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변화가 오나요?
대학생 때, 처음 상담실에 들어가던 순간이 아직도 떠오른다. 정작 심리학과에 다니고 있으면서도, 상담을 통해 뭐가 달라지겠냐는 생각이 가득했었다. 내가 특별히 남들보다 힘들고 어렵지도 않은데, 상담에 간다고 뭘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많았다. (자기 이슈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니 내가 그만큼 통찰이 없었다는 뜻이다) 상담을 중단하고 나서도 나는 내가 별로 달라지지 않은 줄 알았다. 예민하게 탐지하지 못해서 그냥 똑같은 삶을 사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때의 상담이 참 많은 변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상담을 진행하면서, 상담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신호를 알아차리기란 마냥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를 민감하게 잘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지만, 어린 시절의 나처럼 그 순간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흘려보내게 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운동은 몸의 변화를 눈으로 보여주니까 알아차리기가 더 쉬운데, 이 내면의 변화는 면밀히 살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상담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일단, 변화는 엄청난 속도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일주일을 꾸준히 운동했다고 몸이 울그락 불그락 더락처럼 커지거나, 순식간에 몸무게가 10킬로그램 정도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모두 이 긴 여정의 부담감 때문에 빨리 변화하기를 원하고, 그러다보면 '이게 맞나?'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흔히 상담 초기에는 더 힘들다는 느낌을 받기도 쉽다.
체력을 키워 회사에 가서 피곤하지 않게 일을 하고 싶어 운동을 시작한다고 생각해본다. 초반 한달간은 오히려 운동을 함으로서 더 피곤함이 커질 것이다. 체력이 늘 때까지는 이 고된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아침에 운동을 하고 회사에 출근하면, 꾸벅꾸벅 졸거나 점심시간에 늘어져 자게 될지도 모른다. 근력과 체력을 기르는 과정은 반드시 이런 고통을 수반한다.
상담도 마찬가지이다. 외면하고 피하면서 일시적으로는 줄였던 고통(물론 이 방법으로 이후에는 더 큰 파도가 밀려왔을지도 모르지만...)을 직면해야 한다면 당장 얼마나 괴로울까. 한 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나의 고통에 대해 들여다보고, 통찰하고, 뭔가를 해나가기 위해 애써야 한다면 이 시간이 얼마나 힘겨울까. 예전에 내담자분들이 초반에 '상담을 한 시간 하고나면 마치 헬스장에서 몇 시간을 보낸 것 같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는데, 아주 공감했다. 나도 상담초기에는 똑같이 그렇게 에너지를 많이 써, 진이 빠져버리기도 했다. 후반에는 같은 문제를 다루면서도 에너지가 소진되지 않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지만.
그런 시간들을 지나보내고 있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열심히 상담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평생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나의 일부를 들여다보려 하지 않고 지내왔다. 평생을 해온 습관을 바꾼다고 생각해보면, 익숙해져있는 몸과 마음이 당분간은 괴로워할 것이라 예상이 된다. 억누르고 외면했던 감정들이 올라서기 시작할 때는 당연지사 불편감도 커진다.
그러나 이런 시간들이 지나면 점차 미세한 신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람마다, 상담의 주제마다 다르겠지만 보통은 이런 모습들이 '신호'로 작용한다.
예전에는 몰랐던 내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내 스스로도 의문이 들었던 순간들, '내가 그때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났지?' 혹은 '나는 이 순간에 왜 이렇게 반응하는거지?'라며 의아했던 질문들에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표현하거나 느끼지 못했던 방식으로 내 감정의 '이름'을 붙이게 되기도 한다. 뭉뚱그려져 불쾌하다고만 느껴졌던 감정 안에 숨어있던 여러가지 감정들의 진짜 이름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이름을 붙인 감정은 다루기 훨씬 수월해진다.
어쩌면 이전에 경험한 똑같은 상황과 마주칠 때, 또 상담의 작동신호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즉각적으로 강하게 반응했던 순간에 시간을 두고 대응할 수 있게 된다거나,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거나,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말하는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항상 나에게 가혹하게 비난하면서 우울감이 더 커졌던 상황에, 이번에는 따뜻한 말과 위로를 건네보게 될지도 모른다.
큰 변화에 이르기까지, 이런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모인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돌아보면,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져있다고 느끼게 된다. 우리가 기다리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