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환장 환갑여행 (인트로)

되돌아보니 너무나도 완벽했던 부모님과의 첫 해외여행기

by 마리뮤




우리 가족은 남들 다한다는 해외여행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우리 부모님은 근면 성실하게 평생을 살아오셨지만 깨진 박에 물을 붓듯이 부모님이 벌어오신 돈은 소박한 생활을 영위하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몇십 년 전에는 해외여행이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기에 크게 우리 자매는 큰 박탈감 없이 잘 자랐다. 두 딸들이 장성해 각자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우리 가족의 깨진 박은 채워지지 않았다. 각자 독립을 하고, 각자의 소박한 삶을 영위하고 나면 수중에 남들 다한다는 효도여행 한 번 보내드릴 돈은 여전히 남지 않았다. 그렇게 막내딸(바로 나다)이 서른다섯 살이 되고 나서야 부모님의 환갑여행을 위해 꼬불칠 돈이 생겼다. 바로 남편이 생겼기 때문이다. 결혼의 순기능은 바로 여기에 있구나 싶었다. 한 명분의 삶에 꼭 필요한 돈이 두 명이 함께하는 순간 2배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 남은 반을 그동안 엄두 내지 못했던 것들에 써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언니와 내가 매달 조금씩 그러모은 돈으로 부모님의 첫 해외여행 겸 환갑여행을 보내드리기로 했다. 원래 계획은 언니와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것이었으나 언니에게 6년 만에 둘째가 생기는 경사가 생겨 나 혼자 부모님을 모시고 떠나게 되었다. 혼자서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 갈 생각을 하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로라하는 유리 멘털에 겁쟁이이기 때문이다. 걱정이 차고 넘치는 엄마에게서 키워진 딸의 숙명인 것일까. 서른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세상이 너무 무섭다. 이런 내가... 과연 혼자서 부모님을 모시고 성공적인 환갑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여행지는 남편과 작년에 가본 적 있는 베트남 다낭과 호이안으로 진즉에 정했다. 우선 나 같은 겁쟁이에게는 조금이라도 익숙했던 곳이 좋다. 게다가 첫 베트남 여행에서의 좋은 추억이 가득했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꼭 그때의 감동을 선물해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부모님과의 해외여행이기 때문에 최대한 호화로운 기분을 만끽하며 호강 한 번 제대로 시켜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면에서 베트남의 가성비를 따라올 나라가 없었다.


재고의 여지없이 비행기표까지 일사천리로 구매했지만 그 이후로 불면의 밤이 지속되었다. 부모님과의 첫 해외여행이라는 막중한 책임감과 엄마와 아빠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여행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같이 살아온 긴 세월 동안 내 안에 축적되어온 데이터에 의하면 엄마와 아빠는 참으로 달랐다. 엄마는 활동적인 것보다 휴식을 원하고, 앞에서도 언급했듯 걱정이 과도한 스타일이라 첫 해외여행 자체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게 뻔했다. 반면 아빠는 쉽게 만족시키기 어려운 까다로운 타입이다. 반복적인 것을 싫어하고 한 장소에서 2시간 이상을 있지 못한다. 아빠에게 맞추기 위해선 짧게 짧게 계속 변화하고 새로워야 한다.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숨이 막혀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엄마는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고 희생하는 것이 몸이 벤 사람이라서 아빠만 적당히 만족시킬 수 있다면 엄마를 만족시키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병에 걸리거나 강도만 만나지 않는다면 엄마는 분명 모든 것을 좋게 평가해주실 거다.


내가 이전 베트남 여행에서 경험했던 것들 중 베스트를 추려서 나름 알찬 계획을 세우고 나서야 나를 짓누르던 압박에서 해방되었다. 완성하기까진 고통스러웠지만 다 짜고 보니 신이 났다. 숙소도 며칠을 이곳저곳 비교하면서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장소로 뽑았고, 내 경험과 인터넷에서 찾은 후기들을 조합하여 4박 6일간의 삼시 세 끼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맛집들을 구글 지도에 모두 저장했다. 다낭 맛집, 쇼핑, 마사지, 호이안 올드타운의 밤거리... 모든 게 완벽했다.


환갑 여행이 한 달 정도 남았을 때 부모님 댁에 내려가서 스윽- 여행 계획표를 내밀었다. 숙소 사진과 우리가 먹을 음식들의 사진도 보여드리며 브리핑을 마쳤을 때 엄마는 "그래서 우리 가기 전에 예방 접종 뭐 맞아야 하니?"라고 물었고, 아빠는 "근데 뭐 딱히 볼거리는 많이 없네?"라고 입맛을 다셨다. 엄마는 내가 읊는 것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눈치였다. 경험해 본 적 없는 것들에 대해 내가 아무리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아도 머리로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아빠의 반응은 분명한 불만족이었다.


나는 아빠에게 해외여행에서 꼭 해보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빠는 한참을 고민을 하다가 코끼리를 타고 싶다고 하셨다.

아빠의 해외여행 판타지



'코.. 코끼리요? 베트남에.... 코끼리..... 어디.....?'






아차차...


내가 그동안 수집했던 데이터는 무수한 '일상'을 통해서 얻은 것들 뿐이었다. 여행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는 딱히 쓸모 있는 데이터가 아니었다. 계획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했다. 이어진 아빠와의 심도 있는 대화를 통해서 아빠는 '걸어서 세계속으로' 같은 프로그램에서 볼 법한 풍경을 상상하고 기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는 고수를 팍팍 넣은 맛있는 쌀국수와 피로를 싸악 풀 수 있는 마사지면 충분하다고 했다. 누구 하나라도 나랑 취향이 비슷해서 다행이었다. (엄마 사랑해요)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자료 조사에 나섰다. 아빠가 두리뭉실하게 표현한 '뭔가 웅장한' '이야~ 감탄이 나오는' '여기 아니면 보기 어려운' '볼거리가 다양한'을 조합해보니 당초 계획했던 다낭과 호이안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렇다. 아빠를 만족시키기에는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후에(Hue)가 적격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황성 투어가 아빠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나는 4박 6일이라는 여정에 다낭, 호이안, 후에를 모두 끼워 넣는 무자비하고 상식을 깨는 전후무후한 계획을 세운 게 된다! 되돌아보니 너무나도 완벽했던 부모님과의 대환장 환갑여행. 이제 양파를 까듯 이야기보따리를 하나하나 까 볼까.





우리 귀여운 엄빠 (하트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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