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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May 23. 2020

나의 브런치 적응기

아직도 브런치가 낯선 당신에게




1년 전, 나는 호기롭게 브런치에 출사표를 던졌다. 브런치 앱은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나와는 딱히 인연이 없는 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독서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친구를 통해 이 세계에 발을 딛게 되었다. 친구의 글은 재밌었다. 독서가 삶의 큰 지분을 차지하는 사람답게 독서 리뷰를 꾸준히 쓰고 있었다. 한 편의 시처럼 멋진 제목의 매거진에 자신만의 글을 차곡차곡 모아 온 친구의 브런치를 보자마자 어떤 욕망 하나가 창자를 뚫고 쑥 올라왔다. 바로 여기야! 내가 찾던 곳이!!


친구의 글을 읽은 이후 브런치에 내 글을 쓰는 상상을 매일 했다. 정식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리려면 심사에 통과해야 한다는 말이 부담스러웠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그동안 블로그에 썼던 글들을 추려 도전장을 내밀었다. 신청을 한지 이틀이 지났을 때 심사에 통과했다는 연락이 왔다. 마치 원하던 회사에 합격 통보를 받은 것처럼 기뻤다. 나는 지체 없이 글을 하나 써서 올렸다. 혹시나 누군가가 읽고 좋아요를 눌러주진 않을까 두근두근하던 그때의 그 마음을 기억한다. 수시로 앱을 열어 우측 상단에 조그마한 푸른색 점이 찍혀 있기를 바랐다. 내 첫 글은 딱 세 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 글이 읽히는 것 같지 않았고, 앱을 켜도 글을 쓰지 않는 이상 딱히 오래 할 것이 없었다. 추천 글들을 둘러보아도 왠지 읽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첫 글을 쓰고 난 후 거의 한 달 동안은 앱을 켜지도 않았다. 블로그에는 이미 나와 친분이 생긴 여러 이웃분들이 있는데 그곳을 버리고(?) 브런치에 정착하기에는 이곳의 온기가 부족했다. 그러다 조금씩 조금씩 관심 가는 작가들이 생기고, 쓰고 싶은 글들도 생기면서 1년이 지난 지금은 완전히 적응했다. 


문득, 아직도 브런치가 낯선 분들에게 나의 1년간의 브런치 적응기를 들려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의 브런치 적응기, 들어보실래요?



브런치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첫 번째 이유는 내 주변에 브런치를 이용하는 사람의 숫자가 현격히 적다는 사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딱 두 명이었다. 그나마 한 명은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는 용도로만 브런치를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로 글을 쓰는 친구는 그 이름도 멋진 '이태원 댄싱머신' 뿐이었다. (이태원댄싱머신님은 독서 리뷰를 주로 쓰는, 톡 쏘는 한줄평 달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치 새로운 학교에 처음 간 전학생처럼 모두가 낯설었다. "안녕, 내 이름은 XXX야. 넌 이름이 뭐니?" 이런 단순하 자기소개와 질문도 부끄러워서 쉽사리 하지 못했던 나답게 다른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는 것 마저도 떨렸다. (도대체 이게 떨 일인가?)


브런치 적응에 시간이 걸렸던 또 다른 이유는 남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서 올리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글을 좋아하고, 글쓰기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다 보니 아무 글이나 싸지를 순(?) 없었다. 싸이월드 일기나 페이스북 글들은 큰 생각 없이, 자기 검열 따윈 거치지 않고 사춘기 소녀 같은 글들로 도배했었다. 하지만 여긴 으른들(?)의 세계다. 더는 코 흘리게 같은 글들을 쓸 수 없었다. 


또한 나만의 관심작가 리스트를 만드는 데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열심히 손품(?)을 팔아야 나와 관심사가 일치하거나 글을 유독 맛있게 잘 쓰는 작가들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브런치에 적응하여 정착하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브런치에 적응하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내 경험을 살려 이야기를 해보자면 첫째로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나만의 매거진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총 7개의 매거진을 만들었다. 그중 제일 처음 만들었던 매거진은 <선생님도 일기 써요?>이다. 학원 선생님으로 지냈던 경험을 녹여내어 잊을 수 없던 아이들과의 추억을 털어놓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막상 쓰려니 글이 잘 안 써졌다. 오래전 이야기를 기억해 내서 쓰는 것도 어려웠고, 하여튼 그냥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나랑 얘기 좀 해>라는 매거진을 만들었다. 속상한 일이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는 점점 줄어들고, 결국 내 이야기는 나에게 쏟아내야겠구나 싶어서 만든 매거진이었다. 단순하게 일기장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 매거진이 생긴 후로는 쓰고 싶은 것들이 매일매일 생겼다. 글솜씨가 좀 떨어지면 어때? 내 이야기는 오직 나만이 가장 잘할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다 보니 어렵게만 생각되던 브런치 글쓰기가 한층 쉬워졌다. 


마음에 드는 관심작가 수를 늘리는 것도 브런치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만의 관심작가 늘리는 팁이 있다면 끌리는 제목을 찾는 것이다. 매일 브런치에는 많은 추천글들이 뜬다. 나는 심심할 때면 브런치 앱을 켜고 추천 글들의 제목을 쭉 훑는다. 그러다가 꽂히는 제목을 발견하면 무조건 들어가서 정독한다. 이런 방법으로 정문정 작가님도 알게 되었다. 우연히 <몸에 꼭 맞는 불행>이라는 제목에 꽂혀서 글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글은 더 좋았다. 정문정 작가님은 이미 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출간 작가였다. 역시 잘 쓰는 사람은 내공이 다르구나 생각했다. 


나는 제목에 끌려 읽은 글이 마음에 들면 꼭 작가 소개까지 찾아 읽는다. 작가 소개를 읽으면 나의 관심사와 맞는 부분이 있는지, 이 작가의 다른 글들이 더 기대되는지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 만약 작가 소개까지 읽었는데 여전히 매력적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구독을 누른다. 이제 관심작가의 맛깔난 새 글이 주기적으로 올라올 것이다!


반대로 내 글에 지속적으로 좋아요를 눌러 준 작가분의 브런치를 구경하다가 관심작가로 등록하는 경우도 있다. 한 번, 두 번 같은 필명의 작가님이 좋아요를 눌러주시면 자연스레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가 문득 '와, 이 분은 내 글을 어떻게 알고 이렇게 계속해서 읽어주시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일면 프로필을 클릭해서 그분들의 브런치를 구경한다. 놀라운 것은 거의 대부분 나와 취향이 비슷하거나 글을 맛깔나게 잘 쓰는 분들이었다. 그럼 더더욱 '아니 이런 분들이 어찌 나의 글에 좋아요를...'이라는 황송한 마음이 든다. 


브런치에 새 글이 뜨면 틈틈이 읽고 소통을 해야 한다. 여기에서 소통은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다는 행위를 말한다. 나는 좋아요와 댓글에 인색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무슨 글쓰기 대회 심사위원은 아니지 않은가? '잘 읽었어요'(혹은 그저 '읽었어요'여도 좋다)라는 표시로 하트를 한 번 꾹 눌러주면 돈 한 푼 안 들이고 누군가의 하루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나는 같은 이유로 나에게 달린 댓글에 정성껏 답글을 쓴다. 내가 쓴 글에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좋아요가 쌓인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런데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댓글까지 달아주었다면? 이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이나 진배없다. 댓글에 대한 답장은 내 미천한 글을 읽어준 분에 대한 최소한의 감사 표현이다. 이렇게 쌍방의 소통이 이루어질 때 글쓰기에 대한 애정도 싹트고, 브런치라는 공간에 비로소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브런치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나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나도 종종 글을 쓸 때 발행 버튼을 누르기까지 고민이 될 때가 있다. '내가 너무 징징거리는 건 아닐까?' '내가 너무 개인적인 일들을 공개하는 것일까?' '이런 사소한 것들에 누가 관심이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히면 어떤 글도 발행할 수 없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이런 거 저런 거 다 감출 거면 글은 왜 써?'하고 나에게 반문하거나 '감출수록 글의 매력은 떨어진다'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긴다. 생각보다 타인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내가 무슨 글을 쓰던 그 내용을 신경 쓰며 전전긍긍하는 것은 오직 나 하나. 친구를 사귀려면 나를 드러내야 하는 것처럼 브런치에서 좋은 인연을 만들어 나가려면 나를 적당히 열어 보여줘야 한다. 




지난 1 년간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참 많은 것들을 얻었다. 이성 100%인 공대생 남편과 사느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고 울상 짓던 나에게 소통의 창구가 생긴 것이다. 여기에 틈틈이 남편 흉(?)도 보며 부부 사이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감정을 해소하기도 한다. 차분하게 글을 쓸 때, 나는 내 마음의 더 깊은 곳까지 내려갈 수 있다.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글들은 나의 든든한 자산이 된다.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사람들의 '우쭈쭈'를 받으며 나는 비로소 글 쓰는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브런치 어렵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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