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환장 환갑여행 Ep3.

베트남에서 맛보는 신분상승의 맛!

by 마리뮤



다낭 베이커리에서 배달받은 약을 먹고 나는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그게 플라세보 효과든 아니든 상관없다. 내 몸속의 세포가 긍정 에너지로 바뀌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쫄보에 겁쟁이지만 몸만 아프지 않다면 이젠 다 자신 있다는 생각이었다.


베이커리에서 나온 우리(부모님과 나)는 그랩 택시를 타고 다낭 역에 갔다. 베트남을 지도에서 찾아보면 영락없이 길쭉한 해마처럼 보인다. 그래서 베트남에는 북과 남을 잇는 기차가 다닌다. 후에(Hue)를 여행 장소로 추가하면서 다낭과 후에를 가는 방법을 다방면으로 찾아봤다. 택시, 슬리핑 버스(누워서 갈 수 있다) 또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택시는 십만 원이 넘는 데다 여행하는 기분이 날까 싶어 패스했고, 슬리핑 버스는 부모님을 모시고 타기에는 효도하는 느낌이 안 나서 패스했다. 하지만 기차는 달랐다. 저렴한 가격에 비교적 짧은 이동 시간(약 3시간) 게다가 해안가를 따라 펼쳐지는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나는 열차시간이 가까워 예매하면 혹시나 우왕좌왕할까 봐 몇 시간 전에 미리 기차표를 예매하기로 했다.


철두철미한 자료 조사 덕분에 티켓을 판매하는 건물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다낭 역에 도착하면 건물이 두 개가 보인다. 다낭 역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정면 건물은 승차 플랫폼이고 그 왼편에 있는 작은 건물이 매표소라고 했다. 나는 능숙하게 매표소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내 앞에는 외국인 커플이 보였는데 남자가 매표소 직원에게 한참을 말을 했는데 매표소 직원 표정이 영 차갑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미리 캡처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내가 원하는 좌석에 동그라미를 표시해서 캡처한 사진이었다. 굳이 원하는 좌석을 고집한 이유는 바로 뷰(view) 때문이었다. 열차 진행 방향에 따라 어느 쪽은 해안가 뷰고 어느 쪽은 로컬 하우스 뷰가 펼쳐진다고 한다. 블로그에서 얻은 꿀팁이었다. 잠 못 자면서 정보를 찾아 헤맨 덕을 톡톡하게 봤다.


일사천리로 기차표 예매를 마치고 우리는 한시장으로 향했다. 이때가 오전 10시쯤이었다. 한시장에 들른 목적은 한 가지였다. 바로 베트남 여행에서 입을 가족 커플 옷을 사는 것! 아무리 여행지에서 찐-한 경험을 하고 돌아와도 사진으로 안 남으면 말짱 도루묵인 법이다.


68f0f992-외관.jpg 한시장 내부 모습 (이미지 출처: https://blog.inspitrip.com/)



나는 호객행위를 극도로 싫어한다. 그리고 흥정도 싫어한다. 그런 나에게 한시장은 그리 오래 있고 싶은 곳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겐 정보가 있었다. 바로 양심적인 가격으로 정찰제 운영을 하는 옷가게의 번호였다. 한시장 2층에는 발디들 틈 없이 가게들이 꽉 들어차 있다. 가게들마다 번호가 붙여져 있는데 내가 알아낸 그 가게까지만 무사히 찾아가면 되었다. 여기저기에서 "언니!" "오빠!" "신발 말랑말랑" "언니 하나에 5천 원"하면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엄마 아빠는 베트남 시장에서 들려오는 한국어에 마냥 신기한 표정이었다. 호객하는 손들을 모두 뿌리치며 겨우 내가 원하는 가게를 찾았다. 무조건 여기에서 사서 나가는 것이라고 부모님께 신신당부를 했다.


고민 끝에 엄마와 나는 동일한 디자인의 다른 색 옷을 골랐다. 상의는 허리춤에서 끝나고 천을 감싸서 묶는 형태의 옷이었다. 하의는 바지와 치마가 결합된 디자인이라서 매우 편해 보였다. 엄마와 내가 몇 십분 동안 신중하게 한 개의 옷을 고르는 동안 아빠의 한 팔에는 6개의 옷이 걸려 있었다. 나이키 로고가 새겨져 있는 반팔 무지 셔츠와 동일한 컬러의 반바지, 역시나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긴 팔과 트레이닝복 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시티 2개였다. 아빠는 자신이 돈을 내지 않는 쇼핑에서 망설이는 법이 없다. 엄마는 집에도 한 보따리 있는 티셔츠 쪼가리를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산다며 면박을 줬지만 아빠는 평소에 입는 걸 사야지 한 번 입을까 말까 한 거 사봤자 돈 낭비라고 맞받아쳤다. 나는 6개 해도 비싸지 않다며 엄마를 달래는 한 편 아빠에게는 그래도 여행이니까 커플 옷 느낌이 나는 트로피컬 무늬의 셔츠도 고르시라고 종용했다.


한시장에 도착한 지 30분 만에 우리는 목적을 달성했다. 천천히 둘러보고 나가려는데 엄마가 신발가게에서 멈춰 섰다. 샌들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우리 가족이 발걸음을 멈추자마자 겨우 스무 살이나 됐을까 싶은 앳된 여자아이가 폭풍 한국어로 호객 행위를 했다. "언니, 우리 집 신발 제일 싸. 디자인 골라서 신어. 샌들 말랑말랑. 언니, 발 사이즈?" 한국어가 꽤 유창했는데 존댓말을 안 하니 더 이상한 느낌이었다. 엄마도 지지 않고 반말을 했다. "이거 얼마야?" "이거 하나 더 큰 거" "거울 어딨어?" 엄마가 반말을 하는 것을 듣는 것도 기분이 이상했다. 아무리 우리 엄마라지만 한국 어르신들은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아랫사람 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그 신발 가게에서 엄마는 샌들 하나를 샀고 역시나 기회를 놓칠 리 없는 아빠는 운동화를 하나 골랐다. 제법 두둑해진 쇼핑 봉투를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은 식료품이 늘어서 있다. 그리 위생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여기에서 꼭 망고를 사서 가리라 마음먹었다. 달고 맛있는 망고를 고르는 방법을 읽었는데도 수북이 쌓여있는 망고들 중에 어떤 게 가장 나은지 알 수가 없었다. 과일가게 아주머니가 골라준 것은 왠지 미덥지 않아서 그 옆에 노랗고 상처가 없어 보이는 것으로 하나 골랐다. 다행히 먹기 좋게 껍질을 깎고 잘라서 봉투에 담아 주셨다. 이제 우리는 다시 숙소에 들어갔다.


숙소는 한시장에서 보도로 겨우 3분 남짓이었다. 도착하자마자 탐스러운 망고를 먹었다. 달큼한 과육을 한 입 베어 먹으니 도파민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부모님에게 체크아웃 전에 한 가지 일정이 더 남아 있다고 했다. 부모님은 이미 체크아웃 시간이 1시간밖에 남지 않았는데 무얼 더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한국에서부터 챙겨 온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바로 커플 아오자이였다. 남편과 다낭 여행을 왔을 때 맞춤 제작한 아오자이였는데 한국에서도 버리기가 아까워 고이 모셔두고 있던 옷이었다. 역시 버리지 않기를 잘했다며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냉큼 챙겨 왔다. 엄마는 까르르 웃었다. 이런 전통옷을 입어보고 싶었다면서 지체 없이 갈아입었다. 아빠는 좀 창피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역시나 표정에서 약간의 불신과 불안이 느껴졌다. 옷을 펼쳐서 이리저리 살펴보시더니 그래도 딸이 챙겨 왔는데 입어야지 하는 표정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엄마는 내와 체격이 비슷해서 아오자이가 정말 딱 맞았다. 게다가 빨간색이 엄마의 흰 피부에 찰떡같이 어울렸다. 엄마는 옷 하나 바꿔 입었을 뿐인데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하시며 연신 행복하게 웃으셨다. 아빠의 반응은 정말 예상을 깼다.


"이야, 이거 한국에서도 입어도 되겠는데? 교회 입고 가야겠다!"


아.... 아부지.. 교회여? 하하하. 의심스러운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거울 앞에서 어깨를 딱 펴고 앞뒤를 꼼꼼하게 살펴보셨다. 엄마와 나는 정말 잘 어울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에 입고 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만류했다. 그러고 보니 남자 아오자이 상의가 자수 무늬만 없었으면 신부님 옷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단정하기는 했다. 한바탕 웃으며 옷을 모두 갈아입고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다낭 여행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포토스폿. 바로 핑크 성당에 가기 위해서였다. 핑크 성당 역시 숙소에서 10분 정도 거리였다. 정수리를 태울 것 같이 쨍한 태양빛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는 기념사진을 남기는데 열중했다.


KakaoTalk_20200304_125010175_03.jpg
KakaoTalk_20200304_125010175_04.jpg
KakaoTalk_20200304_125010175_07.jpg
KakaoTalk_20200304_125010175_01.jpg
KakaoTalk_20200304_125010175_08.jpg
KakaoTalk_20200304_125010175_02.jpg
핑크성당은 기념 사진촬영 맛집!


그리 크지도 않은 장소였는데 신나게 기념 촬영을 하다 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지났다. 어느덧 12시가 다 되어갔다. 우리는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이제 드디어 체크아웃이다. 아오자이는 이제 다시 입을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아쉽지만 쓰레기통에 넣었다. 작은 여행가방이 터지기 직전까지 차서 냉철하게 판단해야 했다. 한시장에서 고른 커플 옷을 입고 점심을 먹기 위해 그랩 택시에 올랐다. 비록 아침식사는 폭망 했지만 점심식사로 제대로 점수를 따리라!


우리가 향한 곳은 '로열 타이 다낭'이라는 음식점이었다. 구글 평점을 보고 결정한 곳인데 내가 태국 음식 마니아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최근 오픈했는지 내부 인테리어가 깨끗했고 결정적으로 한인 사장님이 아주 친절하다는 후기가 컸다. 음식점에 들어서자마자 이번엔 틀림없이 성공이란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이 무척 친절했고 후기에서 말한 그 사장님인 듯한 한인 여사장님께서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셨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와 주셨냐면서 자리까지 직접 안내해주셨다. 메뉴판을 받고 고민을 하자 사장님께서 직접 메뉴 추천을 해 드려도 되겠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흔쾌히 추천을 부탁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쏨땀(그린 파파야 태국식 샐러드), 푸팟퐁커리(소프트쉘크랩을 커리로 요리한 음식), 팟타이(태국식 볶음면), 모닝글로리(공심채 볶음), 새우살 튀김 이렇게 총 5개의 메뉴를 시켰다. 그리고 타이거 맥주도 시켰다. 아빠는 술을 끊은 지 20년도 넘었지만 이렇게 특별한 날은 예외였다.


KakaoTalk_20200304_130247144_06.jpg
KakaoTalk_20200304_130247144_05.jpg
KakaoTalk_20200304_130247144_07.jpg
왼쪽부터 팟타이, 모닝글로리, 쏨땀, 새우살튀김, 푸팟퐁커리

우리가 시킨 메뉴들이 차례로 나와 식탁에 올려지자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물론 한국에 비하면 여전히 저렴한 축이지만 베트남 물가로 치면 굉장히 비싼 레스토랑이었다. 그래도 이제야 엄마 아빠에게 제대로 된 환갑여행을 맛 보여 드린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모든 음식들이 수준급이었다. 부모님은 연신 우리 딸들 덕분에 이런 호강을 누려본다며 감격해하셨다. 나는 쑥스러우면서도 내심 뿌듯했다. 왠지 평소 즐기지 않는 맥주도 쭉쭉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KakaoTalk_20200304_130247144_01.jpg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치얼스!


두둑한 배를 두드리며 우리는 다시금 다낭 역으로 향했다. 이제 드디어 아빠를 감동시킬 후에(Hue)로 향하는 것이다. 티켓도 준비되었겠다 걱정할 것이 없었다. 역에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 홈으로 가는 유리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노선이 하나라서 그런지 열차시간이 되기 전에는 이렇게 닫아 놓는 것 같았다.


KakaoTalk_20200304_130247144_03.jpg
KakaoTalk_20200304_130247144_04.jpg
다낭역에서 후에(Hue)행 열차를 기다리며

열차 시간이 5분 정도 남았을 때 방송이 나왔다. 당연히 베트남어를 모르는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이후에 영어로도 안내문이 나왔는데 방송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래도 열차가 늦는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예정된 시간보다 20분이 더 흘렀을 때 역무원이 닫혀있던 유리문을 주섬주섬 열었다. 열차를 타기 전에는 항상 왠지 모를 설렘을 느낀다. 우리는 짐을 챙겨 열차에 올랐다. 열차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했고, 좌석은 한국 KTX보다 더 푹신해 보였다. 다시 한번 기차를 타기로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자축했다.


KakaoTalk_20200304_133057994_02.jpg
KakaoTalk_20200304_133057994_03.jpg
기차여행의 낭만을 만끽 중인 엄빠

덜컹거리는 열차에 앉아 창밖으로 펼쳐지는 이국적인 풍경을 감상하며 후에(Hue)로 향했다. 우리가 탄 열차칸에 승객이 거의 없어 1인 2 좌석을 차지하며 정말 편하게 이동했다.


KakaoTalk_20200304_133057994_05.jpg 기차 밖으로 펼쳐지는 노을 진 하늘

3시간쯤 달리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창 밖으로 노을 진 하늘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베트남에 도착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어제 새벽부터 오늘 아침식사까지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던 부모님의 표정이 어느새부턴가 기대와 설렘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외식 한 번 하려고 해도 딸이 돈을 많이 쓸까 봐 전전긍긍하시던 부모님이(엄밀히 말하면 엄마가) 한결 부드러운 표정으로 모든 것을 즐기시는 모습을 보니 이게 바로 베트남에서 느끼는 신분상승의 맛이 아닌가 싶었다. 이제 후에 역에 도착해서 내가 예약한 멋진 리조트에 도착하면 오늘 하루는 정말 드라마틱한 신분의 상승을 맛보는 날이 될 것이다! (아, 짜릿해)





대환장 환갑여행 to be continued...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대환장 환갑여행 Ep.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