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탓도 아닌 내 탓

by 마리뮤

싹, 사라졌다. 카페에서 나오기 직전 저장 버튼을 눌렀다고 생각했는데 흔적도 없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고심해서 적어 내린 나의 글들이 모두 사라지고 처음 그 자리에서 멈춰있었다. 끄억, 분노가 욕지기와 함께 몸 밖으로 용트림했다. 기억을 아무리 되감고 되감아봐도 저장 버튼을 누른 장면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그랬던 것 같은 어렴풋한 느낌뿐. 며칠간 묵혀두었던 글이 오늘에서야 술술 풀리면서 마무리까지 마음에 들게 써져서 꼭 발행을 하고 싶었다. 계획대로라면 카페에서 나오기 전에 발행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그런데 근처에 도착했다는 남편의 카톡에 서둘러 정리하고 나온 탓이다. 남편은 시간 강박 같은 것이 좀 있다. 반면 나는 무언가 몰두하면 시간 흐름 따윈 개나 줘버리라는 타입의 인간이라서 톡을 받은 순간 미적거리지 않고 멈췄다. 집에 가서 침착하게 다시 한번 읽어보고 발행 버튼을 눌러도 충분하니까.


그런데 집에 돌아와 아무리 작가의 서랍을 뒤적여봐도 아까 쓴 글이 보이지 않았다.



F-u------------------ck!!!!!!!!!!!!!!!!!!!!!!!


다시 쓸 수 있을까? 도리도리. 아무래도 비슷하게는 쓸 수 있을 테지만 완전하게 같은 글은 아닐 것이다. 자동 저장 기능이 없는 브런치 탓, 시간 강박으로 무언의 압박을 준 남편 탓, 그도 아니면 그냥 그 무엇이라도 탓을 하고 싶은데 아무리 남 탓을 해봐도 너무도 명백한 내 탓이었다.


저장을 수시로 하지 않은 내 탓, 카페에서 나서기 전에 확실히 마무리하지 않은 내 탓, 심지어 쓰는 중간에라도 한 번을 저장하지 않은... 순전히 내 탓이다. (방금 여기까지 쓰고 무서워서 저장 버튼을 눌렀다)


사람은 참 안일하다. 이렇게 고통을 통해서만 배우니까 말이다. 내 소중한 글은 공중분해되었지만 그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인해 앞으로 내가 쓸 많은 소중한 글들은 살렸다 생각해야겠다. 우리가 정신승리라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디서 승리 따위를 해보겠는가.



하아, 여러분 저장하세요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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