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나 얼큰한 거 좋아했네

Monte Antico Toscana

by HERMITAGE

Monte Antico Toscana 2015

부산에 있을 때였다.


전화를 받아 들었고 수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는 꽤 얼큰해 보였다. 다짜고짜 같이 오고 싶다는 말이 들렸다. 주변은 시끌벅적했고 어려운 시국에도 조용히 묵직하게 음식을 하나씩 서브하며 그럼에도 잘 살고 있다 말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엘 간 걸까 라고 잠시 떠올렸다. 파스타는 진득하니 내가 좋아할만하다고 자신 있어했다. 다른 메뉴들도 꽤 재밌는 경험이 될 거라고 말하면서 조만간에 꼭 한 번같이 오자고 그랬다.


이후 알고 보니 나를 소개해준 그의 동네 지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둘은 동종업계에 있으면서 지금은 조금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지만 음식에 대해 진득하게 논할 수 있는 분야인 화구 앞에 장인이며 음식의 장르나 결은 좀 달라도 맛있는 걸 창조해 낸다는 점이 같았다.


누군가의 음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까다롭게 표현하지 않는 그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아서 어쩐지 기대했고 이상이었다. 조용하고 분리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는 물론 와인 리스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음식이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차분하게 음식이 나왔고 가능한 잘 어울리려 애쓰지 않아도 밥을 한술 뜨고 국물을 마시듯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이 패턴처럼 붉은 육류에 충분히 젖어들게 만들어줄 레드와인을 편하게 고른다.


복층의 구조로 프라이빗 한 느낌의 테이블을 아무 때나 앉을 수 있어 보이진 않았다. 대표하는 역 인근의 분위기가 이렇게까지 형성되어 있을 거라고는 중심 거리를 조금 벗어나 걷다 보면 추측하기 어렵다. 이사를 온 것이라고 전해 들었는데 주변 분위기에 비해선 너무 다른 온도의 생소함을 머금고 있기도 하다.


이미 인근에서는 이런 내공의 가게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배달 앱 서비스를 통해 피자 맛집으로 알고 있는 고객들도 많을 것으로 보였다. 한쪽에는 피자를 포장할 수 있는 피자 박스가 쌓여있고 제법 와인을 마시는 가게에서 볼 수 있는 핸들링하고 있는 직원의 모습이 눈에 띈다. 한 병만으론 아쉽다. 나오는 메뉴마다 말 그대로 기대 이상의 재미를 느끼고 곁들이는 와인이 조화로울 때 아쉬워서 한 병을 더 주문한다.


[몬테 안티코]는 슈퍼 투스칸이다. 와인의 전체 역사를 통틀어 볼 때 불과 얼마 전인 1975년 만들어진 신조어로서 지금의 이탈리아 와인이 다른 구대륙이나 신대륙 보다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했던 여러 가지 시도 중 하나였다. 프랑스의 보르도라고 라벨에 쓰여있는 표기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토착 품종을 위주로 ‘백 퍼센트’로 담지 않고 이름으로 더 익숙한 카베르네 쇼비뇽, 멜롯 같은 포도를 섞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라벨에 토스카나라고 쓰여있다면 그건 그들만의 자부심, 전통이랄 것을 녹여 고집하던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보다 품질에 걸어보겠다는 표현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이름을 붙였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대책으로 전통을 깨트린 파격적인 신호탄을 쏘는 일이다.


파격엔 언제나 저항이 따라붙지만 이탈리아는 2006 빈티지에서 <와인 스펙 테이트> 90점을 받아 베스트 벨류 와인으로 선정, 세계 100대 와인 선정 61위로 가성비의 슈퍼 투스칸이라 불리는 칭호를 얻는데, 이걸 해내고야 만다. 100대 와인은 매년 12월 중순쯤 발표한다.


변함없이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산지오베제에 만큼은 진심인 그들이 토착 품종을 놓지 못하고 고민 끝에 만든 더 지독해진 혼종으로서 방문했던 가게 대부분이 표방하고 있는 이탈리아 음식에 과연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이라는 미식의 기억을 또 한 번 새겼다. 입이 마르게 설명해도 부족하지 않을 나라의 대표 음식을 옆에서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슈퍼 주류는 과연 그 나라의 주류’가 맞다.


물론 가성비의 타이틀답게 30분에서 1시간 오픈 직후보다는 시간을 두어야 한다는 점도 알아두면 좋다. 전략은 처음 주문할 때 같이 주문하고 미리 오픈한 뒤 나중에 시음을 시작하는 것이다. 첫 병을 다른 걸로 해도 좋지만 어느 정도 예열이 끝났다면 파스타와 피자 모쪼록 치즈로 표현한 모든 것들은 [몬테 안티코]와 곁들여졌을 때 오늘도 감히 우수한 성적을 냈다며 얼큰히 젖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VIVINO : 3.7


Hermitage

@big_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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