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걷기, 매일 쓰기 D+97

조카와의 하루

by 마리뮤





어제는 친언니를 만나러 갔다. 남편도 친구들과 여행을 간 김에 태어난 지 한 달이 된 둘째 조카의 실물을 영접하러 간 것이다. 그리고 첫째 조카에게 영어 미술 수업도 해주려고 가방에 여러 가지 미술 재료도 챙겨서 떠났다.


둘째 조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작았다. 첫째 조카가 7살인데 신생아 옆에 있으니 어른 같아 보였다. 이모를 오매불망 기다렸다는 첫째 조카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내 손을 잡아끌면서 "이모랑 수업하고 싶다~"라고 했다. 영어 미술 지도사 자격증을 배울 때 두어 번 언니네 집에 들르면 수업(을 빙자한 영어로 놀기)을 했었는데 그게 재밌었던 모양이다.


언니는 사교육을 태권도 빼곤 아무것도 안 시켜서 영어는 내가 놀러 갈 때마다 조금씩 해주기로 했다. 이제 7살이니 슬슬 알파벳 이름도 알려줘야겠다 싶어서 A부터 F까지 알려주고 즉석으로 게임을 만들어서 놀았다. 그러고 나서는 종이를 오려 소꿉놀이도 하고, 그림 그리고 가위로 따라 오리기 놀이도 하고 재밌게 영어로 놀았다.


역시 아이들은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여서.. 결국 나는 벌러덩 드러누웠다. "이모... 좀만 쉴게"


최근에 12시 이전에 잠든 적이 없는데 ㅋㅋ 어제는 9시에 골아떨어졌다. 첫째 조카는 기어코 내 옆에서 잔다고 9시에 같이 누웠는데 책 안 읽고자냐고(매일 밤 아빠가 책 읽어주는 습관이 들어) 하기에 이미 눈도 뜨기 어려울 정도로 지친 나는 "어, 오늘은 누워서 눈감고 이모가 지어낸 이야기 들려줄게"라고 했다.


막상 운을 그렇게 띄웠는데 상상력이 빈곤하여 ㅋㅋ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빨간 모자 스토리랑 비슷한 무언가를 지어냈다. 대충 여자아이가 할머니랑 살았는데 할머니가 집 앞 숲 속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아라, 거긴 큰 성에 아주 못된 마녀가 산단 다하고 신신당부했다는 내용이다. 거기까지 말하자 뒷내용을 재빠르게 생각이 안 나서


"거기서부턴 로하(첫째 조카 이름)가 이어받아서 들려줘~"했다. 별 기대 없이 던진 말인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가 뒷내용을 막 지어서 말해주더니 더 이상 생각이 안 나는지 또 나에게 토스했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괴상한 동화 스토리를 지어내고 결국 "그 소녀와 왕자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하는 고리타분한 결말을 답습하고서야 꿈나라로 갈 수 있었다.


일찍부터 푹 잤더니 7시도 되기 전에 몇 번이나 깼다. 그러다 7시에 일어났더니 조카도 바로 잠이 깨어 "이모랑 놀고 싶다~"시전. 으하하하


이모 배고프니 아침밥 좀 차려달랬더니 ㅋㅋ "요플레는 어때?"라기에 바로 오케이를 외쳤다. 조카가 꺼내 준 요플레를 뜯어 사이좋게 하나씩 먹고 또 아침 놀이. 중간중간 쉬려고 꼼수를 부렸는데 그때마다 조카가 삐져서 난감했다.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가면도 만들어주고 종이로 나막신 같은 걸 만들어 신고ㅋㅋ 창의력 대장의 면모를 보였다.


한참을 놀고 언니도 깨어 식탁에 둘러앉아 오래간만에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형부까지 합세하여 아주 신나게 대화를 하는데 조카의 눈에서 레이저가 ㅋㅋㅋㅋ '이모 그만 수다 떨고 나랑 놀아'하는 무언의 압박. "이모가 오랜만에 로하 엄마랑 만났는데 우리도 수다 좀 떨자"하며 더 수다를 떨다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아서 다시 조금 더 놀아주었다.


집에서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지만 체력 안배를 위해 점심을 먹고 1시쯤 일어났다. 내가 짐을 챙기려는데 가방에 이상한 게 들어있었다. 꺼내보니 조카가 아침에 만든 가면 중 하나였다. 나는 그 의중을 몰라 "이모 가방이 너무 무거워. 가면은 여기 두고 갈게~"하며 다시 꺼내 놓았는데 어랏, 가면 말고 작은 종이 하나가 더 있었다.



아침에 머리카락 자르기 놀이한다고 종이에 실 묶어서 놀던 건데 그 종이 뒤에 "사랑"이라는 글씨와 함께 나로 추정되는 사람을 그려 넣은 게 아닌가!!


조카는 이모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 몰래 가방에 선물을 넣어 둔 건데 ㅠㅠ 나는 그것도 모르고 가방이 무겁다는 어이없는 말을 했던 것이다. 나는 급히 "어머! 이거 이모 주는 거야? 이건 꼭~ 챙겨 가야겠네~~ 너무 고마워!!!"하고 종이를 가방에 챙겼다.


평소에는 내가 집에 돌아가도 의연하게 잘 인사하더니 오늘은 기어코 펑펑 우는 조카의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렸다. 다음에 또 온다는 약속을 하고 나섰는데 두고두고 그 어린 마음이 생각났다. 비록 체력은 비루하지만 다음번엔 군말하지 않고 더 잘 놀아줘야지 ㅠㅠ


홍대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왔다. 일부러 집 앞 몇 정거장 앞에서 내려 오늘 못한 걷기 운동을 대신해서 걸어왔다.


1595158138578.jpg 매일 걷기 97일차
1595108752960.jpg 7시 기상 7일차!

바쁘지만 알찬 하루였다. 이제 남은 시간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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