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새해

글이나 쓰자

by 마리뮤

심장이 두근댄다. 오후 2시 20분경에 섭취한 아메리카노, 저녁 11시 50분경에 섭취한 홍콩 밀크티의 영향이 크다. 내 몸은 쓰레기다. 알코올도 안 받고, 카페인도 안 받는다. 그러고 보니 유당도 분해 못하고, 글루텐도 소화 못한다. 도대체 내 장기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음에도 뇌는 자꾸만 받지도 않는 음식을 먹으라고 나를 들들 볶는다. 에휴, 자제심도 쓰레기네.


벌써 작년이 된 2019년 나의 한 해 목표는 한 가지였다. 아무것도 안 하기. 하도 생각이 많고 계획하고 시도하길 좋아해서(그러나 마무리하는 일은 없음) 스스로를 좀 못 살게 구는 편이라 한 번 크게 아프고 났더니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건강하게만 1년을 낭비하는 게 나의 목표였다. 그런데 제길, 가장 쉬운 한 해 목표라 생각했던 '아무것도 안 하기'마저도 실천 못한 나란 인간은... 참 대단하다.


작년에 나는 결핵 완치를 기점으로 '퇴사 학교'에서 월급 외 10만 원 벌기 수업을 듣고,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를 열고, 개인 사업자등록을 내고, 인테리어 블로그를 열고, 하루하나 상점이라는 뻘짓(하루에 하나씩 아무거나 만들어서 블로그 마켓으로 파는 짓)을 하고, 목공을 잠시 배우고, 북아트를 독학하고, 수영 강습을 받고, 파티룸 매물을 미친 듯이 알아보다 에어비앤비를 덜컥 인수하고, 스트레스에 치를 떨면서도 열심히 청소를 하며 게스트를 받고, 그 와중에 영어학원은 그만두지 못하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최근에는 주말에 영어 미술 지도사 수업을 듣고, 결국 그 자격증을 따고, 방금까지 영어 미술 교습소를 차릴 궁리를 하며 잠이 안 온다며 동동거렸다.


와... 그러고 보니 그 와중에 브런치 열어서 글도 쓰고 있네........




쓰고 보니 진짜 무지하게 부지런하게 산 것 같지만 또 내 일상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틈틈이 게으름 피울 것은 또 다 피웠다. 하스스톤과 심슨 타일 게임을 두 축으로 미친 듯이 게임을 하며 시간을 죽이거나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살만 쪄갔다.


아무튼 내 요지는 '아무것도 안 하기'라는 일 년 목표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




2020년의 목표는 도대체 뭘로 정해야 지키려나. '아무것도 안 하기'는 이번 생엔 그른 것 같고... 아프지 않기, 이빨 썩지 말기, 살찌지 말기, 생각 많이 하지 말기 뭐 이런 걸 진짜 좀 하고 싶은데 그건 내 의지의 영역을 벗어난 일인 것 같아 바라기도 뭐하다. 뭔가 그럴싸한 2020년 목표를 세우고 싶다. 비록 지키진 못했지만 2019년 목표가 난 참 마음에 들었는데 말이다.


방금 커서가 깜박이는 빈칸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생각을 좀 해봤는데... 꽤 마음에 드는 목표가 떠올랐다. 2020년은 뭔가 화성에도 인간들이 이주해서 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해이니까 '2040년에 타임머신을 타고 온 내가 과거로 여행 와서 1년 살다가는 기분으로 살기' 어떨까. 2040년이면... 보자, 보자.... 헉 56살. 16살 때 36살의 내가 상상이 안 가던 것처럼 지금은 56살의 내가 상상이 안 간다. 하지만 지금 내가 16살로 돌아간다면 진짜 하루하루를 이렇게 허망(?)하게는 안 보낼 것 같으니 2020년 한 해를 허망하게 보내지 않도록 해봐야겠다.


명확한 목표 설정은 없기 때문에 올해 목표는 잘하면 지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2021년 새해에 '그러나 나는 과거로 아무리 되돌아가도 평소와 다름없이 이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니 작년의 목표는 대성공'이라며... 헛소리하지를 않기를 바랄 뿐. (2021년 새해에 이 글을 다시 읽기. 기억이나 한다면 말이다)





아무튼 수고했다. 2019년의 나야. 게을렀지만 부지런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어느 순간에는 다 부질없이 느껴지면서 써서 뭐해, 하는 심정이 들긴 하지만 '사람들에게 인기 많이 얻어서 언젠가 출판의 기회를 잡아야지!' 하는 맹랑한 욕망만 없으면 해로울 건 없다. 일단, 쓰는 동안 엄청난 쾌감이 있고 다 쓰고 나서도 종종 내 글을 읽으며 혼자 후훗 웃을 수 있으니까.


쓰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그것들은 따로따로 풀어놔야겠다.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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