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0% 테토남이다 _ 2025년 12월

by 김대원

몇 달 전부터 ‘에겐남, 테토남’ 하는 말들이 유행이다. 옛날 사귀었던 친구가 사귀던 당시에 나보고 테스트를 해보라고 해서 했다. 테토남으로 나왔다. 무려 70%였다. 결과를 말해주니,
“엥? 오빠가 테토가 70%나 나온다고?”
“누가 봐도 상남자잖아.”
“풉. 그래그래.”


이 친구와의 첫 만남이 떠오른다. 친한 대학 동기가 연결해준 소개팅이었다. 처음엔 본인의 사촌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으나, 워낙 바빴던 시기라서 거절했었다. 연속으로 거절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나갔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듯, 기대가 작으면 행복이 크다. 인생의 진리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소개팅에서 바로 사랑에 빠졌다.


그 친구는 그동안에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는 결이 달랐다. 말을 잘하고, 웃긴 친구였다. 그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내 이상형은 ‘단체 술자리에서 구석 자리에 앉아 조용히 홀짝홀짝 술을 마실 것 같은 여자’였다. 사귄 사람들도 다 그런 스타일이었다.


소개팅이 끝나고 주선자인 대학 동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너 소개팅에서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이런 말이 나와?”
“사랑에 빠졌다지?”
“그건 모르겠고, 너 혹시 모솔(모태솔로)이냐는데?”
“...”
“어떻게 행동했길래 널 모솔로 볼 수가 있지?”


자존심이 상했다. 뛰어난 언변과 화려한 스킬로 소개팅 자리를 뒤집어 놓은 줄 알고 집에 돌아왔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강아지가 2시간 넘게 참던 똥을 시원하게 싸고 들판을 나달리는 발걸음만큼이나 가벼웠었다. 친구 말을 듣고 축 늘어진 어깨는 안 그래도 큰 승모근을 부각하기 딱 좋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친구도 첫 만남에 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 나중에 내 어디가 좋았냐고 물었더니, 허세가 없어서 좋다고 했다. 모르는 게 참 많은데, 꼬치꼬치 물어보는 게 신기했다고. 남자들 보통 몰라도 아는 척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거도 자존감 높은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거라며.


이 말 한마디 듣고 늘어진 어깨가 다시 쑥 올라갔다. 모솔로 보이든, 바보로 보이든 좋아하는 여자 사귀면 됐지 뭐. 도로 가나 모로 가나 서울만 가면 된다고. 뿌뿌.


몇 달 전부터 자주 가는 미용실이 있다. 커트 비용도 괜찮고, 회사에서 가까워서 간다. 사실 헤어 디자이너가 너무 귀여워서 그 사람을 보러 간다. 농담이다. 성인 되고 여러 미용실을 다녔지만, 그 사람이 잘라준 머리가 가장 예뻤다. 본가에 내려갔을 때, 엄마도 머리 예쁘게 잘랐다며 칭찬해 주셨다.


그 헤어 디자이너는 나이도 나랑 비슷하고, 워낙 성격이 좋으셔서 몇 번 다니다 보니 꽤 친해졌다. 사적인 이야기도 종종 나눌 만큼.
“여자친구는 있으세요?”
“없어요.”
“없었어요?”
“네, 없어요.”
“아, 있었는데?”
“아니 없어요 그냥.”


그 사람은 내 말끝마다 웃었다. 역시 내 개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사실 무수히 많은 여자들이 날 웃기다며 좋아한다.) 리액션이 좋은 여자를 안 좋아하는 남자는 없다.
“남자친구 있어요?”
“네, 있어요.”


내 하늘이 무너졌다. 지난 몇 달을 설레면서 미용실에 갔는데. 물론 지저분한 머리가 예쁘게 정돈될 거라는 생각에 설렌 거다. 다음부터 이 미용실 안 와야지. 뿌뿌.


어느 날, 그 사람은 내게 결정타를 날렸다.
“여자 많이 안 만나보셨을 것 같아요.”
“예? 저 알파남인데.”
“되게 에겐에겐 해서. 솔직히 여자 거의 안 만나보셨죠?”
“예? 저 상남자인데.”


거의 2년이 다 되어가는 그 소개팅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미용실에서 나오자마자 초딩 때부터 친한 친구에게 연락했다.
“왜 여자들이 나를 처음 보면 모솔로 보지?”
“엥? 너를? 근데 그거 좋은 거 아니냐. 나는 다 여자 경험 많을 것 같다고 그러던데.”


물론 여자들한테 인기 많을 것 같다거나, 센스 있다거나, 누나 있을 것 같다거나, 선수 같다거나, 하는 말도 종종 듣는다. 차라리 이런 말들은 이해가 된다. 사실이니까. 뿌뿌.


주위 사람들에게 내 MBTI를 맞춰보라고 한 적이 있다. 나를 3년 이상 알고 지낸 20명한테 물어봤다. 16개의 MBTI 중에 13개의 답변이 나왔다. ENFJ랑 INFP가 각각 4표로 1등을 차지했고, ESTP가 3등, 나머지는 거의 균등하게 나온 걸로 기억한다.


MBTI는 내가 검사할 때도 자주 바뀌어서 뭐라고 소개해야 하는지 항상 난감하다. 주위 사람들조차 나를 다 다르게 보니 사이코패스인가 하는 상상도 했다. 실제로 사이코패스 테스트를 해보고 싶어서 병원 검사 비용도 알아본 적이 있다. 10만 원이 넘는다. 에이, 그럼 안 하지. 사이코패스 될 뻔한 기회였는데. 흐흐.


‘극히 일부인 몇몇’ 여자들에게 나의 첫인상이 모솔 같아 보일지라도, 걱정하지 마시라. 몇 번 소개팅 해본 결과, 소개팅 성공률은 100%였다.(진짜다. 그리고 절대 한 번 한 거 아니다.) 물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과의 소개팅은 제외했다.(사실 마음에 드는데, 나 혼자 좋아하는 거 같아서 나도 마음에 안 들었다고 정신 승리한 거 아니다.)


쓰고 나니 너무 추하다. 이래 봬도 테토가 70% 나오는 상남자인데, 잠시 나답지 않았다. 모솔 같다는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니 심신미약 상태가 된 거냐고 묻지 마라. 나 같은 테토남이 얼마나 단단한 사람인지 몰라서 하는 말일 테니.


그 미용실은 앞으로도 종종 갈 거다. 디자이너가 귀여워서가 아니고, 오기 때문도 아니다. 머리를 예쁘게 잘 잘라줘서다. 정말이다.

작가의 이전글미친 사람 _ 2025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