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사람 _ 2025년 12월

by 김대원

내 사전에 ‘적당히’란 없다. 정신 못 차릴 정도로 푹 빠지거나, 아예 관심이 없거나. 둘 중 하나다.


초등학생 때는 노는 거에 미쳤었다. 사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그랬다. 점심 먹고 나가서는 연락도 없이 밤늦게 돌아오곤 했다. 넌 종일 연락도 없냐며 늘 엄마한테 꾸중을 들었지만, 단 하루도 제대로 연락을 드린 날이 없었다.


습관이란 게 무섭다. 중학생 때 연애를 시작하면서 연락 문제로 여자친구를 힘들게 했었다. 난 연락이 그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 할 말 없으면 읽고 씹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성인이 되고서야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그때 그게 심각한 행동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사실 지금까지도 이해가 안 돼서 그냥 외웠다. 여자친구가 아무리 할 말 없게 연락해도 할 말을 쥐어 짜내야 한다는 것을. 습관이란 게 무섭다. 하다 보니 또 잘한다 이제.


중학생 때는 게임에 미쳤었다. 다시 생각하니 초등학생 때도 게임에 미쳤었다. 그냥 노는 거에 미친 사람이었다. 근데 공부는 어떻게 잘했냐고? 어릴 때부터 꾸준히 했다. 그리고 굉장히 효율적으로 했다. 예를 들어, 수학 문제집을 풀 때 딱 봐도 내가 아는 문제면 답지를 다 베꼈다. 빨리 풀고 축구하러 나가야 하니까.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그제서야 제대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효율의 끝판왕은 인터넷 강의다. 학원을 오래 다니지도 않았지만, 오래 다니지 않은 이유도 효율이 떨어져서였다. 학원에 오가는 시간이 아까웠고, 무엇보다 진도가 너무 느렸다. 정확히 말하면 수업 진행 속도가 너무 느렸다.


인강을 처음 들은 건 초4 때였고, 고3 때까지 거의 인강만으로 공부했다. 거의 9년을 인강에 바쳤다. 인강은 사랑이다. 인강을 가장 느리게 들은 속도가 1.8배속이었고, 최대 배속인 2.0배속으로 듣는 게 기본값이었다. 수학은 과목 특성상 아는 내용이 많아 2.0배속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럴 때면 건너뛰기를 많이 했다.


서울대생 정도면 대부분이 다 나 같은 줄 알았다. 아니더라. 이 사실을 서울대에 오고 한참 지나고 나서 깨달았다. 서울대생들을 보면서 세상 똑똑한 사람 참 많다는 생각을 자주 해서 그들도 당연히 배속으로 시청한 줄 알았다.


절대 자랑하려는 건 아니지만, 자랑이라면 자랑이다.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잘난 애들이 인강을 2.0배속으로 들으면 이해가 안 된다고? 나 어쩌면 머리가 나쁘지 않을지도? 뿌뿌.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효율적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노는 거에 미칠 수 있었다. 운동은 운동대로, 게임은 게임대로, 연애는 연애대로 잘 즐겼다. 사랑에 빠지면 정신을 못 차리는 타입이라 절제하지 못하는 내 자신의 모습에 끝내 이별을 선택하긴 했지만.


요즘은 운동에 미쳐 산다. 퇴근하면 급하게 저녁을 먹고, 골프를 치고, 헬스장에 간다. 그리고 컨디션이 좋으면 러닝을 한다. 평일 중 하루는 축구를 하며, 주말엔 배드민턴을 치곤 한다.(테니스를 치고 싶지만, 기회가 딱히 없다.) 매주 최소로 하는 운동이 3종류, 거의 매일 최소 2종류를 한다. 내가 생각해도 운동에 미친 놈이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알려주겠다는 유튜브를 본 적이 있다. 현실이 운동할 때보다 힘들면 된다더라. 운동하는 게 힘들고 귀찮게 느껴지면 현실이 편한 거라고. 현실이 고달프면 운동이 쉬는 거라고. 뭐야, 내가 그 정도로 힘들다고?


잘 때 꿈을 잘 꾸지 않지만, 꿈을 꾸는 날이면 매번 같은 패턴의 꿈을 꾼다. 내가 쫓기거나, 내가 쫓거나, 내가 죽거나, 내가 죽이거나. 나도 모르는 스트레스가 내 안에 잠재되어 있나 보다. 스트레스받는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말이다.


평소 뛰어나다고 생각한 마인드 컨트롤 능력 덕분일까. 내가 아무리 무식하고 멍청해도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단 한 가지는 바로 마인드 컨트롤이다. 쉽게 말해서 자기합리화다.


내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해서 받아들이는 습관이 있다. 공부할 때 주위가 시끄러우면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거나,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계단을 오르면서 체력을 기를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반골 기질도 강하다. 시험 날 미역국을 먹으면 미끄러진다는 말을 듣고, 수능날에 엄마한테 미역국을 달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미신이라는 걸 증명하겠다며. 엄마는 실제로 미역국을 해줬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3년 모의고사를 통틀어서 수능 날 처음으로 사회탐구 두 과목을 만점 받았다. 아들이 해달라고 실제로 해주는 걸 보면 우리 엄마도 인간 자체가 참 강한 사람이다.


문지방을 밟고 지나가면 안 좋다길래 어릴 적 쪼그만 발로 문지방을 콕콕 밟고 지나다녔고, 기회가 될 때마다 빨간 글씨로 내 이름을 썼다. 거실에서 뛰지 말라고 엄마가 잔소리할 때면 꼭 두 번 정도는 더 뛰고 나서 멈췄고, 하지 말라는 건 있는 힘껏 한 번 더하곤 했다. 엄마가 많이 불러주신 내 별명은 청개구리였다. 기분이 좋은 날엔 똥강아지라고도 불러주셨다. 절대 똥 냄새가 나서는 아니다.


운동 자체를 어릴 때부터 좋아하긴 했다. 유딩 때는 축구를 배웠고, 초딩 때는 수영과 농구를 배웠고, 중딩 때는 탁구를 배웠고, 대딩 때는 펜싱과 테니스를 배웠고, 지금은 골프를 배우고 있다. 특히 수영은 질리도록 열심히 해서 대전 선수권 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요즘 운동에 미쳐 사는 이유는 운동이 좋아서도 있지만, 외로워서 미칠 것 같기 때문이다. 외로워서 미칠 바에야 운동에 미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내 스타일인 여자는 세상엔 널리고 널렸고(길 가다 하루에도 최소 몇 명씩은 본다.), 나 좋다는 여자도 줄을 섰는데(잘 보이지 않지만 정말이다.), 짝짝꿍이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있나.


매년 부탁 안 해도 두세개씩 잘 들어오던 소개팅은 하필 여자친구가 곁에 없을 때 안 들어오고, 잘 사귀고 있을 땐 또 잘 들어오고. 내가 아무리 리쌍의 엇박 타는 랩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런 식의 엇박은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싶다. 세상도 참 매정하시지. 매정? 매정이가 보고싶다. 매정이는 나의 중학교 동창이자, 친한 고등학교 친구의 전여친의 별명이다. 매정아, 잘 지내니? 내가 너 몫까지 외로울게. 퉤퉤퉤, 취소. 미안해. 외로운 건 내 몫만으로도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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