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보장과 윤리 이야기
심리상담을 시작한다면, 이제 아예 알지 못하는 처음 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나의 가장 내밀하고 부끄러운 부분을 내비치게 되기도 하고, 괴롭고 어려웠던 역사에 대해서도 나누게 된다. 솔직하게 내 상황과 마음을 나누어야 상담에서도 그것들을 전부 다룰 수 있을텐데... 그런데,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마음이 방어막처럼 스물스물 머리를 든다.
"이 사람한테 이런 이야기까지 해도 되나? 뭘 믿고? 혹시 이런 이야기가 누구한테 새어나가면 어떡하지?"
상담실이 가까울 때는 이런 두려움이 더 커진다. 이 사람을 밖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서로 알고 있는 사람이 겹치거나 하면 어떡하나?
이 대답에 상담사로서 솔직하게 대답하자면, 사실 이것은 상담사들이 더 많이 걱정하는 영역이다. 상담사들은 기본적으로 내담자와 <상담>이라는 한 가지 관계만 맺도록 철저히 훈련받는다(혹시라도 이것을 벗어나서 상담자이면서 연애를 하자던가, 밖에서 따로 만나자던가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그 관계에서 벗어나시라고 말하고 싶다. 높은 확률로 전문자격이 없는 사람일 높거니와, 자격자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당장 학회에 신고해서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 상담사의 기본 윤리가 <이중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상담사와 내담자는 오로지 상담실 안에서만 진심어린 모든 것들을 나눈다.
그런데 밖에서 다른 관계로 내담자를 마주친다면, 사실은 상담자도 당황스럽고 곤란한 마음이 들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새로운 관계의 형태를 맺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가볍게 인사를 하고 거기를 두는 선에서 관계가 끝날지도 모른다. 마치 낯선 사람인 것처럼.
내가 더 나은 상담을 위해 상담을 받고 종결할 때, 내 상담선생님도 내게 물어보셨다. 같은 업계 사람이니 이후에 학회나 다른 영역에서 마주치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럴 때 '가볍게 목인사를 하는 것'과 '처음보는 모르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을 더 선호하느냐고. 나는 서로 목례를 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이상의 관계는 없었다.
상담사들에게 있어서 비밀보장은 가장 중요하게 훈련받는 영역이다. 신뢰할만한 자격을 가진 상담사라면 아마 특정 학회에 소속되어 있을 것이고, 그런 학회에서는 <윤리강령>을 철저히 교육한다. 한국심리학회(한국임상심리학회, 한국상담심리학회) 혹은 한국상담학회에 소속된 상담자라면 윤리교육을 꾸준히 받을 것이고, 자격증 심사를 받을 때도 윤리에 대한 질문을 분명히 받았을 것이다.
그만큼 상담은 비밀보장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하물며 보호자를 대동하는 청소년 상담을 할 때도,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부모에게 내용을 전달하지 않는다. 부모님이 물어오실 때가 많다.
" 아이가 무슨 이야기를 했나요? 알고 싶어요. "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은 물론 부모님이지만, 상담자는 내담자의 상담자이므로 답은 동일하다.
"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하고 걱정되시는 마음 충분히 이해하지만, 상담 내용은 비밀보장의 원칙이 있어 말씀드릴 수 없답니다. "
그러면 상담했던 내용은 그 누구도 영영 알 수 없는 것일까?
물론 어떤 것에나 예외 조항이 있듯이, 비밀보장의 원칙에도 예외가 있다.
상담사는 결국 내담자의 안녕을 원하여 이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며, 동시에 모든 이의 생명과 안전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담자나 타인의 생명이 위협되거나 사회의 안전이 위험해지는 경우에는 비밀보장을 깨고 보호자나 다른 이에게 알릴 수 있다.
그 외에도 내담자가 만약 심각한 전염병을 앓고 있으나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 상담자가 그 대상에게 이 전염병의 여부에 대해 알릴 수 있다. 하지만 상담자는 분명 이에 대해 먼저 내담자에게 스스로 알릴 마음이 있는지 물어올 것이다. 상담이란 그만큼 관계의 신뢰를 중요시한다.
그러니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선에서, 가능한 솔직히 마음을 터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솔직하게 마음을 개방하는 것이 관계를 키우는 힘이 될 테고, 그것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