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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령 Jul 02. 2017

내가 베푼 호의는 남에게 특권은 아니다.

너무 과하면 그건 독이 된다.

무섭게 생긴 사람이 정이 많다는 것을 어느 한 방송에서 본 적이 있었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남들이 도움을 청하면 아무 말 없이 일단 도와주고 봤다. 그럴 때마다 주위 친한 친구들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넌 정이 많아서 호의를 너무 많이 베푸는 거 같아'  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웃음으로 대답을 회피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이 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봤을 때도 나의 첫인상은 남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인상이다. 눈매가 매서울뿐더러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많은 경계를 했다. 하지만 두, 세 번 만나면서 친해지면 한 없이 착해지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하지만 정이 많아서 호의를 베푼다는 게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난 그것을 최근에 되어서야 깨달았다. 


전역을 하기 전 말년휴가를 나와서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를 하는 여자 사람 친구를 만났다. 무더운 날씨라서 그런지 카페보다는 시원한 생맥주가 너무나도 먹고 싶었다. 그렇게 그녀와 난 근처 술 집에 들어가서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면서 서로의 고민에 대해 풀어놓기 시작했다. 한 참 이야기를 하면서 늘어난 것은 우리의 생맥주 잔이었다. 자연스레 취기도 올라왔다. 술자리가 물어익어 갈 때쯤 그녀가 그동안 하지 않았던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봤을 땐 넌 너무 호의를 많이 베푸는 거 같아, 그런 게 나쁜 건 아닌데, 내가 봤을 땐 적당한 게 좋은 거 같아, 그렇게 해주다가 나중에 그 사람한테 당하면 어쩌려고? 감당할 수 있겠어?



그녀의 말에 생맥주잔을 테이블 위에 놓고 있던 나의 손이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그녀와 오랜 시간 동안 친구를 하면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정이 많다고 하는 자리 대다수에 그녀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작스레 그녀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잠시 동안 멍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가지고서는 각자 집으로 헤어졌다. 집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그녀가 했던 말을 되짚어 보았다. 과연 그녀가 뭐 때문에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말에 정답을 찾으려고 했으나 정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전역을 하고 평범한 민간인 생활을 하던 중 난 그놈의 '정' 때문에 나 자신을 망치고야 말았다. 한 명의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남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였다. 하지만 난 그 친구와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면서 같은 반도 했었기 때문에 꽤 친해진 친구였다. 그 친구가 무슨 도움을 청하면 일단 도와주고 봤다. 밥을 먹을 때도 내가 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나에게 배신했던 적도 한 번 있었지만 그놈의 '정' 때문에 꾹 참고 넘어갔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호의가 계속되다 보니 그 친구는 내 호의가 자신의 특권인 줄 착각을 했다. 이 친구는 본인이 밥을 사겠다면서 나한테 연락을 하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연락을 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난 그 친구가 바쁜 줄 알고 그럴려니 하고 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친구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여보세요?' 

'야 밥 한 끼 먹자' 

'그러면 이번에 네가 사는 거지?' 

'아.. 내가 여자 친구한테 돈을 다 써서 그런데 이번에 네가 사면 안 되겠나? 괜찮은 고깃집 있는데..'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여사친이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 친구에게는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다 내뱉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아무런 말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렇게 전화를 끊기자 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남들에게 도와주고 싶어서 호의를 베풀었는데 그게 계속되다 보니 그걸 특권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아마 그 여사친은 내가 이런 상황이 올 것라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지 않았을까? 가끔씩 나 본인보다 내 주위 사람들이 더 나를 잘 알아보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난 그저 남들에게 도와주고 싶어서 그랬던 행동인데 남들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이제부터라도 적당한 호의를 베풀면서 살려고 한다. 상대방이 왜 안 도와주냐고 말하더라도 그냥 '미안'하다는 말로 끝내려고 한다. 



영화 '부당거래'에서 류승범이 이런 말을 한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나도 이제는 남들에게 넘치는 호의보다는 적당한 호의로 남들에게 대하려고 한다. 예전의 '나'는 호의가 많았던 사람이라면 지금의 '나'는 적당한 정과 호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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