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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Jul 03. 2024

임신 16~17주 차 기록

방심 금물!

방심은 금물이다. 14주 차 이후로 입덧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매일 저녁 입덧약 두 알을 복용 중이었다. 입덧약을 끊어볼까? 싶었지만,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혹시나 컨디션에 지장을 줄까 두려워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깜박하고 저녁 약을 먹지 않고 일어났다. 그날도 여전히 컨디션이 좋았고, 활력이 넘쳤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이틀 동안 약을 먹지 않았다.


아뿔싸!


낮에는 괜찮았는데 저녁을 먹고 나서 잊고 있던,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괴로움이 찾아왔다. 저녁을 좀 든든하게 챙겨 먹긴 했지만, 먹은 양에 비해 과할 정도로 속이 더부룩하고 명치가 꽉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끝도 없는 심연에서 펌프질(?)을 하듯 트림이 끝도 없이 올라왔다. 하루는 과식 때문에 소화가 안된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음 날 저녁에도 또 똑같은 증상을 느끼자 아차 싶었다. 입덧이로구나!


끝났다고 방심했는데 아직 완벽한 이별은 아니었던가보다. 입덧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날 이후로 다시 저녁에 두 알씩 입덧약을 챙겨 먹는다. 신기하게도 그 체증은 말끔히 사라졌다. 입덧약 만세! 이 약이 없던 시절의 임산부들은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텼을지 감히 상상하기도 싫다.


16주 차에 기형아 2차 검사가 있어서 병원에 다녀왔다. 이 날은 성별을 알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병원을 가기 일주일 전부터 설레었다. 딸일까? 아들일까? 우리 부부는 49대 51 정도로 아주 약간 딸이기를 더 희망하고 있었다. 첫째 아이가 딸이라서 자매가 더 좋을 것 같다는 이유도 있었고, 조카들도 모두 딸이다 보니 아들은 나에게 낯선 존재라는 느낌이 강해서 그렇기도 했다. 그러나 양가 어머님들은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불쑥 '아들'을 언급하시곤 했다. 그런데 무조건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구시대적 발상으로 나온 언급은 아니었다. 표면적으로는(?) 아들, 딸 모두 상관없이 다 좋다고 하시는데 "만약 아들이면..."으로 시작하는 말이라든가, "XX이가 그러는데 이번엔 아들 같대"라는 식으로 은근한 속마음을 표면 위로 띄우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우리 둘째는 아들인가? 딸인가?

밑에서 본 아기 초음파. 두 다리 사이에 뭔가가 보인다.


초음파 상으로 '고추'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보긴 봤다. 의사 선생님께서 "여기 보이는 것 같죠?" 하시며 아기 다리 사이에 살짝 튀어나온 곳을 가리키셨다. 그러면서 덧붙이시기를 "아들일 가능성이 지금은 훨씬 높은 것 같네요. 하지만 확실하지 않아서 20주 정밀초음파를 기다려봅시다"하셨다.


기분이 묘했다. 내가 아들을 낳을 수도 있다니. 뭐랄까, 예전부터 막연하게 나는 '딸'을 낳을 것 같다는 생각은 했는데 한 번도 아들맘으로서의 나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나도 내 눈으로 본 게 있으니(?) ㅎㅎ 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생각을 한다.


낯설지만 기분이 좋았다. 딸이어도 좋았겠지만, 아들이라고 해도 너무 좋을 것 같았다. 특히 우리 엄마는 본인도 두 딸 맘인데, 첫째 딸도 손녀 둘을 낳았고, 둘째 딸인 나도 손녀 한 명을 낳은 현시점에서 인생 처음으로 '아들'을 만나게 된 터라 얼마나 설레고, 기뻐할지 눈에 선했다.


하지만 양가 부모님께는 성별을 알리지 않았다. 아직 확실한 게 아니라서 '아들' 확률이 높다는 말도 삼갔다. 괜한 기대를 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 달 동안은 현실에 충실히 보내고 싶다. 계속 식단관리와 걷기 운동(오늘 시작함 ㅋㅋ)을 이어가며 적정 몸무게를 유지할 것이고, 출산 이후에 내 커리어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여러 가지 준비를 틈틈이 해두어야겠다.


초반에 고생을 좀 많이 했지만, 별 탈 없이 건강한 임신 중기를 맞이한 것에 감사하는 오늘이다. 호랭아, 너 아들이니 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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