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대환장 환갑여행을 처음 읽으시나요? '인트로'부터 차례대로 정주행 하시면 더욱 재밌습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비행기 티켓도, 숙소 예약도 이미 마쳤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우리는 떠나기만 하면 됐다. 엄마는 여행 일주일 전부터 매일 아침 전화를 했다. 예방 접종, 베트남 날씨, 꼭 가져가야 하는 필수품 등을 묻고 또 물어보는 엄마의 목소리에서 묘하게 감도는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면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이처럼 들떠하는 엄마의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어릴 때 에버랜드(사실 '자연농원', 이거 아는 사람 풋쳐핸접)가기 전날 밤의 내가 꼭 이랬던 것 같다. 아빠는 내가 지난번에 무심히 툭 던져드린 베트남 여행 안내서를 매일 밤 읽고 또 읽었다고 했다. '후훗, 이 맛에 효도여행 보내드리는구나' 싶었다.
2019년 11월 18일. 대망의 환갑여행 디데이
부모님과 나, 우리 세 사람은 인천공항에서 만났다. 4박 6일이라는 그리 짧지만은 않은 여정이었으나 우리의 짐은 매우 단출했다. 나와 엄마는 기내용 소형 캐리어를 하나씩 끌고, 아빠는 작은 배낭을 하나 멨다. 엄마는 지인들 선물 넣어 올 공간도 없겠다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나는 수하물이 없는 티켓이기 때문에 기내 반입이 되지 않는 큰 가방을 가져가면 무지막지한 돈이 청구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는 말에 엄마의 비죽 나온 입이 쏙 들어갔다. 나는 옷도 여름옷 한 벌씩만 챙기고, 칫솔과 세면용품도 다 숙소에서 제공하니 일절 챙기지 말라며 큰소리쳤다. 저렴한 비행기표로 절약한 돈으로 쇼핑과 식사에 더 힘을 싣겠다는 것이 내 계산이었다. 허나 나의 이 호언장담이 베트남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아주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다. 당장 우리가 입고 간 겨울 패딩과 스웨터를 넣으니 가방이 꽉 차서 겨우 닫혔다. 지인들 선물은 고사하고 바늘 하나 집어넣기 힘들어 보였다.
어쨌든 우리는 비행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저가항공을 이용했기 때문에 키가 겨우 160 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나에게도 좌석이 매우 비좁았다. 엄마, 아빠의 표정을 쓱 보니 생각보다도 훨씬 좁은 좌석에 놀라신 눈치였다. 그래도 밤 비행기였으니 잠이 들면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밤 9시면 세상모르고 주무시는 분들이었고, 우리가 비행기에 탑승한 시각은 밤 10시가 넘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총 비행시간(5시간) 동안 아빠는 1초도 잠들지 않았다.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기내 안내문을 훑고, 기내식을 주문해서 시켜먹는 다른 승객들을 부러운 눈으로 구경하고, 모두 편히 취침하라며 소등을 한 후에도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앞만 보며 말똥말똥 눈을 뜨고 계셨다. 세상 예민한 성격인 줄 알았던 엄마는 의외로 세상모르고 주무셨다. 아이러니가 따로 없었다. 5시간을 뜬 눈으로 저가항공기를 몸소 체험한 아빠의 한줄평은 '싼 게 다 이유가 있었구만'이었다. 준비한 딸을 생각해 순화한 표현이라 생각하니 겸연쩍었다. 순조로운 출발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멀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꾸만 목이 따끔거리고 두통이 왔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아, 안되는데. 왜 하필 지금!'
저가항공기 탑승 전 얼마나 불편할지 모르고 세상 해맑은 우리 셋
불편했던 비행기에 대한 기억을 뒤로하고 우리는 서둘러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최대한 짧은 줄을 찾아 서는 것이 나름의 꿀팁이다. 한국처럼 질서 있는 줄 서기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렸을 때 전략적으로 가장 끝쪽에 있는 줄로 뚫고 들어가야 단 몇 분이라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나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던 대로 입국심사를 위한 줄을 서자마자 가방에서 미리 준비한 유심칩을 꺼내 엄마, 아빠 그리고 나의 핸드폰을 모두 세팅했다. 인터넷 접속이 뜨자 살 것 같았다. 이제 적당히 환전을 하고, 그랩(택시 예약 어플)으로 숙소만 잘 찾아가면 끝이었다.
베트남 현지 시각으로 새벽 1시 반. 다낭 공항 밖으로 나오자 후텁지근한 공기가 비로소 내가 베트남에 도착했음을 알려주었다. 공항 밖에는 네다섯 군데의 환전소가 나란히 있었다. 분명 베트남 여행카페에서 몇 번째 환전소를 조심하라는 둥, 어디가 환율이 조금 더 좋다는 둥 하는 글을 읽었는데 막상 도착하니 머리가 하얗고 정신이 없었다. 다시 인터넷으로 글을 찾아 읽고 합리적 판단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나는 몇 천 원에 목숨 걸지 말자 생각하며 대충 아무 곳에나 들어갔다. 무료한 표정의 여직원이 나를 쳐다봤다. "Hundred dollar?(100 달러)"라고 묻자 계산기로 투다다다닥 긴 숫자를 찍어 보여줬다. 내가 보는 숫자가 좋은 환율인지 알 길이 없는 나는 오케이, 투 헌드레드 달러 플리즈를 외치며 이백 달러를 내밀었고 여직원은 빠른 손놀림으로 여러 장의 베트남 지폐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내가 계산기에서 본 숫자와 내가 받은 지폐의 합이 맞는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천천히 따져봤다. 그때까지도 같이 긴장한 엄마 아빠는 숨을 죽이며 나의 모든 행동을 지켜봤다. 부모님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정말 숫자에 약한 건지... 셀 때마다 합이 달랐다. 환전소에서 종종 여행자들의 뒤통수를 친다는 후기를 읽었던 기억 때문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아까 그 여직원에게 내가 받은 돈이 정확한지 한 번 더 확인 바란다고 말했다. 그 여직원은 불쾌한 표정으로 지폐를 한 장씩 착, 착 펴가며 소리 내어 숫자를 읊었다. 그 여직원의 당당한 태도에 미루어 보아 아마 제대로 받았으리라.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 돈이 단위가 커서 계산하기 힘들다던데... 베트남은 우리나라 돈 보다도 공(0)이 몇 개 더 붙으니 말해 뭐하랴.
환전한 돈에서 100만 동(한화 약 5만 원)씩 엄마 아빠에게 드리며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으라고 했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라고 남편에게 떠나기 전에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빨리 그랩 어플을 켜고 우리가 묵을 숙소 주소를 검색해서 택시를 불렀다. 지난 베트남 여행에서는 남편이 다 하던 일을 내가 직접 하려니 긴장되고 떨렸지만 막상 해보니 어렵지 않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우리가 예약한 택시가 왔다. 택시에 타자마자 엄마 아빠는 입을 모아 나를 칭찬했다. "아이고 우리 딸 장하네. 혼자서 걱정된다더니 그냥 일사천리로 딱딱 잘하네!" 무슨 일이든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나 보다.
현지시간으로 새벽 2시쯤, 우리가 묵을 숙소 앞에 도착했다.
주피터 호텔. 이름은 호텔이지만 우리나라의 허름한 모텔 같은 느낌의 숙소였다. 1박에 3만 원. 새벽 비행기를 탄 여행자에게 잠만 자는 용도로 이용하기엔 딱 적당한 가격이었다. 나는 내가 숙소를 잡았고 예상했던 분위기여서 아무렇지 않았는데 엄마와 아빠는 스산하고 허름한 분위기의 숙소 앞에 도착하니 적잖이 놀라신 듯했다. 재차 여기가 네가 예약한 곳이 맞느냐고 물으신 걸 보면 말이다. 카운터에서 자고 있던 직원이 문을 열어주어 호텔에 들어갔다. 새벽시간이라 빠르게 체크인 수속을 마치고 좁디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있는 우리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직사각형으로 길쭉한 형태였고, 싱글베드 3개와 반대편 벽에 작은 티브이가 걸려있었고, 티브이 아래로 긴 탁자가 놓여 있었다. 화장실과 샤워 공간은 방의 왼쪽 편에 따로 나눠져 있었는데 칸막이가 온통 유리로 되어 있었다. 그나마 프라이버시를 위해 내 키높이만큼은 불투명한 시트지가 붙여 있어 다행이었다.
우리는 짐을 한쪽으로 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에어컨은 요란한 소리를 냈지만 정작 소리만큼 제 일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엄마와 아빠는 단 몇 시간 만에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여전히 여행의 흥분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도착해서 처음 본 베트남의 풍경이 썩 인상적이지 않은 눈치였다.
"베트남 숙소들이 다 이렇구나? 옛날 우리나라 같네, "하고 아빠가 말했다.
"여기 침대가 왜 이렇게 버적버적 하니? 빨래도 안 하나 보다, "하고 엄마가 말했다.
나는 오늘은 잠만 잘 거라서 가장 저렴한 숙소로 와서 그렇다고 설명을 했지만 부모님은 베트남 숙소가 좋아봤자 얼마나 좋겠냐는 듯 큰 기대가 없는 표정이었다. 애써 티 내지 않으려 해도 실망한 듯 보이는 부모님의 모습에 내일이 걱정됐다. 가뜩이나 아까부터 목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숙소에 도착해서 긴장이 풀리자 몸살이라도 난 듯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몸상태로 6일 동안의 여행을 책임져야 한다니! 약이라도 지어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베트남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 졌다.
내일을 위해서 얼른 씻고 자자며 엄마가 먼저 화장실에 들어갔다. 씻고 나오는 엄마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내가 호텔에 다 있다며 칫솔과 세면도구를 챙기지 말라고 큰소리 뻥뻥 쳤는데... 칫솔이 아주 쓰레기였다. 이렇게 질 낮은 칫솔은 태어나서 처음 봤달까. 거의 철수세미로 이빨을 긁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싼 호텔이어도 그렇지 왜 비누 하나 준비해 주지 않는 건가! 하지만 컴플레인할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다. 찝찝하지만 양치하는 시늉만 좀 하고 고양이 세수를 한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
잠들기 직전에 "칫솔이랑 다 준비하지 말라더니..."라는 엄마의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하하.
비좁은 비행기 좌석, 끈적한 날씨, 허름한 숙소, 더러운 이불, 조잡한 칫솔... 엄마 아빠에게 베트남의 첫인상이 어땠을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딸이 호강시켜준다고 오긴 왔는데...(이하 생략)' 뭐 이런 게 아니었을까.
폭망의 스멜이 강하게 느껴졌다. 역시, 나 혼자서는 무리인가? 내가 계획을 잘못 세운 건가? 계속해서 자책하게 됐다. 내일이 걱정되어서인지 선잠을 자다 깨다 반복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내가 잠시 깰 때마다 아빠는 항상 깨어 있었다는 것이다. 아직 해도 안 떠서 창 밖으로 보이는 것도 별로 없는데 무슨 망부석처럼 창 밖을 바라보고 서서 움직이질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도 눈을 붙이지 않으셨으니 만 하루를 뜬 눈으로 지새우신 것이다!
나는 너무 걱정이 되어 "아빠, 잠이 안 와요? 조금이라도 자 둬야 내일 피곤하지 않을 텐데..."라고 묻자 아빠가 딱 한 마디를 했다.
그리고 그 한 마디가 여행이 끝난 지금까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창 밖을 바라보는 망부석
"지금 눈 감으면 영영 놓치는 것들이잖아..."
그렇게 모두가 일어날 때까지 창 밖을 바라보는 망부석...
아빠의 그 한 마디에서 다시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우리에게 다시없을 아름다운 시간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시간이 훨씬 흐른 뒤에는 더욱 아름다웠던 추억이 되리라는 것도. 컨디션도 좋지 않고, 비록 실망스러운 첫날이었지만 부모님을 위해 꼭 멋진 여행으로 마무리 짓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