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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 Crown Jul 02. 2016

이쯤 되면 반칙, 벨기에 디자인

안그라픽스, 지은경 저, <벨기에 디자인 여행>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한국적 디자인'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어렸을 적부터 절을 좋아해 절의 색감, 창살의 무늬, 기와 등 한국적인 것들을 디자인에 입히려 시도해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적 디자인에 대해 조금 회의적인 감정이 들었다. 이 답답한 마음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벨기에의 디자인을 통해 조금은 환기할 수 있었다. 책을 통해 얻은 디자인 영감을 천천히 정리해본다.




0.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 통영

: 가족끼리 겨울이면 통영에 들르곤 한다. 항구 인근 식당에서 제철 싱싱한 굴을 테이블에 둘러앉아 한상 가득 먹고 나면 배는 부르지만 뭔가 아쉬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다. 책에 소개된 벨기에 항구 도시 앤트워프의 마스 뮤지엄(Mas Museum) 사진을 보며, 무엇이 아쉬운지 바로 떠올랐다.

(벨기에 앤트워프에 위치한 마스 뮤지엄(Mas Museum), 출처 : 사진 하단 표기)

그건 통영에 시각적 랜드마크가 없다는 사실이다. 통영은 충무 김밥, 굴, 꿀빵 등 수많은 정말 맛있는 먹거리가 많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기억되는 것엔 약하다. 집에서 통영으로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즐비한 유럽식 별장들은 여기에 아쉬움을 더한다. 독일 마을, 스위스 마을로 불리는 이 건물의 집합체들이 아쉬움을 더한다.


마스 뮤지엄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2011년 5월에 개관했고 네덜란드 건축가 윌렘 얀 뉴틀링스(Williem-Jan Neutelings)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뮤지엄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바다에서 모티브를 얻은 크고 굴곡진 유리창이 큰 특징이다. 전시는 물론이고 유아를 위한 예술 활동도 지원한다. 아직 랜드마크가 될 정도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뮤지엄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벨기에의 한 랜드마크가 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제주도의 오래된 모텔을 사들여 개조한 아아리오 뮤지엄 - 동문 모텔점, 출처 : 제주도박물관협의회)

한국에도 좋은 사례가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아라리오 뮤지엄이다. 제주의 탑동 뮤지엄, 동문 모텔 뮤지엄은 지역의 색을 유지하며 하나의 랜드마크가 되는 데, 내가 아라리오 뮤지엄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다. 통영에도 지역의 색을 살리는 뮤지엄이 랜드마크로 건설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1. 디자인의 모티브가 아닌 기본 - 역사

#전통과 현대가 만나 주얼리로 탄생하다. - 잉그리드 버후븐

(이미지 출처 : www.ingridverhoeven.com)
나는 디자이너가 미술의 역사와 흐름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미술 작품들과 오브제들이 왜 그렇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항상 이해하려고 노력하죠. (170p. 잉그리드 버후븐의 인터뷰 중에서)

: 그의 주얼리숍을 방문한 첫인상이 1940년대 칸딘스키를 대표로 하는 모더니즘 화가들의 작품이 떠오른다고 글쓴이는 말한다. 그리고 나는 한 교수님이 수업에서 "디자인 사조는 이미 다 적립되었다. 남은 것은 반복만 있을 뿐"이라 한 말이 떠올랐다. 이때는 디자인에서 역사는 모티브의 하나로 사용될 도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잉그리드 버후븐의 인터뷰와 그의 작품을 보니, 모티브로 역사를 사용하는 사람과 기본으로 역사를 녹여내는 사람의 차이는 분명해 보인다. 즉, 디자이너로서 역사 공부를 꼭 제대로 해야 할 것!


그의 주얼리를 보며 한국의 주얼리와 다른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색감이었다. 위의 사진뿐 아니라 그의 작업엔 포인트 컬러로 한국에선 과감하다고 느낄 수 있는 컬러가 사용되곤 한다. (색 자체는 과감하지 않지만, 주얼리에 사용한다는 점에서) 아직 중저가의 국내 브랜드 주얼리숍에선 이런 컬러가 사용되지 않는 듯하다. 로즈 골드가 유행이긴 하지만. 주얼리숍을 종종 방문하는데, 이런 색감의 브랜드가 있다면 금 때문에 아픈 눈의 피로를 조금은 덜어주지 싶다.




2. 벨기에를 꽉꽉 눌러 담은 책

#디자인은 벨기에 전과 후로 나뉜다.

: 책은 <플란더스의 개>를 통해 벨기에를 설명한 서론부터 참 좋았다. 그리고 스머프, 감자튀김, 맥주, 스파 등 벨기에를 설명하는 많은 단어들로 책은 채워져 있다. 읽다 보니 사실 이쯤 되면 반칙이 아닌가 싶다. 유니클로에서 산 노란 반팔 속 캐릭터 틱틱마저 벨기에의 캐릭터였다니. 책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디자이너를 보며 부럽기도 하고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여행은 사람만 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책은 벨기에로 가득 차 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기술을 배운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확실히 기술은 가시적 성취가 뚜렷해서 성취감은 있다. 하지만 1px만 벗어나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법을 배우는 교육이 아니라 디자인 역사를 모티브가 아닌 기본으로 인식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감히 생각해본다. 스스로도 이런 배움을 찾아가자.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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