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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여 Aug 23. 2023

중년소년의 잠깐 트레블로그

8. Torres Del Rio -  Nájera

순례길 DAY 7. Torres Del Rio - Logroño

나와 몇몇 동료들은 순례길 2번째 도시인 로그로뇨에 일찍 도착하기 위해 어제 다른 일행들 보다 좀 더 많이 걸었다. 걸은지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몸이 걷는것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는것 같았다. 하지만 근육통과 피로감은 누적되고 있어서 온몸이 찌뿌둥했고 아침에 눈을 뜨는것이 힘들어졌다. 함께 걷는 친구 페페도 15키로가 넘는 가방무게 때문에 오르막에서 부쩍 힘들어하고 있었다. 순례길 이전부터 여행중이였던 페페는 순례길을 마친 이후에도 카나리아 제도에서 보름동안 더 여행을 할 계획이였기 때문에 다른 순례자들보다 많은 짐을 가지고 있었다. 페페는 짐을 어떻게 줄여야 할지 결정 해야 했다. 그외에 몇몇동료들의 낙오소식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온 간호사 친구는 무릎이 부어서 더이상 걸을 수 없었고, 독일 친구 프레데리케는 신발을 잘못 구입해 발이 온통 물집투성이였다. 우리가 걸은 거리는 지금까지 150km 남짓. 아직 순례길 4분의 1도 채 걷지 않았다. 그나마 나는 상황이 다른사람들에 비해 나은 편이였다. 발과 무릎에 피로가 쌓여 조금 욱신거리는것만 빼면 물집도 없고 몸도 건강했다. 건조한 기후와 추운밤 라디에이터 때문에 비염이 조금씩 안좋아지고 있었지만 참을만 했다. 

길은 연결되어 있다. 모두에게로, 모든곳으로 
YES!  We're on the right track.

몸이 힘든것도 그렇지만, 알베르게 생활이 사람을 지치게 했다. 단체 숙소생활이 낭만적일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큰 오산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맘에 맞는 친구들도 있지만 사사로운 폐를 끼치거나 제멋대로 생활하는 친구들도 분명 있다. 순례길에 나섰다고 모두 조용하고 절제된 생활을 원하는것은 아니다. 술이나 대마초에 취해서 매일밤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매일 낮선 잠자리에서 수십명이 한공간에 자는것 또한 곤욕이다. 코고는 소리, 이층침대의 삐그덕 거리는 소리, 핸드폰 불빛 등 수면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아서 나같이 쉽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적잖이 힘든 부분들이였다. 


나와 페페 

순례길은 정말로 낭만적인 고생길 이다. 이길을 온전히 걸어내거나 중도에 포기하더라도 기억에 남는 감정의 결은 고생에 대응하는 자세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을것이다. 내가 끝까지 걸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이때는 확신할 수 없었다. 초반의 들떴던 알베르게의 분위기도 이제는 많이 가라 앉았다. 모두 무사히 순례길을 마칠 수 있을까 라고 스스로 의심을 해보는 적응기를 거치고 있는것이 아닐까? 이날 나는 내 짐을 그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고 걷고 걸어서 서쪽 땅의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순례길 DAY 8. Logroño - Nájera

나는 순례길을 걷는 하루 일정 중 일출 무렵을 가장 좋아한다. 동이 트기 직전의 부드러운 빛이 예뻤다. 차갑고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시시각각 변해가는 하늘빛을 감상하는 것은 매혹적인 경험이다. 어떤 아침엔 달의 월몰과 해의 일출을 본적이 있었다. 월몰은 살면서 한번도 본적이 없던 풍경이었다. 해가 떠오르는 가운데 달이 지는 새벽하늘 풍경은 놀랍고 신비로웠다. 순례길을 아침 일찍 출발 할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은 풍경만이 아니다. 아무래도 숙소에 남들보다 빨리 도착하다 보니 나머지 하루일과에 좀 더 여유가 생긴다. 

또한 숙소에서 휴식에 유리한 공간을 선점하는 혜택도 누리게 된다. 특히 누구나 선호하게 되는 1층 침대를 사용할 수 가능성이 높아진다. 2층 침대에서 자는것이 낭만적라고 생각하는 순례자도 있겠지만 전자기기 충전 부터 휴식과 관련된 모든 행동에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되도록 1층 침대를 쓰고싶어한다. 대개의 알베르게는 먼저 도착하는 순서대로 1층 침대를 배정하는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부지런한 순례자가 좋은 잠자리를 선점할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순례길을 천천히 여유롭게 걷는 사람들은 이런것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숙소에서 겪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길 위의 여유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이날의 목적지인 나헤라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메마르고 건조한 와인농장 지대 사이를 지나야 했다.  도시에 이르러 도심지로 좀 더 걸어가니 천이 완만히 흘러내리는 강변에 심은 나무들에 봄꽃이 막 무성해지고 있었다. 야트막한 내천 사이에 깔린 잔디길을 걸으며 얼마남지 않은 알베르게로 향하니 긴 거리를 걸었던 피로가 금새 사라졌다. 이날 묵을 알베르게는 나헤리아 강변에 위치한 아담한 숙소였다. 나는 어제 로그로뇨에서 발견한 중국마트에서 산 라면에 마늘과 소세지, 스팸을 넣고 친구들을 위해 부대찌개를 끓였다. 마늘냄새를 거북해하면 어떡하나 싶었지만 너무나 잘 먹는 친구들의 모습에 기뻤다. 우리 일행중에는 대만에서 온 두 친구가 있었는데 그둘은 한국음식을 좋아하고 요리하는것에도 관심이 많았다. 내가 부대찌개를 끓이자 자기도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나중에 꼭 중국마트에 들러 한국라면을 사야겠다고 했다. 영국에서 온 앨리스라는 친구는 내가 무엇을 요리하는지 궁금해 했다. 부대찌개에 얽힌 한국 역사이야기를 해주니 매우 흥미로워 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3월의 쌀쌀한 스페인의 밤도 부대찌개의 온기에 훈훈하게 저물어갔다. 

나헤라 Albergue de peregrinos de Nájera

#순례길 #산티아고 #트레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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