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환장 환갑여행 Ep.2

베트남 여행의 반전은 오늘부터!

by 마리뮤




망부석.jpg 창 밖을 보라, 창 밖을 보라♬





"오, 이제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날이 밝아오면서 장사를 준비하는 베트남 현지인들이 거리에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 모양이다.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아이처럼 외치는 망부석(지난 에피소드 참조) 때문에 더 이상 모른척하고 자고 있기가 힘들었다. 예정된 첫 스케줄은 8시부터였으나 지난밤부터 뜬눈으로 해가 뜨길 기다린 아빠에게는 1분 1초가 급했다. 여전히 감기몸살 기운이 감돌았지만 이렇게까지 신나 하는 아빠를 보니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기분이 복잡했다. '그래,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데! 한두 시간 더 잔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체크아웃 시간 전까지 다낭 시내(Danang City)를 구경하고 바로 후에(Hue)로 이동해야 하므로 낮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다낭에서 후에까지 거리는 약 90km이다). 다행히 베트남은 조식 문화가 발달되어 있어서 많은 식당들이 아침 일찍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6시 30분쯤 설레는 마음으로 호텔을 나섰다. 이미 내 구글 지도에는 내가 가려던 맛집들이 모두 표시되어 있었다. 그저 현재 위치부터 표시된 맛집까지 지도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다낭아침식사전.jpg 아침 식사하러 가는 길에 한 컷!


11월의 베트남은 여행하기에 매우 좋은 날씨였다. 불쾌할 정도로 끈적이던 공기가 훨씬 참을만했고, 뜨거운 태양만 양산으로 막아주면 한국의 여름 날씨보다 선선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가 다낭 시내 중심부에 위치해서 내가 가려던 포 29까지는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포 29는 재작년 남편과의 첫 베트남 여행에서 갔던 음식점 중 하나였다. 허름한 가게였지만 주인 할아버지에게서는 넘치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과연 먹어보니 '현지 쌀국수가 맛있어봤자 얼마나 맛있겠어'라던 나의 코를 아주 납작하게 하는 쌀국수였다. 생면은 부들부들했고, 국물은 맑지만 깊은 맛이 났다. 게다가 내 사랑 고수를 듬뿍 넣어 먹을 수 있었으니 2천 원의 사치였다!


베트남에서의 첫 식사는 무조건 포 29이어야 했다. 이는 첫 식사부터 부모님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겠다는 나의 야심 찬 계획이었던 것이다.


수많은 오토바이가 내뿜는 매연과 쉴 새 없이 울리는 경적 소리를 뚫고 도착한 곳은 내 기억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분명 간판 이름도 맞고, 내가 기억하던 위치도 맞았다. 그런데 내 기억 속 허름하고 비좁은 가게는 어디로 가고 번듯하게 차려진 가게가 떡하니 있었다. 2년 사이에 돈을 많이 버신 걸까. 주인 할아버지도 보이지 않았다. 아주 앳된 소녀가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가게문을 이제 막 열었는지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갓 스무 살이 넘어 보이는 젊은 남자가 주방에서 음식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어릴 때부터 음식이 해왔다고 해도 음식 내공을 기대할 수 없어 보였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제발 어제의 대폭망의 기운을 첫 식사가 떨쳐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주문을 했다.


쌀국수 두 종류, 누들 볶음, 그리고 옥수수 우유를 시켰다. 실패할 수 없는 메뉴였다. 특히나, 옥수수 우유는 한국 돌아와서도 한 동안 잊히지 않았다. 옥수수를 진하게 갈아 만든 듯한 이 음료의 달큼한 고소함은 맛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옥수수우유.jpg 달콤하고 고소한 옥수수 우유!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이건 한국돈으로 얼마, 저건 얼마 하다 보니 우리가 시킨 메뉴가 모두 나왔다. 감격의 순간. 나는 부모님이 반응이 너무 궁금해서 먼저 맛보시라고 했다.


"음. 맛있네."


생각보다 건조하고 담백한 반응이었다. 좀 더 격한 콧소리를 기대했는데 쌀국수 귀신인 엄마가 이 정도 리액션을 했다는 것은 아빠에겐 아무런 반응도 기대하지 말라는 것과 똑같았다. 나는 재빨리 쌀국수 한 젓가락을 호로록 입으로 넣었다. 역시 부들부들한 생면의 식감이 무척 좋았다. 그런데 국물을 한 수저 떠서 마시는 순간 누군가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엄마, 아빠, 나.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다. 몇 초간 아무도 입을 떼지 않았지만 '내가 느끼는 이 느낌이 나만의 느낌만은 아닌 거지?' 하는 시선임에는 틀림없었다.


"웩, 왜 이렇게 짜?!" 나는 외쳤다.

솔직히 말해서 바닷물을 뜨겁게 끓여서 마시는 느낌이었다. 꾹 참고 몇 젓가락 더 입에 넣었으나 도저히 더는 먹을 수 없었다. 나는 여행의 모든 의욕을 잃을 뻔했다. 부모님에게는 "원래 이런 집이 아닌데 (중략)... 주인 할아버지가 돈을 버신 건가 (중략)... 어제 팔다 남은 국물을 그대로 끓여서 쓴 건가 (중략)... 베트남 현지 쌀국수가 원래 이런 맛은 아닌데..." 하면서 변명을 했다. 부모님은 애처로운 막내딸의 변명에 "아니야, 그래도 맛있던데"하면서 안심을 시키면서도 연거푸 물을 들이켜셨다. 심지어 옥수수 우유는 내가 기억하던 그 맛 그대로였는데 쌀국수의 짠맛이 너무 강한 나머지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베트남에 백종원 아저씨 보급이 시급하다!!! (진지)


비좁은 닭장 같던 비행기, 허름하고 청결하지 않은 호텔, 자본주의 앞에서 초심을 잃은 쌀 국숫집... 기어코 오늘은 어제의 실망을 뒤집겠다고 다짐했건만, 이렇게 또다시 실망을 하니 애써 끌어올렸던 자신감이 다시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래서 였을까? 정신력으로 겨우 버티던 몸이 또다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침만 삼켜도 목이 따끔했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우리 세 사람은 음식을 거의 다 남기고 포 29를 나왔다. 비통했다. 그래도 나는 이 여행의 총책임자가 아닌가! 어차피 더 이상 실망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숙소로 돌아가서 조금 기력을 보충하고...


"배고프네. 여긴 빵집 없나?"


아빠였다. 우리 아빠는 딸이 핼쑥하던, 잠을 못 자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오던 개의치 않긔.


엄마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아유, 방금 아침 먹었는데 뭔 또 빵이야. 우리 좀 만 쉬다가 다시 나와요. 나도 피곤하다, "라고 말했다. 역시 이럴 땐 엄마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빠는...


"그렇게 쉴 거면 한국에 있지 여행은 왜 왔어?"


뼈 때리는 아빠의 한 마디. 우리 아빠는 공감 능력이 제로긔.


나는 어차피 이 여행을 위해 내 한 몸 불사르기로 결심했기에 재빠르게 빵집을 검색했다. 사실 지난 베트남 여행에서 빵집을 본 기억이 없었다. 반미(베트남식 바게트 샌드위치) 가게는 많았지만 과연 여기에도 한국에서 보던 베이커리가 있을까?


놀랍게도 딱 두 군데가 있었다. 사실 나도 아침식사를 거의 다 남겼기 때문에 까다로운 고객님(=아빠)의 제안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빵집은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었다.


빵집은 외관으로 보나 내부 인테리어를 보나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빵집과 비슷해 보였다. 다낭에도 이런 빵집이 있다니 신기했다. 아빠 덕에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었다.


아빠는 시골에 살면서도 빵이 없이는 살지 못한다. 한국 60대 남성 치고 흔치 않은 식성이다. 딸들이 시골에 내려가면 새로 생긴 빵집에 꼭 데려가야만 직성이 풀린다. 우리 가족 내에서는 일명 '빵식이'로 통한다.


역시 여행은 다 필요 없고 각자가 원하는 걸 해야 하나보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빵 진열대를 훑는 아빠의 눈동자를 보면서 과연 내가 촘촘히 세워둔 여행 계획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가 고민이 깊어졌다.


아빠는 금세 네 종류의 빵을 골랐다. 음료까지 주문을 하고 가격을 보니 여기가 내가 알던 그 베트남이 맞나 싶었다. 아무리 비싸도 한국 빵집보다는 저렴했지만 적어도 한국 물가의 80%는 따라잡은 듯 보였다.


다낭빵.jpg 아빠가 고른 빵과 디저트


달달한 디저트를 먹으니 기분이 전환되었다. 그래도 엄마는 계속해서 내 컨디션을 살피셨고 약국에서 감기약이라도 사서 먹으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편견이지만 나는 베트남에서 약을 먹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애써 괜찮다는 말만 계속했다. 그러다가 밑져야 본 전이라는 생각으로 여행 카페에 들어가 약국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나처럼 여행 첫날에 감기몸살을 앓았다는 한 여행자의 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분에 말에 의하면 다낭에도 한인 약사가 운영하는 약국이 있었다! 나는 아무리 거리가 멀다 하더라도 후에로 떠나기 전에 꼭 약을 지어먹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름은 하나약국(Hana Pharmacy). 한인 약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카톡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그랩 바이크를 통해 내가 있는 곳까지 약 배달도 가능했다! 그랩 이용료가 별도로 붙었지만 정말 구세주 같은 정보였다.


나는 카카오톡 아이디를 검색해서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반신반의하며 기다리는데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약사분에게 보이스톡이 왔다. 차분한 음성의 여성분이셨다. 내 증상을 상세히 알려 달라시며 노란 코가 나온다니 항생제까지 처방해 주시겠다고 했다. 한국에선 병원에 가야만 처방받을 수 있는 항생제가 여기에선 약국에서 바로 가능했다. 연락을 주고받은 지 30분도 되지 않아 나는 빵집 앞에서 나를 위해 처방된 약을 건네받을 수 있었다! (하나약국, 그랩 바이크 만세!!!!!)


하나약국.png 하나약국 카카오톡 아이디: hanapharma


이 약만 먹으면 나을 것이란 내 믿음이 강해서였을까? 나는 매우 빠른 속도로 기운을 차렸다. 따끔거리던 목이 진정되고 두통이 가라앉았다. 고통이 가신 자리에 긍정 에너지가 차올랐다.


빵집에 들어갈 때의 나와 나올 때의 나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빵집에 온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초사이언.jpg 빵집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아니여~



베트남 여행의 반전은 여기서부터 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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