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내는 작년 말에 출산한 친구 집에 다녀왔다. 이제 갓 다섯 달이 된 아기 앞에서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잊고 지냈던 우리의 시간이 떠올랐다.
7년 전, 아이가 태어난 뒤 우리 집 안에는 한동안 서늘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혹시나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불안 때문에 하루도 편안하게 넘기는 날이 없었다.
그 시절, 우리는 모두 예민했다. 새끼 곁을 지키는 어미 고양이처럼 작은 일에도 날 선 말이 오갔다.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 것 같으면 둘 다 안절부절못했다.
분유를 탈 때마다 물의 온도와 비율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그대로 쏟아버리고 다시 시작했다.
매일 밤 젖병을 소독하느라 집 안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고, 한밤중에도 몇 번씩 일어나 방의 온도와 습도를 맞췄다. 수유 시간과 수면 시간은 분 단위로 맞췄다. 마치 다시 군 생활을 하는 기분이었다.
하루는 술을 마시고 돌아온 나에게 아내는 아기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했다. 내가 내쉬는 숨에 알코올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긴장하고 애쓰는 날들이 이어졌다. 우리는 늘 피곤했고, 그 예민함은 종종 서로를 향했다.
아이를 위한 일이라 믿었지만, 그 시간은 우리에게도, 아이에게도 그리 편안하지 않은 날들이었다.
그땐 몰랐다. 더 정확하게, 더 잘 해내는 것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믿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소란한 공기 속에서도 아이는 제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 틀에 맞는 완벽함 보다 조금은 느긋한 여유가 필요했다는 것을 말이다.
며칠 전,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그 시절의 우리가 떠올랐다.
조금 서툴렀고, 조금 과했고, 그래서 더 많이 애썼던 시간.
나는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잠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