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자각몽

꿈에선 무엇이든 가능할까?

by 마리뮤

나는 날 수 있다. 정말이다. 내가 처음 날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때 쯤이었다. 지금이 서른중반이니까 얼추 계산해보면 20년 넘게 하늘을 날아던 것이다. 아직 아무도 내가 하늘을 나는 것을 모르는 이유는, 꿈에서만 몰래 몰래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방법은 정말 간단하다. 우선 '날아야지'라는 생각을하고, 왼발을 자전거 페달 밟듯이 몇 번 구르면 된다. 이게 효과가 얼마나 좋은지 발을 한 번 구를때마다 한 10미터는 붕- 하고 올라간다. 발을 구를 때 보통 3번에서 4번정도 움직이니까 한 번 날아야지 마음 먹으면 어느새 초고층 아파트를 내려다 볼 정도로 하늘 높이 올라가게 된다. 그러나 발을 구르지 않고 멈춰서 몇 초간 있으면 슉-하고 다시 하강하기 때문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한번씩 발을 더 굴려줘야한다. 대충 계산하면 알겠지만 몸이 낙하할때마다 놀라서 발을 미친듯이 구르면 나는 어느새 지구를 내려다보게 된다.


하, 이걸 직접 경험해봐야 아는데...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아, 지구는 정녕 아름답구나" 생각할 여유따윈 없다. 땅으로 다시 내려갈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오줌 지리기 딱 좋다. 아무리 내가 20년을 하늘을 날았어도 디테일한 조절은 여전히 어렵다.

미세한 조절을 배우려면 꾸준한 훈련이 필요한데 나는 하강할때마다 그 소름끼치는 시원함(?)에 압도되어 잠에서 깬다. 대기권 밖까지 올라갔다가 추락하며 잠에서 깨면 몇 초간은 온몸이 감전된 것처럼 찌릿찌릿하다.


오늘은 꿈에서 왼발을 굴려 하늘에 솟아오르자마자 '꿈이다'라는 자각을 했다.


'아싸, 오늘은 좀 제대로 날아봐야지. 근데 진짜 나는 정말 대단해. 어떻게 이런 꿈을 꿀 수가 있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동네 디테일 좀 봐! 대박!! 저런 건물양식은 어떻게 생각해 낸거지? 내가 저런 건축물을 본 적이 있던가? 와! 저기 걸어다니는 행인들도 진짜 너무 리얼하다!! 저런 얼굴, 헤어스타일, 심지어 옷이나 악세사리 같은 것들은 어떻게 이렇게 구체적으로 꾸는 걸까?'


나는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푹주했다. 매일 꿈을 꾸지만 자각몽인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오늘은 궁금했던 것들의 뽕을 뽑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이 세계의 디테일을 최대한 많이 머리속에 저장해 놓고 꿈에서 깨면 나름대로 분석을 하고 싶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로부터 이 세계가 창조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 무의식이라는 것은 내가 가진 기억 정보 이상의 어떤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정신없이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동네 구경을 하다가 조금 더 높이 올라가서 전체를 조망하려고 왼발을 굴렀다. 제길, 금세 걸어다니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올라가버렸다. 미세한 조정을 위해 잠시 하강했는데 으... 역시나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 느낌. 적당히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적정 위치를 유지했다.


붉게 노을이 지는 오후 시간대의 어느 동네였고 행인들은 한국사람인게 분명 했으므로 한국이어야하는데 건물이나 도시의 모양새를 보면 절대 한국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은 아니었다. 어쨌든, 다시금 속도를 내어 구경하기 시작했다. 건물의 창문 디자인이라든지, 걸어가는 사람이 들고 있는 가방 모양이라든지, 그들의 표정을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면서도 아주 주의 깊게 살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보니 점점 내가 보는 세계가 뭉특해지기 시작했다. 놀라울 정도로 선명했던 사람들의 눈,코,입이 흐릿해지더니 제각각 개성적이던 건물들도 똑같은 장소가 반복해서 나타났다. 속도를 내서 다시 구석구석 살펴봤는데 내가 속도를 내면 낼수록 그 세상은 점점 특색을 잃었다. 예상치 못한 나의 폭주에 뇌가 놀란듯했다. 뇌는 내가 헤집고 다니는 속도를 맞추려고 시각정보를 쥐어짜내고 짜내다 결국 포기한 것이다. 나의 무의식의 세계가 대단하다 하더라도 출력속도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것들을 생각해내기가 어려워지자 나는 다시 하늘로 솟아올랐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특별한 세부정보가 필요하지 않아서인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은 나의 뇌가 '권장'하는 행동 같았다. 아직도 나의 호기심은 채워지지 않았고 이왕 자각몽을 꾸는 김에 내가 꿈에서 또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꿈은 온전히 나의 프라이빗 영역이라는 생각을 하니 자연스럽게 야한(?) 생각이 떠올랐다. 꿈 속에서는 내가 원하는 로맨스가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겠다는 음흉한(ㅋㅋ) 흑심이 들자마자 나는 미친듯이 하강했다. (살려줘. 잘못했어.)





몸서리 치며 눈을 떴다. 제길 하필 이때 잠에서 깨다니... 허탈했다. '혹시 지금 바로 다시 잠에 들면 원하는 꿈을 꿀 수 있을까?' 눈을 감으려는 그 순간 알람이 울렸다.




삐비비비비비비빅.

삐비비비비비비빅.


'잡았다 요놈, 꿈의 남용으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그저 알람소리일 뿐인데 오늘따라 심장이 많이 뛰네. 머쓱한 기분으로 눈꼽을 떼고 하루를 시작했다. 능숙한 하늘 날기 실력 키우기와 또 하나의 훈련과제가 생겼군. 훗.(흑심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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