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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Oct 24. 2024

엄마 토닥토닥해 줘요

저녁 9시쯤 거실과 방의 불을 모두 껐다. 곧 만 3살이 되는 딸에게 "이제 잘 시간이야"하고 말했다. 아이는 자기 이부자리에 누워 나도 얼른 자기 옆에 눕기를 기다렸다.


"엄마, 토닥토닥해 줘요."


매일 아이는 나의 손길을 느끼며 잠에 든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자그만 아이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딸은 잠이 들 것 같다가도 동요를 흥얼거리거나,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둘째 임신 33주 차가 된 나는 첫째 아이를 재우려고 누우면 그야말로 방전 상태가 된다. 아침부터 아이 등원을 시키고, 집청소를 하고, 끼니를 챙겨 먹고, 일을 하고, 아이를 하원시키고, 저녁을 챙겨 먹이고, 아이에게 TV를 틀어주고 또 일을 하고, 잘 준비를 하고 누우면... 아무 소리도 듣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단잠을 자고 싶어 진다.


한참을 토닥여주어도 잠들지 못한 아이는 "엄마, 쉬하고 싶어요, "라고 했다. 나는 조용히 "응, 쉬해, "라고 대꾸하고 어둠 속에서 아이가 변기에 앉아 쉬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엄마, 쉬 다했어요, "라는 말에 내 무거운 몸뚱이를 겨우 일으켜 세워 아이 엉덩이를 닦아주고, 변기에 담긴 소변을 치워주었다.


"우주야, 이제 자자. 엄마도 이제 코~ 할 거라 우주가 말해도 대답해주지 못해. 알았지? 우리 이제 자자. 굿나잇."


나는 쓰러지듯 자리에 누웠다. 만삭의 산모라 왼쪽으로 돌아누워 꼭 커다란 베개를 가랑이 사이에 끼워야 그나마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 아이는 자려고 돌아누운 엄마의 등이 야속한지 칭얼거리며 "엄마, 토닥토닥해 줘요"라고 다시 말했다.


이미 대꾸할 힘이 없는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아이가 스스로 잠이 들기를 기다려보았다. 내가 대답이 없자, 울음을 앙 하고 터뜨린 아이는 토닥토닥해 줘요를 날카롭게 외쳤다.


고요한 집의 정적을 깨는 아이 울음소리에 심장이 방망이질 치듯 요동쳤다. 신생아 때부터,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항상 심장이 두근거렸다. 얼른 이 아이를 안아주고, 달래주고, 평온을 되찾아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내가 토닥여주며 재울 수는 없는데... 우리 아이도 스스로 진정하고 자는 경험을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내가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자기 합리화처럼 떠오른 생각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이 나이 때부터 아이에게 꼭 필요한 훈육의 시간인지 사실 조금 헷갈렸다. 하지만 이미 나는 아이를 울렸고, 여기서 바로 달래준다면 아이는 우는 것으로 나를 통제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울음은 항상 내 마음을 와르르 무너뜨리지만, 꾹 참았다. 아이는 한참을 울며 토닥여 달라 외쳤다가, 잠시 그쳤다가, 다시 울기를 반복했다. 내 심장도 벌렁벌렁 뛰다가, 그쳤다가, 다시 뛰기를 반복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이웃집 사람들이 뭐라 생각할까, 도 걱정되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나에겐 영원같이 길고 긴 시간이 지났지만 아이는 여전히 흘릴 눈물이 남아있었나 보다. 길게 소강상태가 되어 곧 스스로 잠이 들겠지 싶었는데 이번엔 레퍼토리를 바꿔 "엄마, 안아줘요"로 소리 높여 울었다.


당장이라도 백기를 들고, 아이를 품에 꼭 안아 토닥여주고 싶었다. 그래도 되나? 안되나? 마음이 줄다리기를 한다.


내가 바로 아이 옆에 누워 있는데... 왜 아이는 내 품에 파고드는 대신 안아달라고 울기만 할까? 이것도 엄마가 먼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길 바라는 통제권 싸움일까? 맞나? 틀리나?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나는 결국, 아이를 향해 돌아누워 입을 열었다. "엄마가 옆에 있는데 왜 이렇게 울어? 안아달라고만 하지 말고 우주가 먼저 엄마를 안아줘도 되잖아"


내 말에 아이가 몸을 움직여 활짝 펼친 내 팔 안으로 쏙 들어왔다.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이렇게 덧붙였다.


"우주야, 엄마가 매일매일 토닥여줄 수는 없어. 이제 우주도 스스로 잠들 수 있어야지."


아이는 긴 울음에 지쳤는지 내 품에 안기자마자 울음을 뚝 그치고 깊은숨을 쉬었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촉촉한 눈가를 닦아주고, 보드라운 볼을 만져주었다. 이내 아이는 깊은 잠에 빠졌다.


아이가 잠이 들며 사방은 고요해졌는데, 어쩐 일인지 내 마음은 고요하게 가라앉질 않는다. 아직도 엄마를 찾으며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앞으로 많은 밤들을 이렇게 보내야 아이가 내가 없이도 잠이 들겠지? 그리고 어느 날 밤에는 내가 나를 더 이상 찾지 않는 네 울음소리를 그리워하며 혼자 잠이 들겠지?


엄마가 되는 일은 아직도 너무 어렵지만... 그래도 너를 너무너무 사랑해. 우리 우주가 혼자서도 씩씩하게 잠들 수 있을 때까지 엄마도 씩씩하게 하루하루 나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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