만족이었지만 경험이 다채로워질수록 어떤 와인을 선택했느냐는 다른 측면에서 페어링의 싱크로율을 바탕으로 했다는 전제하에 관리자의 기호가 반영되는 것이라는 사실로 정리되었다. 어느 날 연희동에 LP 바에 갔을 땐 와인 리스트 중에 헤쿨라가 가장 상위 라인업에 있는 것을 보고 이 세계의 심오함을 느낀다.


어디에선, 가성비의 대명사지만 또 어떤 곳에선 최고의 와인일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하니까. 세계관은 창작하기 나름이다. 어떻게 모나스트렐과 첫 만남을 가졌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와인을 추천을 받아 구입하는 게 더 편했던 당시에는 언제나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가성비’에 의존해야 했고, 아무것도 모르고 좋은 것만을 쫓기보단 한 병 더 마셔보는 게 더 효과적인 학습방법이라 어렴풋이 믿었다.


한 번에 여러 병을 구입해야 하는 와인장터나 행사가 크게 열리는 날이면 헤쿨라는 자주 그 틈바구니 안에 있었다. 시작을 알리는 첫 잔이 되기도 했고 밥과 함께하는 반주가 되어주기도 했다. 군대를 전역하면서부터 부모님이 그간 사회생활을 하며 집에 모아 왔던 와인을 전부 오픈해가면서 이론과 실제를 동시에 체득하던 당시였다.


나라에 대한 추상적인 이미지와 맛, 그런 것들이 생성되던 시기였다. 아주 구체적이진 않았지만 머릿속에선 '카테고리화' 하면서 분류가 시작됐다. 당시 모나스트렐은 강렬하면서도 투박한, 섬세하지만은 않지만 흐리멍덩하진 않은 레드와인의 이미지. 구조감이라는 게 뭔진 몰랐지만 꽤 달큼한 것 같으면서도 끝에 남는 미묘한 탄닌의 떫음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비슷한 수준의 가르나챠에서 살짝 비린 맛을 느낄 수 있다면 모나스트렐은 보다 진득한 맛이었다. ‘토착 품종으로 스페인 와인의 인상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도 그 첫인상은 매우 영향력을 끼친 순간으로 기억된다. 이래서 첫 단추가 중요하다.


더러, 와인을 골라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고를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해야 할 때. 구입처가 맞닿아 있고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한 병쯤 집어 들어 취향에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아도 크게 동요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와인을 골라야 할 때, 어렵고 복잡해 보여서 어딘가 공부하고 마셔야만 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의무감이 든다는 고백을 받아 들 때면 헤쿨라를 권한다. 언제나 와인 초년생의 마음으로 아무것도 필요 없이 그냥 마셔보는 것, 그걸로 충분하다.


때론 호노로 베라와 함께. 언제고 한강에서 잔이 없이도, 병 째 들이마셔도 괜찮을 그런 와인만 있다면 당장 한강에 가기에 가장 적합한 한강스러운 계절을 보내고 있다.


VIVINO : 3.3


Hermitage

@big_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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