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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수 Jan 04. 2023

우리는 왜 재벌집 막내아들과 사랑에 빠졌나

재벌집 할아버지에게 바치는 단상

심리학자에게 드라마는 보물창고다(혹자는 일의 연장선상 같아서 싫다고도 하지만). 특히, 각 인물의 캐릭터성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요즈음 유행하는 형태의 드라마는 거의 자원의 보고다.


사람을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어 심리학자가 되었는데, 배우님의 열연에 힘입어 입체적으로 표현된 하나의 인간(character)을 들여다보는 것이 얼마나 흥미롭겠는가.


관음적 변태라고 손가락질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인간에 대한 이 정도 호기심이 없으면, 이 바닥에 발 붙이고 있기 쉽지 않다. 자고로 호기심이 관심을 만들고, 관심이 쌓여 사랑을 이루는 것 아니겠는가?


드라마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며 유행한다. 개별 인물의 독특함보다 그들 사이의 로맨스의 서정과 역동에 초점이 맞춰졌던 90년대를 거쳐('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 현대는 개별 인물의 캐릭터성이 많이 부곽 되는 것 같다.


흔히 말하는 '원톱물'의 경우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한 사람에 집중해서 그의 서사와 내면의 감정, 행동을 세세하게 풀어내니 그 하나의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고로, 나는 이른바 그 '원톱물'을 사랑하는 심리학자다.


최근에 떠들썩했던 드라마가 하나 있다. 집계된 시청률과 반응을 보면, 많은 이들이 드라마에 푹 빠져 허우적거렸던 것 같다. 그렇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재벌집 막내아들'과 사랑에 빠졌다기보다, '재벌집 대빵 할아버지'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나? 진양철 회장, 우리는 그와 사랑에 빠졌다. 젊고 잘생긴 역할도 아니고, 주인공의 상대 이성배우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정확히 그와 사랑에 빠졌다. 왜일까?


그 답은 진양철의 캐릭터성에 있는 것 같다.





① 진양철은 먼치킨이다.


먼치킨이라는 용어는 흔히, 소설이던 영화던 그 세계관에서 군림할 만큼 가장 강한 능력을 지닌 초인적인 자를 의미한다. 우리는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없는 그 먼치킨의 능력을 보며 희열을 얻는다. 말 그대로 판타지 소설이 그 사람의 실현할 수 없는 판타지를 자극한다.


그런데, 진양철은 '실재할 수 있는' 동시에 '먼치킨'이다!

게다가 그 능력을 몇십여 년간 성실히 사용하여 결과물을 이룩해 왔다. 와중에 성실하기까지 한 먼치킨이라니….


② 그 먼치킨은 입체적 인물이다.


진양철은 굉장히 강렬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캐릭터이다.


역할을 맡은 이성민 님의 공도 큰 것 같지만, 캐릭터 자체가 대범하고 과감하며 자신과 자신이 키운 존재(고로 자신의 분신인, 순양)밖에 모르는 다소 나르시시스틱 한 사람이다 보니, 자기주장도 강하고 표현도 거칠다. 나리시시스트의 특징은 분명 다른 글에서 다룰 일이 있을 것 같아, 이 부분은 넘어가겠다.


그는 감정만 변화무쌍한 것이 아니라, 행동과 판단도 예측이 어렵다. 쉽게 예측되는 평면적 인물은 호기심을 주기 어렵다.









③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먼치킨이 애정을 품는 건, 주인공?


극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가지는 능력자 진양철. 강한 캐릭터만큼 자칫하면 관심과 주목은 받되, 미움을 사기도 좋을 텐데…. 여기에는 주인공 진도준과의 관계성이라는 든든한 방어막이 있다.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백마 탄 왕자님이 중요한 역할이 되며 사랑을 받듯이, 진도준의 성공기에는 먼치킨 진양철이 다소 지독한 왕자님의 역할을 했다.


신데렐라는 다른 이유로 사랑과 인정을 받았다면, 진도준은 가치와 능력을 증명하며 그의 인정을 획득했다는 점이 다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는 천천히 주인공의 뒷배가 되기로 결정한 것이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과 감정적 연결을 가지며 마음 짠한 교류도 했다. 그리고 그를 지켜보던 시청자들과도 마음의 연결선을 이어버렸다.


캐릭터를 멋지게 만들어낸 연출진 분들과, 완벽하게 살려낸 배우분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방구석 작은 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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