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mani Ronchi, Vigor
Simon Dominc의 2011년 앨범 <SNL LEAGUE BEGINS> 수록곡 중, 힘(We Got)에 피처링 한 다이나믹듀오의 개코의 Hook 파트에는 다음과 같은 뇌리를 스치는 가사가 나온다.
‘힘내라 힘, 기운 내라 기운
권력의 폭력에 진짜 너의 힘을’
(We got the power)
(We got the power)
(We got!! Everybody)
Vigor는 ‘힘’이다. 땅이 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검의 모양으로 형상화해 라벨에 새겼다. 개코의 가사처럼 힘 날일은 많지 않지만 낼 일만 늘어나는 요즘, 적잖이 힘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누가 좀 알려 줬으면 좋겠다. 언제나 그렇듯 너무 달지 않은 정도, 기분의 환기를 위해서는 약간의 산미가 필요하다. 퇴근 후라면, 일과 더위에 치이는 피로감에, 아직은 힘이 완전히 나지 않은 상태로 풀바디를 목에 넘기는 건 컨디션에 따라 아무리 좋아하는 맛이라도 조금 버거 울 수 있으니까 ‘조금’만 무거운 바디가 좋겠다. 그러니까 평소보다는 조금 힘을 빼야겠다.
또, 음식이 가벼운 밀가루 종류의, 포만감을 위해 먹는 메뉴 위에, 예컨대 수입 파스타 소스를 골라, 꾸덕꾸덕하게 공들여 만든 파스타나 배달 주문으로 결정 한 피자 같은 종류에 살짝, 적셔 식욕을 돋우는 정도라면 역시, 중간 정도가 무난하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탄닌, 왠지 어딘가 모르게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기분 탓이겠지만. <Sangiovese>를 떠올린다. 거기에 <Merlot>을 블렌딩 했다니, 안정감마저 든다. 다음, 묵직해 보이는 빛나는 칼과 어두운 색으로 칠한 뒷배경의 질감이 對比(대비) 된다. 익숙한 생산자 [Umani Ronchi]가 눈에 들어온다. 의심보다 확신에 가까워진다. 오늘은 이걸로 해야겠다.
벌써, 내일이면 금요일이다.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가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달력을 몇 번, 넘겨야 할 때를 지나서야 내려보면 스크롤이 생각보다 많이 내려가 텅 빈 스케줄 칸엔 아무런 말이 없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낸 하루를 그렇게 쌓인 일주일을 전부 털어내고 나면 여행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일상에 旅毒(여독)이 쌓인다. 제대로 여행이나 다녀오고 난 후에 그랬다면 차라리 낫겠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면 그래도 어딘가 고여, 멈춰 선 게 아니라면 그것 하나만으로 잘하고 있는 거라 어디에선가 듣기도,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생각해 보니 시간이라는 게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지나있었다.
여름의 반환점을 지난 지 며칠,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에만 체감할 수 있던 기온 차이가, 공기가 머금은 습도의 차이를 보다 실감할 수 있게 했고 그만큼 계절은 또 한 번의 변화를 조금씩이지만 알 수 있을 만큼 준비하고 있다. 그저 그렇게 보낸 하루가 밤잠에 들기 전에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있도록 재료를 손질하고, 조금은 여유를 부려도 좋을 준비를 미리 해 둘 수 있다면, 가능한 한도 내에서 그렇게 했다.
[칼]을 뽑아 들고, 잘하고 있는 지를, 어디를 어떻게 바꾸고 손볼 순 없는 건지를, 부끄럽지 않을 만큼 고민하고 최선을 다했는지 같은 것들에, 시작한 건 꼭 끝을 내자는 다짐에서. 끝없이 찾아오는 의문에 맞서며 작지만 더 이상은 위태롭지 않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교적 단출해진 일상을 꼭 우물 안으로 기어이 제 발로 들어가, 삶의 방식을 하나의 루틴으로 가둬둔다 해도 숨 막힐 만큼 답답해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에 더 이상 쉬이 사로잡히지 않는다.
쾌적할 정도로 잘 말린 피부 끝에 닿는 불편하지 않을 질감만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떡해서든, 순간의 괴로움에서 머리를 짜내고, 간신히 부여잡은 하루를, 단단하게 꽂혀있는 검처럼, 오늘도 공고히 이겨낸다. 조금, 취하고 싶다. 너무 무겁지 않게, 다시 내일도 어김없이 뽑아 들어야 하는 검을 쥘 수 있는 정도의 힘만을 남겨 놓은 채로.
VIVINO : 3.5
Hermitage
@big_be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