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에게 파닉스가 꼭 필요한지 그 궁금증을 풀어봅시다!
파닉스, 꼭 배워야 하나요?
파닉스를 꼭 배워야 한다는 분들도 계시고, 파닉스를 굳이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저는 오늘 파닉스 공부가 과연 모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인지 제 개인적인 답을 해보려 합니다. 제 생각이 '절대적인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동안 제가 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영어를 배웠고, 한국에 돌아와 대학생 때부터 아이들을 쭉 가르치며 깨닫고 정립한 생각을 여러분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참고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파닉스를 반드시 배워야 하는가?
"반드시"라는 단어를 붙이게 되면 사실 세상의 대다수의 일들이 "그렇지 않다"라는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파닉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겠지요. 우리가 파닉스, 즉 영어를 읽고 쓸 수 있게 되는 법을 배우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자연스럽게 습득하기
제가 바로 이렇게 영어를 배웠어요. 제가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영어는 초등학교 정규 교육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제 기억으로 제가 처음 영어를 배운 것은 눈높이 영어 학습지를 통해서였고, 선생님은 알파벳 이름만 겨우 아는 저에게 (몇 살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초등학교 3학년쯤?) 테이프를 듣고 문제를 풀라고 시켰죠. 저는 세상에서 영어 공부가 가장 싫은 초등학생이었고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죠? 이런 제가 영어 선생님이 되다니요ㅎㅎ) 시키는 대로 눈치껏 문제는 풀었지만 엄청나게 혼란스러웠던 감정이 고스란히 기억납니다.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저는 영어를 제대로 읽지 못했어요. 자주 본 단어 몇 개만 외워서 소리를 알게 된 게 전부였고, 조금이라도 철자가 다른 단어가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였답니다.
그러던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 이민을 가게 됩니다. 그때는 중학교 영어 수업으로 아는 단어들은 조금 더 많아졌지만 영어 실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고, 미국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4년간(미국 고등학교는 4년제) 살아남기 위해 영어를 공부했습니다. 학교에서는 항상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변 상황이나 사람들을 살피며 눈치껏 영어를 습득하게 되었죠.
결론적으로 저는 미국에 간지 1년 정도 지나자 제법 유창하게 영어를 읽을 수 있었고 학업도 적당히 따라갈 수 있는 실력이 되었습니다. 파닉스를 배우지 않아도 영어를 읽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대답은 된 셈이죠. 그런데 제가 한국에 돌아와 영어 과외를 처음 하게 되었을 때 "파닉스"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아이에게 파닉스 좀 가르쳐 달라는 학생 어머니의 부탁에 저는 도대체 파닉스가 무엇인지 찾아보게 되었죠.
유, 레, 카!
파닉스가 무엇인지 알아보던 저는 유레카를 외쳤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오랜 기간 하나씩 습득했던 것들이 정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각각 알파벳의 기본 음가를 듣고 그 소리를 내기 위한 정확한 입모양을 살펴보며 "내가 미국 사람들의 말을 귀로 듣고 정확하게 모방하고 따라 하고 있었구나"하고 깨닫게 되었어요. 신기한 경험이었죠. 동시에 파닉스를 배웠더라면 영어를 유창하게 읽는데 걸린 시간이 확 줄었겠구나 하고 안타깝기도 했어요. 뭐, 제가 어릴 땐 영어교육법에 대한 노하우도 지금 같지 않던 때였으니 이해해야죠.
정리하자면,
파닉스를 굳이 배우지 않아도 영어를 읽고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소리들이 차이와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인지능력을 갖춘 나이어야 한다는 것(제 생각엔 적어도 한국어가 유창 해지는 초등학교 2학년은 지나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규칙적인 소리와 불규칙적인 소리 모두 습득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최대한 많은 단어들에 노출시켜주어야 한다는 점이죠.
결국 이 말은 영어교육의 효율성 측면에서 매우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아이가 이미 고학년이고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생활한다면 파닉스는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으나, 한국처럼 영어가 EFL(외국어로서의 영어,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인 환경에서는 제대로 된 파닉스 수업을 통해 아이가 영어를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둘째, 파닉스를 통해 가르치기
위에서 이미 결론이 났지만 파닉스를 통해 읽기를 가르치는 것은 훨씬 효율적입니다. 그 이유는 영어 단어의 80%는 파닉스 규칙을 따라 소리가 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어 단어 중에서 규칙을 따르지 않는 단어의 사용빈도가 생각보다 많아서 파닉스만으로 완벽히 영어를 읽을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단어들은 이 규칙 안에서 발음이 되고 약간의 예외가 있는 것일 뿐입니다.
각각의 알파벳이 지닌 기본 음가를 익힌 후 단어를 읽어나가면서 아이들은 굉장히 큰 성취감을 느낍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암호처럼 보이던 글자들이 어느새 읽을 수 있는, 해독 가능한 언어가 되었기 때문이죠. 파닉스를 배우기 싫어하는 아이는 이 읽는 즐거움을 아직 느끼지 못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하는 사람의 역할도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파닉스를 가르치면서 느꼈던 것 중 하나는 파닉스 과정은 영어공부 전체를 통틀어 가장 즉각적인 성취감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때라는 점입니다. 인풋과 아웃풋이 명확해서 이때 성취감을 느낀 아이들은 "영어는 재밌다, 나는 영어를 잘한다!"는 자신감을 얻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파닉스 후에 이어지는 영어공부를 훨씬 수월하고 즐겁게 따라오더군요.
또한, 파닉스를 통해 유창하게 영어단어를 읽게 된 아이들은 단어의 철자나 뜻을 외우는 데에도 훨씬 뛰어난 성과를 보입니다. 그 이유는 단어의 정확한 소리를 알면 그 소리에 호응하는 철자를 쉽게 생각해내고 한 두 개의 변칙들만 암기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모든 정보들이 낯설기 때문에 단어의 뜻을 외울 때도 이 단어를 기억할 수 있게 만드는 anchor(닻)이 필요합니다. 단어의 정확한 발음을 알게 되면 그 발음을 닻으로 삼아 거기에서부터 철자와 의미를 더해서 외울 수 있게 됩니다.
결론은 그래서...
파닉스를 반드시 배울 필요는 없지만, 파닉스를 배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이렇게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자들은 파닉스는 배울 필요가 없다, 파닉스에 시간을 오래 할애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수학의 덧셈, 뺄셈을 가르치려면 제일 먼저 숫자를 가르쳐야 하듯 파닉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닉스 자체가 영어 교육의 일부분이자 처음을 열어주는 단계이기 때문에 영어공부를 시키려면 "파닉스는 무조건 빨리 떼고 보는 것"이라거나, 그냥 바로 넘기고 문법이나 어휘 공부를 시작해도 된다고 생각하시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파닉스도 영어공부입니다. 쉽다고 무시하시지 마세요. 파닉스가 쉬운 것은 우리 어른들의 입장에서만 그런 것입니다!
오늘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계속해서 도움이 되는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