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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쉬워 보인다면 그 사람이 엄청난 고수라는 뜻이다.

개발자 VS 동네 소아과 의사 - 소아과 전문의의 소아과에 대한 단상 1

얼마 전 "블라인드"라는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개발자 VS 동네 소아과 의사 논쟁이 벌어졌다.

해당 글 작성자 분의 직장이 "카카오"인걸 보면, 아마도 카카오에서 근무하시는 IT 개발자인 듯하다.



사실 필자는 브런치와 블로그, 개인 SNS를 제외하면

일체의 커뮤니티는 물론 뉴스창 댓글란조차도 보질 않는다.

그래서 "블라인드" 커뮤니티 아이디가 있는 친구를 통해서 해당 글이 쓰이게 된 전후 사정을 알게 되었다.


1. 코로나가 끝난 이후로 감염 질환이 창궐하면서, 소아과 오픈런으로 새벽부터 부모들이 대기줄을 서고 심지어는 대기표 때문에 퀵서비스를 사용하고, 진료를 보려면 대기 3시간은 기본이라는 글이 먼저 올라왔다.


2. 그다음 올라온 글은

소아과가 돈이 안 되는 과라서 인기가 없어서 지원자가 없어서, 소아과 의사가 부족하고, 그래서 대기가 3시간이라는 글이었다.


3. 그다음 세 번째 글은

의사 중에 돈이 안 되는 소아과조차도, 소위 SKY 나온 IT 개발자보다도 돈을 많이 받는다면서, 이러니 의대로 지원자가 몰리는 거 아니냐 라는 글이 올라왔다.


4. 그리고 네 번째 글이 바로 대망의, 위에 올린 사진.

기껏해야 장염, 감기약 처방해 주는 거 너무 쉬워 보이는데, 두 달이면 배울 수 있겠다며

개발자가 더 어려운 일을 하니까 동네 소아과 의사보다 더 대우받아야 된다는 해당 글이 올라왔다.




https://blog.naver.com/knowist/222794729661

위 블로그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이신 분이 운영하는 블로그이다.

이분에 쓰신 글의 일부를 발췌해서 인용해 보겠다. 직접 가서 보셔도 좋다.


출처 - 펜시브 <마취 중 진담> 네이버 블로그.


글에 약간의 냉소와 비꼼이 들어있어서 (^^) 이해가 언뜻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의사들 사이에서, 소아과 의사를 "쉬워서" 접근하는 사람은 단 1명도 없다.

대학병원에서만 봐도, 소아과는 꼭 "보호자"라는 변수를 제외하더라도 수련 난이도로 최상에 속하는 과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병동과 외래까지. 사실상 수술방을 제외한 모든 파트에서 메인 잡을 가장 많이 하는 과이고,

산부인과에서 조산아(미숙아) 또는 선천성 기형아가 태어나는 경우에는, 수술방까지도 인볼브 하는 과이다. 


그렇다면 위의 글에서 말하는 대로
"동네" 소아과 의사는 감기, 장염만 보니까 편하고 쉬울까?

역시나 마찬가지로, "보호자"와 "환자"를 같이 상대해야 한다는 어려움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진료 난이도는 역시나 최상에 속하는 과다.

아이들은 어른과 다르게 질환의 특성이 비특이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명확하지 않은 애매한 발열, 애매한 복통, 애매한 호흡기 증상들이, 어른에서는 그냥 넘어가도 별일 없었던 대부분의 경우와 다르게,

불과 1~2시간 만에 생사를 가르는 질환으로 바뀌거나 발전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모두가 거품 물고 소아과 의사를 욕했던, 하지만 최종적으로 대법원 "무죄"판결을 받은 이대목동 신생아 중환자실 사건조차도, 징조가 나타난 순간부터 불과 4시간 만에 4명의 아이가 사망했다.


동네에서 열나는 걸로 가볍게 진료를 보고 나서, 불과 2~3시간 만에 알고 보니 뇌수막염이거나, 중증 감염질환일 수도 있는 게 바로 "소아"진료이며, 그걸 오랜 수련과 경험으로 캐치해 내는 게 소아과 의사인 것이다.


더군다나 소아과는 "환자"와 직접 소통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보호자"를 통해서 한번 걸러서 상태를 파악하게 된다. 질환의 파악이 성인보다 더 어려운데, 질환의 속도나 중증도도 성인보다 더 어려운 것이다.



남이 하는 일이 쉬워 보인다면, 그건 그 사람이 엄청난 고수라는 뜻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는, 다른 모든 분야의 일반인이다.


는 의사이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며, 성장의학 전문의이지만,

그 외의 분야에 대해서는 일반인이다. 세무, 회계, 자동차, 인테리어, 건축 등. 나는 그저 일반인일 뿐이다.

그렇기에 세무 업무를 모르면 세무사를 찾아가고, 차가 고장 나면 카센터에 가고, 집에서 물이 면 배관 업체에 연락해서 전문가를 만난다.

그 사람이 일을 척척해낸다는 것은,

그 일이 쉬운 게 아니고,

그 사람이 일을 아주 제대로 하고 있는 증거이다.


해당 글을 쓰신 개발자 분께서 정확히 어떤 일을 하시는지 나는 모르고, 나는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해서 굉장히 무지하다.

그렇기에 개발자 분들이 하는 일을 당연히 존중하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물어볼 것이며, 혹시 그 일이 수월하게 굴러간다고 해서 함부로 하는 일에 대해서 폄하하지 않을 것이다.


부디, 제가 IT 개발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너그러운 시선으로 소아과 의사들을 바라봐주셨으면 한다.

지금 여러분의 아이가 진료받고 있는 동네의 평범한 의사들은, 사실 모두가 사선을 넘어 수련받은 소아 청소년 진료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며, 해당 분야의 첨병이다.


그리고 정말 스스로도 아쉽고, 무서운 일이지만

소아 진료에 대한 대우뿐만 아니라 인식조차도 이렇다면,

정말 굉장히 많은 소아과 의사들이 이 일을 그만둘 것이다.

농담이 아니고, 필자 또한 언제나 고민하고 있으며,

이미 많은 소아과 의사들이 소아 진료를 떠났음을 꼭 알아주셨으면 한다.


https://blog.naver.com/bigdot17/223308330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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