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하루

by 마리뮤

9시 전에 일어나고 싶었다. 아침 출근이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기상 시간은 유동적이지만 9시 이후에 일어나는 날은 항상 기분이 썩 좋지 않다. 8시 50분에 잠깐 깨서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9시 40분이었다. 뭉그적거리다 겨우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질을 끝내고 났을 때는 이미 10시였다. 아침밥은 거를 수 없기 때문에 냉장고에서 적당히 반찬을 꺼내고 미역국을 데워서 먹고 났을 때는 10시 30분이 지나있었다.


오늘 에어비앤비에 새로운 게스트가 오기 때문에 꼭 가서 청소를 해야 했다. 학원 알바가 없는 날이기 때문에 여유가 있어서 느긋하게 샤워하고 꼼꼼하게 화장을 하고 나갈 준비를 마치니 11시 30분이었다. 집을 나서는데 저녁에 먹을 밥이 없다는 게 퍼뜩 생각났다. 에어비앤비 청소 후에 오래간만에 카페에 가서 책도 읽고 글도 쓸 작정이었기 때문에 저녁밥은 안쳐놓고 나가는 게 마음 편하겠다 생각했다. 급히 밥통을 씻고 쌀을 헹구고 취사 예약을 눌러놓고 나왔다. 홍대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는 11시 50분이었고, 광역버스는 14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서교동 버스 정류장에 내렸을 때는 12시 45분이 지나고 있었고 열심히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1시였다.


3번 방에 게스트들이 화장을 하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일 체크아웃이기 때문에 나에게 공항까지 가는 차편과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친절하게 대답해주고 공용공간을 청소하려고 했을 때는 1시 반쯤이었다. 3일간 숙소에 들리지 않았는데 의외로 쓰레기가 많이 없었다. 순간 빌라 주차장 앞에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던 쓰레기들이 퍼뜩 떠올랐다. 지난번에 음식쓰레기봉투 없이 무단 투기한 쓰레기로 민원이 있었는데 불안했다. 그간 모든 쓰레기들은 내가 직접 분리수거해서 잘 버려왔는데 주변 이웃들이 에어비앤비 운영하는 우리를 무조건 의심하고 보는 터라 억울했는데... 또 이런 일이. 옆 동에도 외국인들이 출입하는 걸로 봐서는 그쪽도 에어비앤비가 있는 것 같은데 괜히 내가 오해받아 민원이 들어올까 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모든 쓰레기들을 분리해서 봉투에 담고, 거실 및 부엌을 청소기를 싹 청소하고, 거실에 있는 화장실 타일 바닥을 말끔히 닦고 널어놓은 빨래를 개서 선반에 넣고 났을 때는 2시 47분이었다. 가방을 메고 쓰레기들을 들고나갔다. 분리수거한 쓰레기를 정해진 위치에 놓고 가려는데 아까 그 검은 비닐에 담긴 쓰레기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우리 쪽 게스트의 실수 일수도 있으니 괜한 오해를 살바에 내가 다시 분리해서 제대로 버리는 게 낫다. 점심을 못 먹어 배가 무지하게 고팠지만 그 검은 비닐봉지들을 모두 다시 숙소로 가지고 올라갔다. 3시였다. 봉투를 열어보니 욕지기가 올라왔다. 먹다만 핫도그, 퉁퉁 분 면발, 흥건한 라면 국물... 그냥 닥치는 대로 쑤셔 넣은 그 쓰레기들을 보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현타가 왔다. CCTV라도 달아야 하나. 잡히면 이마를 콱 쥐어박아주고 싶다. 3시 20분에 겨우 숙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 배고파서 두통이 왔다.


힘들고 지쳐서 점심 뭐 먹을지 고민하는 것도 괴로웠다. 오늘 카페에서 책 읽고 글 쓰며 여유 부리려던 계획이 어긋났다. 저녁을 먹으려면 집에 6시에는 도착해야 하는데 밥 먹고 카페에 가면 겨우 1~2시간밖에 여유가 없었다. 조급했고 기분이 좋지 않아서 밥과 커피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파리바게트로 향했다. 실수였다.


빵은 기름지고 느끼했고, 매번 즐겨 마시던 로얄 밀크티는 오늘따라 시럽을 전혀 넣지 않아 밍밍했다. 밀크티를 만든 직원에게 컴플레인을 하고 싶었지만 귀찮았다. 아르바이트생이 바뀔 때마다 밀크티 맛이 매번 달라져서 정말 짜증이 난다. 어떨 때는 미친 듯이 달고, 어떨 때는 밍밍하고... 하지만 새로운 음료를 시킨다고 그 음료가 더 나으리란 보장이 없어서 '오늘은 제발...'을 외치며 같은 음료를 시킨다.


빈 속에 기름진 빵이 들어가니 속이 메스껍다. 오늘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계속 어긋나기만 한다. 두통이 심해지는데 그래도 자리를 지키고 글을 쓴다. 글 하나라도 제대로 완성하고 올려야 내 어긋한 하루가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방금 전까지 지난주에 읽은 책 리뷰를 쓰고 있었는데 책에서 발췌한 부분을 적은 노트가 집에 있다는 걸 깨닫고 또 절망했다. 5시 10분이었다. 기필코 글 하나는 올리고 싶다는 욕심에 이 글을 적는다. 나의 어긋난 하루를 쭉 늘어놓고 나면 기분이 조금은 풀리려나. 더 늦기 전에 집에 가야지. 집에 도착하면 아마 6시 30분쯤일 것이다.


지금은 5시 36분이다.

글 하나는 썼으니 단추 하나는 제대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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