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뭐 좀 물어봐도 돼요?

타인과의 대화가 두려워진 시대

by 마리뮤

정신 없이 바빠서 점심도 챙겨먹지 못한 채 저녁시간이 됐다. 결정장애가 심한 나는 극심하게 배가 고프면서도 저녁 메뉴를 고르지 못했다. 혼자서 들어가 먹어도 뻘쭘하지 않은 장소여야하고 가격이 부담되지 않으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야 했다. 츄러스로 대충 때우고 집에 가서 먹을까 생각했다가 줄이 길어 포기하고, 분식집은 내가 가는 동선에서 반대라서 귀찮았다. 결국엔 또 패스트푸드점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KFC 치킨에서 햄버거를 시켰는데 콜라까지 마시면 너무 죄책감이 들어 코리안라뗀지 뭔지하는 음료가 있기에 시켰더니 그냥 믹스커피였다. 죄책감이 더 커졌다. 우걱우걱 햄버거를 다 먹어갈 즈음 갑자기 옆 테이블에 있던 내 또래 여자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뭐 좀 물어봐도 돼요?"


나는 단박에 긴장했다. 우선 요즘 시대에 '저기요..'로 시작하는 말은 거의 '도를 아십니까'와 일맥상통하니까 이젠 음식점에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세상이 되었나 싶었다. 내가 떨떠름하게 쳐다보며 '네?'라고 하니 곧이어 "여기 근처에 조용한 카페 있나요?"라고 물었다. 생각했던 패턴의 대화가 아니기에 내가 아는 선에서 대답을 해주었다. 친절하게 대답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이 여자가 무슨 의도로 나에게 말을 걸었을까를 계산하느라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흥미롭게도 이 여자는 내 대답을 듣고는 마치 구면인 사람을 대하듯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나갔다. '하긴 역 근처는 카페들이 조용할리가 없겠죠?' 라더니 그럼 조금 걷더라도 추천할 만한 카페가 없냐고도 하고, 자기 전공은 미술이론인데 모임을 하나 열어볼까 싶다고 하기도하고, 내가 주섬주섬 햄버거 포장을 접어 쟁반에 올려두며 이제 일어나야한다는 신호를 보내도 태연하게 연남동에 있는 카페들은 가본 적 있냐 물었다.


결국, 도를 아느냐는 질문은 받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그 여자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옆에 앉아있던 타인에게 말을 걸었던 걸까, 아니면 적당한 대화로 간을 보며 조상님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외국 영화를 보면 음식점에서든 카페에서든 모르는 사람과도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던데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선 영 판타지 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별것 아닌 일인데도 오늘 내내 그 일이 신경 쓰였다. 그 여자의 얼굴이 떠오르고 나는 양손에 이름표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한 손에는 '착한 사람', 한 손에는 '나쁜 사람'이라고 쓴 이름표를... 어느 쪽인지 딱하고 이마에 붙여줘야 마음편히 두다리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영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그래도 잠은 자야지. 나는 양손에 있는 이름표를 모두 그 여자 이마에 붙인다.





"저기요, 뭐 좀 물어봐도 돼요? 아까 정말 나한테 왜 말 시킨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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