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알람이지만 평소보다 더 듣기 싫고 몸을 일으키기는 더 힘든 아침. 얼굴을 가득 채운 부기와 속을 차고 넘칠듯한 취기가 예상치 못한 술 약속만큼이나 예상치 못한 음주량을 보여준다.
'힘들다...'
머릿속을 채우는 건 오늘의 할 일도 아니고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도 아니고 단지 너무 힘들다는 생각뿐.
하지만 출근은 해야만 한다. 가는 길에 쓰러지더라도, 전날에 모임이 있었다는 걸 부장이 아는 한은 어떻게든 제시간에 가야 한다. 주섬주섬 챙겨 나와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금요일 아침에 타는 지하철은 신기하게도 다른 날보다 여유롭다. 대부분 타는 사람이 그대로 타는 것일 텐데 어째서 금요일에는 유독 빈 공간이 생기는 걸까... 하지만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다. 띵한 머리와 거북한 속을 다스리기는 것만으로도 힘겹다.
회사에 출근하기 전, 편의점에 들러 오렌지 주스 한 통을 산다. 당도가 높은 주스는 숙취 해소에 도움을 주지만 산도가 높기 때문에 위장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런 부작용을 고려할 여유가 없다. 한 시라도 빨리 온몸을 짓누르는 숙취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 그럴 수 있다면 잠시 잠깐의 속 쓰림은 제 값을 치르고도 남는다.
"아유, 어제 많이들 마셨나 봐?"
사무실에 들어와 자리로 가는 동안 가시 돋친 말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려운 말투로 부장이 인사를 건넨다. 어제 갑자기 생긴 모임에 자신이 초대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서 그러는 것이 분명하다. 오늘은 또 얼마나 기분 나쁜걸 티 낼까, 부장에게 결재받을 일이 있던가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 부장에게 목례하고 자리에 들어간다.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후 하고 한숨을 몰아 쉰다. 어제저녁 동안의 기분 좋은 시간을 위해 치러야 하는 것이 많다. 시계를 흘깃 보니 이제 겨우 9시 하고 5분이 지났다.
머리는 띵하게 울리고 목이 마르다. 엑셀에 숫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겨우 집중하며 오늘 처리할 문서를 살펴보는데 저 멀리서 부장이 또 부른다.
"상무님께서 관심 있어하시는 사업 리서치 자료, 어느 정도 됐나?"
아차 싶다. 어제저녁에 술을 마실게 아니라 야근을 해야 했다. 크게 채근하지 않아 여유 있게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다. 실제로 상무가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제 자신을 빼고 모임을 가진 사람들에게 앙심을 품은 부장이 나를 닦달할 구실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부장이 유리한 위치에 서서 나를 괴롭힐 수 있는 상황을 스스로 만든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
한참을 시달리고 겨우 풀려나니 예전에 끊어버린 담배가 생각난다. 담배 때문에 몸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 고생 끝에 끊어냈는데 이렇게 스트레스받을 때면 담배가 나쁠까 스트레스가 나쁠까, 쓸데없는 고민을 하게 된다. 덕분에 오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만큼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니 그것 하나는 다행이다 생각한다.
어제 같이 술을 마신 동료가 나가서 해장국을 먹자고 한다. 점심도 부장과 함께 하지 않으면 눈 밖에 벗어날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같이 밥을 먹고 싶지가 않다. 뜨끈한 국물이 위장으로 들어가니 속이 조금 풀리는 것만 같다. 술기운을 머금은 비지땀이 온몸에서 솟아난다. 이대로 낮잠을 푹 자고 일어나면 참 좋을 텐데, 그러기에 점심시간 1시간은 너무 짧다. 달아오른 몸을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식히며 사무실로 돌아온다.
점심 먹고 난 이후 오후시간부터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바로 시간을 확인하지 않는 싸움. 시계를 보면 볼수록 시간은 더디게 가기 때문이다. 사업 리서치 보고서를 써야 하지만 아직까지 상무가 직접 찾는 것은 아니니 그래도 여유는 조금 남아 있다. 정신없던 오전과는 달리 이제야 제정신을 차리고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창 밖에서 화사한 햇살이 들어오고,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사무실에서 벗어나 바깥을 향하고 있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 가는 소리마저 귀에 들리는 듯하다.
4시... 5시... 시간이 갈수록 느리게 가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부디 퇴근 전까지 아무 일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서류에 글자를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한다. 나의 마음도 이미 화면에 머무르지 못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 있다.
5시 45분... 50분... 과연 나는 오늘 칼 같은 퇴근에 성공할 것인가. 마음 졸이던 그때 뒤에서 부장이 부른다.
"그 상무님 사업 리서치 보고서 다 했나?"
아무래도 이번 주를 여유롭게 보낸 대가를 이제야 치르게 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