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나의 첫 임장기
2000년대 초반, 감수성 터지는 십 대 소녀의 일기장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돈을 위해 나의 꿈과 열정을 맞바꾸는 어른이 되지 말자!' 좋아하는 일을 하면 가난해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던 순수하고 순진했던 그 소녀는 이제 서른 중반의 '빼박' 어른이 되었고, 매일 아침 부동산 카페와 호갱노노 어플을 끼고 살며 호시탐탐 투자 기회를 엿보고 있다.
호기심이 많고 열정적인 성격 탓에 이십 대 때부터 투자에 관한 책들은 여럿 섭렵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겁이 많고 소심해서(+ 벌이도 시원치 않았음) 머릿속으로 혼자 투자해보고 '나 같이 소심한 사람은 절대 못 할 거야. 게다가 시드머니 모으다가 좋은 세월 다 가겠네'하고 포기했다.
삼십 대가 되고 결혼을 하니 그제야 돈이 조금 모였다. 결혼 전에는 한 달 월급이 고스란히 월세와 생활비로 나가고 악착같이 모은 목돈은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생겨 드리고, 작은 교습소를 차린다고 도전했다가 오픈하자마자 메르스 사태로 원생 모집에 모멘텀을 잃고 어이없이 날려버렸다. 그 후 다시 열심히 모았지만 결혼 자금으로 내 수중엔 천만 원이 전부였다.
당시 대학원을 졸업하고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취직한 남자 친구이자 현 남편도 나와 상황은 비슷했다. 나름 과외도 하고 연구실에서 돈도 받았지만 저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나와의 데이트에 펑펑 돈을 썼다. 나는 결혼할 사람이니 적금도 들라고 닦달하고 주기적으로 잔소리를 했지만 또 그런 그가 맛있는 것을 사주면 아무 소리 않고 받아먹었다. (인간의 이중성...ㅋㅋ)
결혼 후 여전히 외식으로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지만 그래도 남편의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눈 딱 감고 적금에 넣으니 조금씩 통장에 돈이 쌓이기 시작했다.
삼십 대의 나는 나의 욕망을 쿨하게 인정했다. 나는 자본주의의 노예라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나에게 어떠한 그늘도 드리우지 않았지만(가족이 화목했다) 나는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여유로움이야말로 내가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궁극의 목표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아, 나는 결국 이런 어른이 되고 말았다.
내 안에 넘쳐흐르는 창작욕은 부자가 된 후에 다 풀어보겠다며...(언제?) 그러기 위해서 당연히 부동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실제적인 행동은 이제야 하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몇 개월 전에 시작한 에어비앤비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청소 노동으로 돈을 버는 아르바이트 개념이지만 공간을 통해 수입을 창출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노하우가 잘 쌓이면 나중엔 나의 노동력 투자를 낮추고 꽤 괜찮은 수익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에어비앤비를 처음 시작하고 한 3달간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당장이라도 때려치울까 하루에도 수십 번 생각했는데 웃기게도 몇 주 사이에 '그래도 이 정도면 꽤 해볼 만하지 않나?' 싶다. 어느 분야에나 '존버 정신'이 필요하다. 초기 스트레스에 지면 결실을 맺을 수 없다.
지금은 부동산 청약에 관심이 지대하다. 아직 무주택자 신분이기도 하고 주변에서 청약 당첨으로 몇 년 사이에 몇 억을 벌었다는 무용담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기 때문에 이왕이면 나도 내 기회를 활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이런 나를 무척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그도 부의 축적에 대해 엄청난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심만 많고 스스로 무언가 알아보고 시도해보려는 열정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생각하는 아내의 열정이 더 사랑스러울지도 모른다. 가끔은 아내의 지나친 열정에 진정하라며 급할 것 없고 느긋하게 생각하라는 조언을 하는데, 퇴근하면 핸드폰 게임과 넥플릭스 시청뿐인 그의 일과를 생각해볼 때 과연 지금 우리가 느긋하게 살만 찌고 앉아있어야 하는가 심히 의심스럽다. 그가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혼자 세상만사 통달한 사람처럼 조언을 하면 그 통통한 엉덩이를 한 대 팡- 차주고 싶다.
최근 내가 사는 동네 인근에 재개발로 분양을 앞둔 아파트가 몇 군데 있다. 새로운 지하철 호재와 인기 있는 아파트 브랜드 등 그 아파트 청약을 홍보하는 블로그 글들을 읽어보면 다 너무나 솔깃했다. 지난주에는 남편을 대동해서 처음으로 아파트 모델하우스 구경을 갔는데 30년 넘은 소형 아파트에 사는 우리 부부의 눈이 휘둥그레 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청약을 넣어보고 싶었지만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 다음에 더 좋은 조건의 아파트에 청약을 넣어보자며 단념했다.
오늘은 영어학원 아르바이트도 에어비앤비 청소도 없는 한가로운 하루여서 관심지역 임장을 나서기로 했다. 한 달 전 남편이 탁구대회 경품 추첨으로 타 온 자전거가 빛을 발할 순간이었다. 나는 단단히 채비를 하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내가 둘러볼 지역은 총 세 군데였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출발하여 큰 사각형을 그리며 청약 예정 지구 세 곳을 다녀오기로 했다.
첫 번째 장소는 7호선 연장 호재가 있는 곳으로 세대수도 적당히 많고 우리 부부가 실거주하더라도 직장 접근성이 아주 좋은 곳이었다. 바로 지난주 모델하우스를 다녀온 그곳이었다.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마다 동네의 느낌이 확확 달라졌다. 우리 동네는 1기 신도시로 아파트들은 다 오래되고 낡았지만 생활 인프라만큼은 압도적인 곳이었는데 서쪽으로 갈수록 주변 건물들이 점점 낮아지고 대형 상권이 별로 없었다. 목표지점에 인근은 지하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과연 여기에 길이 있나?' 싶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큰 도로를 중심으로 한 쪽은 공장과 산업단지, 반대쪽은 아파트 단지들이라서 양쪽의 느낌이 딴판이었다. 무서웠던 공사장 부근을 지나자 이번엔 추억의 80년대로 타임슬립을 한 느낌이었다. 딱 내가 어릴 때 살던 그때 그 시절의 동네의 모습이었다. 심지어 웃으며 장난치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볼 때 어릴 적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오른편으로는 30층이 넘는 유명 브랜드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데 바로 길 건너에는 다 쓰러져가는 주택들이 골목을 빽빽이 채우고 있었다. 내가 호갱노노 지도로 확인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현실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이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이 동네의 집값이 뛰면, 지금 내가 스쳐 지나는 이 노인들과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게 될까?
서둘러 두 번째 임장지로 향했다. 1호선 바로 옆에 들어선다는 대단지였다. 어릴 적 추억이 약간은 남아있는 동네였다. 부모님과 서울에 갈 때면 항상 그 역으로 가서 전철을 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기대감도 있었지만 솔직히 그곳에 2천 가구가 넘는 대형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골목골목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데 내려갈수록 보행로가 좁아져서 애를 먹었다. 게다가 대낮인데도 소주병을 한 손에 쥐고 비틀대며 걷는 아저씨들이 드문드문 있어서 가뜩이나 겁 많은 쫄보는 더 쭈글거리며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겨우 도착한 그 동네는 내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호선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동네를 한 바퀴 쭉 둘러보았는데 지도를 보니 내가 가야 했던 곳은 지하철 반대편이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일은 꽤나 수고로워서 포기했다. 내가 투자자의 눈이 아니라 그런지 이곳에 아무리 멋진 브랜드의 아파트가 숲처럼 들어선다고 해도 그리 끌리는 동네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특히나 1호선을 경계로 내가 있던 곳은 굉장히 시설이 낙후되어 있었다. 사람들마저 친절하지 않아서 좁은 길을 지나가려고 나란히 서서 걷던 커플에게 따릉, 하고 자전거 벨을 울렸다가 욕을 진창 얻어먹었다. 나는 단지 조금만 길을 터주십사 울린 것이었는데 앞에서 걷던 젊은 남자는 '아 X팔, 인도잖아 인도!' 하면서 겁을 주었다. 인도에서 자전거 타는 게 테크니컬 하게 나의 잘못인 건 알겠는데 도로도 무섭고 어쩔 수 없는 나의 입장도 좀 헤아려주었음 싶었는데 한 번만 더 벨을 울렸다가 해코지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오싹했다. 이 동네는 마음속으로 아주 크게 엑스자를 그렸다.
중간 지점에서 아무 카페나 들어가 핸드폰 충전도 하고 좀 쉬려고 했는데 아까 그 남자에게 욕을 얻어먹은 것이 너무 무서워서 쉬지 않고 다음 동네로 바로 이동했다. 1호선에서 가장 번화한 곳을 지나 슬슬 주거지역에 다다랐다. 내가 마음속 1순위로 점찍어 둔 아파트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아까보다는 '흠, 이 정도면 실거주는 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아로새기긴 했지만.
이 곳에도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예정이었는데 인근이 모두 재개발 구역인 것 같았다. 막 철거가 진행 중인지 곳곳이 전쟁 폐허를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펜스가 둘러싸고 건물이 반쯤 무너져 내린 세기말 적인 풍경을 가로질러 재잘재잘 떠드는 고등학생들이 생기발랄하게 하교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묘했다. 여기는 몇 년후에 과연 어떻게 바뀌게 되는 걸까. 이 곳에 아파트가 완공이 될 즈음이면 주변에 허름한 다가구 주택들도 재개발이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럼 이 동네의 모든 개발이 끝날 때까지는 항상 공사판을 이웃 삼아 걸어 다녀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첫 자전 거 임장은 이 정도에서 마치기로 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낯선 동네의 카페는 유명한 체인점이라 하더라도 영 낯설어서 결국 집 근처까지 와서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3시간 동안 내리 자전거를 탔더니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다. 다리도 쉬고, 핸드폰도 충전하고, 여러 생각들로 복잡한 머릿속도 이렇게 글을 쓰며 숨 쉴 공간을 마련해준다. 오늘 임장 했던 지역에 청약을 넣을지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지만 한 십 년쯤 지나서 이 기록을 읽으면 감회가 새롭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그 동네들이 말도 못 하게 변해서 '아, 그때 아파트 한 채 눈 딱 감고 사둘걸'하고 땅을 치고 후회를 할지, '첫 임장이라니 하핫 귀엽네'하고 웃을지 모르겠다.
삼십 대인 나의 일기장에는 십 대 때와는 다른 글을 써넣어야겠다.
'돈을 위해 나의 꿈과 열정을 맞바꾸는 어른이 되지 말자!'
'꿈과 열정은 돈을 먹고 자란다. 인정할 건 인정하는 어른이 되자!'
씁쓸하지만 몸도 나이가 드는 판에, 생각도 시간이 지난 만큼 주름이 지는 게 마땅하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드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