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오프라푸치노를 시켰어...
'별안간 웬 오레오프라푸치노?'
지갑에서 꺼낸 체크카드를 건네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10분이고 20분이고 차근히 그리고 꼼꼼히 모든 메뉴와 각각의 메뉴를 선택했을 때 내가 느낄 만족감을 비교하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메뉴를 시키지 않은 채 카페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기도 부담스러웠고, 내가 어서 무언가 시키기를 기다리며 힐끔거리는 종업원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사실 내가 이 카페에 오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고, 밀크티가 맛있다는 것. 그렇다면 오늘도 어김없이 밀크티를 주문하면 될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메뉴 결정하셨어요?"라는 종업원의 말에 전혀 생각지도 않게 "오레오프라푸치노 주세요"라고 대답해버렸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에게는 결정장애가 있다. 음식점이든, 카페든 빼곡하게 채워진 메뉴판 앞에서 나는 언제나 현기증을 느낀다. 그리고 현명한 소비와 최상의 만족도를 동시에 충족해야한다는 엄청난 압박에 남들이 보든말든 손톱을 잘근잘근 뜯고 싶은 기분에 휩싸인다. 부지불식간에 내뱉은 말이지만 어쨌든 내가 시킨 메뉴에 대한 책임을 져야했다. 색다른 메뉴는 언제나 '좋은 시도였다'라는 위로,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달콤하지만 텁텁한 그 음료를 마시면서 유리진열장에 때깔 좋게 늘어선 밀크티병을 한없이 그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나는 남들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지 못하는 압박을 혼자서 잘도 찾아서 느낀다. 예를 들면, 서른중반이 되도록 소극적이고 변화를 두려워하여 나만의 동굴에 기어들어가는 나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내야한다는 압박 같은 것이다. 밀크티가 좋으면, 그냥 365일 내내 한 카페에서 밀크티만 마시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억지로 새로운 메뉴를 시도해보라고 압박한다. 실패가 두려워서 만날 밀크티만 쳐마시는 것은 아주 비겁한 짓이라며, 나를 몰아세운다. 표면적으로는 정말 자연스러운 주문 과정이고, 자리에 앉아서도 천역덕스럽게 음료를 즐기기 때문에 나의 이 내밀한 압박에 대해서 눈치 채거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로지 이 세계에서 나 혼자서만 은밀하게 느끼는 압박과 좌절인 것이다.
왠만하면 모르는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고 싶지 않고, 그들과 일부러 섞여 친목을 나누고 싶지 않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 중에 하나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도 나는 친숙한 것이 좋다. 하지만 이런 나로 사는 삶의 한계와 범주는 너무 뻔하고, 지루하다. 나의 이 좁은 세계가 확장되는 것이 두려움과 동시에 나는 이 세계가 확장되기를 너무나 간절히 원한다. 어른이 되는 것은 어쩌면 나의 가장 못난 모습을 직시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른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모르는 장소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모르는 메뉴를 불쑥 주문하고,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받고, 모르는 상황을 견디는 것 그리고 남몰래 불안에 떠는 내 안의 아이를 달래는 것. 내가 나로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두렵지만 조금씩 낯선것들을 내 작은 동굴 안에 초대하고, 눈을 마주하고, 인사하다보면 언젠가 내 동굴이 이 세계를 품을 수 있을 정도로 커져있지 않을까. 작지만 원대한 꿈을 꿔본다. 언젠가 눈하나 깜짝 안하고 오레오프라푸치노 따위를 시키고, '아, 오늘도 역시 폭망이네'하고 으하하 웃어버릴 수 있는 그런 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