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수], 임종애 저, <이탈리아 디자인 산책>
최근, 프로덕트 디자인을 부전공으로 배우고 있다. 프로덕트 디자인 새내기로서 두 가지 물음을 자문자답해 본 책이었다. 첫째, 한국에선 왜 철학과 예술을 입힌 제품 디자인을 단번에 떠올리기 힘들까? 둘째, 제품 하나당 디자인의 가지 수는 확연히 늘어났는데, 왜 제품 디자이너는 한국에서 힘들까. 희한하다.
1. 의자는 책이다. 고로 의자는 도끼다.
내가 읽은 책들은 나의 도끼였다. 얼어붙은 감성을 깨뜨리고 잠자던 세포를 깨우는 도끼. 도끼 자국들은 내 머릿속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어찌 잊겠는가?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쩌렁쩌렁 울리던, 그 얼음이 깨지는 소리를. - 박웅현 저, <책은 도끼다> 중에서
: 대림 미술관의 'Color your life' 전시에서 의자가 2층 높이로 책처럼 진열된 전시 공간이 있었다. 진열된 모습처럼 실제로 디자이너에게 의자라는 제품은 책과 같다. 출판사, 글쓴이, 제목, 내용이 고려 대상인 것처럼 회사, 디자이너, 제품명, 내용이 고려 대상이다. 그리고 의자에도 고전이 있다. 의자도 도끼다.
의자가 디자인 역사에서 한 흐름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김상규 씨의 저서 <의자의 재발견>으로 알았다. 책 자체도 좋았고 의자가 앉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책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보이기 시작한 것. 그리고 이번 책을 통해 파비오 노벰브레의 의자를 보게 되었다. 이 디자인을 보면서 생긴 물음을 스스로 생각해본다.
#왜 신화와 철학은 보기 어려울까?
: 파비오 노벰브레의 디자인 '니모'는 가깝게는 영화 <니모를 찾아서>로부터, 멀게는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까지 거슬러 올라가 모티브를 얻은 작업이라 말한다. 정체성을 찾는 여정에 공통점을 둔 것이다. 저자는 그의 넓은 역사의 스펙트럼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한다. 그의 디자인이 고전이 될 수 있을지는 시간이 답을 주겠지만 그의 철학과 디자인은 가능성 있어 보인다. 한국에도 정체성을 모티브로 얻을 수 있는 신화는 많다. 만약 이 디자인이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면 어떨까? 글쎄... 말을 아낀다.
얼마 전 한국에서 본 뉴스 중 정말 아픈 기사가 있었다. 지자체가 도로 공사를 위해 100년 전통의 공방에서 소반장을 강제 수용했다는 내용의 기사. 장인은 고전을, 도끼를 만드는 사람이다. 죽어있는 177m 도로를 위해 살아있는 100년 역사를 강제 집행한 이야기는 너무나 아프다. 한국에서 철학적 디자인이 나오기란 확실히 쉽지 않다. 작년(2015) 홍익대학교 프로덕트 디자인 졸업 전시에서 한 학생이 싸리비 만드는 장인을 몇 개월간 인터뷰해서 그분을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을 봤다. 많은 울림을 주는 프로젝트였는데, 이런 시도는 분명 고전이 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디자이너로서 한 번쯤 생각해봐야겠다. 뭣이 중헌지..
(위의 공방에 관한 기사 :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245851)
2. 실명제는 거기(?)가 아니라 여기(!)에서 먼저 이뤄져야지 않을까?
: 한 졸업생 선배가 학교에서 강연을 했다. 스스로 디자인하신 위의 'DOZA' 제품을 보여주며 시원시원하고 직설적인 강연으로 좋았다는 친구들이 많았다. 스스로 디자인한 제품에 대한 애착이 느껴지는 강연이었다. 그는 만들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했다. 이제야 조금씩 알려지고 있어서 뿌듯하다고 했다. 얼마 후, 한 대형 문구점에 입점한 브랜드에서 너무나 흡사한 제품이 출시되었다.
언제부턴가 샤오미의 제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기 시작했다. 이미 보조 배터리 시장에선 웬만하면 샤오미를 다들 하나씩은 가진 듯하고, 최근엔 샤오미의 노트북도 조금씩 언급되는 것 같다. 한 웹페이지에선 다이슨의 헤어드라이기 신상품의 가격만 강조하며, 싸고 좋은 샤오미를 논하기도 한다.
저작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카피 제품이 용인되는 것이 제작자 혹은 디자이너의 현주소다. 정말 너무나 속상하지만 감정을 글로 적지는 않는다. 책에는 이탈리아의 과감하고 도전적인 제품 디자인이 왕왕 보인다. 그리고 왜 이들은 인정받으며 작업을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바로 '디자인 실명제'다.
#디자인 실명제
: 제품마다 디자이너의 이름을 명시하는 제도로 실제 판매 수량에 따라 디자이너가 제품 가격의 일정 부분을 개런티로 받도록 해 디자이너의 성취욕을 높인 오늘날 이탈리아 디자인을 있게 한 실질적인 제도이며, 디자이너와 디자인 모두 시장에 의해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한 제도이다. (책 170p. 일부 발췌 및 요약)
한국은 경제 급성장을 위해 자국 기업 성장에 많은 관용을 베풀었다. 그게 화근이었나? 기업의 가치는 유연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을 확실히 지키는 것에서 생기는데, 한국의 기업은 관용 속에서 유연했다. 아마 디자인에 대해 가장 유연하지 않았나 싶다. 이런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 이탈리아는 진작 산업 중심기에 디자인 실명제를 도입한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많은 디자이너가 샤오미 정도의 제품 디자인을 못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들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디자인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가치에 유연성은 없다. 디자인 실명제가 절대적인 제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우울한 분위기의 프로덕트 디자인 계열에 조금은 빛이 되어줄지 모르겠다. 실명제는 거기가 아니라 여기가 먼저 아닐까?
3. 두 물음에 마침표를 찍으며
: 환경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한국의 프로덕트 디자인 환경은 좋지 못하다. 동네 카페의 웬만큼 예쁜 의자는 해외 유명 디자이너의 의자를 카피한 제품이다. 혹자는 제품에서 아우라까지 카피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분발해야 한다고 했고 혹자는 이런 환경이 싫어서 떠난다고 했다. 한국적 철학 그리고 한국의 환경. 둘 다 명확히 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도 이 글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현재 프로덕트 디자인 구조에 이런 물음이 있고, 이런 개선책도 있더라라는 것을 안다면 그로 족한다. 아직은.
글의 제목과 내용에 박웅현 씨의 <책은 도끼다>를 차용했다. 개인적으로 한국 디자인이 고전으로 인정받고, 사람들의 언 감수성을 깨버리고 울림을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디자인은 도끼다.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