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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보건의사 (공보의) - 의사들의 군 복무 (5)

갑작스러운 근무지 변화, 의료 취약 지역의 현실

https://brunch.co.kr/@bigdot17/72

3월 중순, 3년의 군 복무를 마친 공중보건의사들이 전역 절차를 마치고, 아직 신규 공보의들이 오기 전, 공백기간이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의료원 응급실 당직 근무를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의료원 소아청소년과 외래 진료로 옮길 것인지 2가지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근무가 편하고 한적한 보건지소는, 아직 저에게는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응급실 근무는 일할 때는 24시간 당직에, 낮밤에 뒤바뀌어서 매우 힘들었지만, 대신 쉬는 날을 길게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소아과 외래 진료는 정시 출근 정시 퇴근에, 원래 전공인 소아 환자들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대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항상 OO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통 걸려왔습니다.


"네, 여기 XX군 보건소 공보의 담당 주무관입니다. OO군 소아청소년과 선생님 되시죠?"

"네, 맞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아, 다름 아니고 선생님 지금 응급실 근무 중이시죠?"

"네. 맞습니다."

"아, 아직 다른 연락을 못 받으셨군요. 저희 군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 아시죠?"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아, 저희 XX군은 OO군처럼 보건의료원이 없고 보건소만 있어서, 지금 병원에 공보의들을 배치하고 있어요."

"네, 지금 전화주신 곳도 그냥 보건소인 거죠?"

"네, 맞습니다. 저희는 의료원 시설은 없어요. 그동안 XX지역 병원 공보의를 위한 티오를 받지 못했다가, 이번에 보건복지부에서 승인이 나서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응급실 진료가 가능하신 전문의 선생님을 모시려고, 먼저 @@@선생님께 전화드렸더니, 본인은 결혼을 하셔서 당직 근무는 원치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다른 분을 추천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선생님을 얘기하셨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한참 듣고 통화를 끊고 난 뒤, 잠시 후 친구 @@@에게 전화가 왔고,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친구에게 전화가 오기도 전에 XX군 보건소에서 너무 서둘러서 연락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병원 담당자분에게도 전화가 왔습니다.

사실 한번 시군 지역이 정해진 경우, 해당 광역지역의 공보의 도대표를 하거나, 섬 근무 등 격오지가 아닌 이상, 지역을 옮기는 건 흔한 경우는 아닙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또는 광역 단체 차원에서 필요한 과의 전문의가 있는 경우, 해당 시군의 요청을 받고 움직이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하더군요. 저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요청이 아닌 강제로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해당 지역으로 와달라고 해서 지역 이동을 하게 해 놓고서는, 자리가 마련이 안돼서 처음 얘기한 것과 전혀 다른 진료를 보는 곳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문서와 서류로 확인된 자리가 아니라면, 위험합니다. 꼭 보건소 담당자, 시/군청 담당자, 도청 담당자와 통화해서 근무 환경, 근무 조건, 진료 상황 등을 이중, 삼중 확인 하셔야 됩니다.)


많은 고민을 했고, 결국 저는 근무 지역을 옮기기로 했습니다.

일단 제 고향인 AA시와 더 가까워서, 출근 및 퇴근의 운전 시간이 많이 줄어들 수 있었습니다. KTX역과도 더 가까워져서 서울이나 다른 지역 가기에도 훨씬 수월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차이점은, CT 외에도 MRI도 있으며, 야간에도 혈액검사가 가능했고, 입원도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아마 이 글을 보시는 많은 의사 선생님들 중에, 지금 위 문장을 보시고는, 뭐지? 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음,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어차피 제 이름을 걸고 일을 하는 상황이라면, 주변 환경이 뒷받침되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환자 케어가 가능한 곳을 더 선호합니다. 물론, 그만큼 진료 환자수도 많아지고, 중환자가 오는 비율도 훨씬 높을 겁니다. 하지만, 차라리 진료를 많이 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앞의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OO군 보건의료원은 야간 혈액검사도 안되고, 입원도 안되고, 기본적인 검사 시설도 거의 없다시피 한 곳입니다. 문제는 지자체와 보건복지부-보건소, 119 서로 제대로 소통도 되지 않아서, 아무 시설도 없고 검사도 안 되는 곳으로 무작정 환자를 밀고 들어옵니다. 여기서는 진료가 안된다고 설명하면, 여기 말고는 없다는 식으로 밀고 와서는 환자를 내려놓고 떠나버리는 119에게도 많은 실망을 했습니다. (이전까지 대학병원에서만 근무했던 저는 경험해보지 못한, 아주 무례한 119 대원 분도 있었습니다. 환자 상태도 모르고 인계도 할 줄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군 의무 복무하는 시골 의사니까, 그냥 대충 해도 된다고 생각한 걸까요.) 환자나 보호자 분들도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쉽게 수긍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실제 이곳이 어떤 상황인지를 잘 모르시기 때문이죠.


정치하시는 분들이나 정책을 만드시는 분들은, 무작정 전문의만 강제 배치 하거나 고용해 놓으면 알아서 병원이 굴러간다고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간단한 수술 하나, 상태가 위중한 중환자 처치만 하려 해도 숙련된 의사 2~3명, 수술이나 중환자 경험이 있는 간호사 4~5명이 동시에 일을 진행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24시간을 지켜야 하므로 2교대, 3교대를 해야 되니 그 인원은 2~3배가 되겠죠.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수술 도구나, 장비, 인공호흡장치, 생명유지장치, 주사약물 등이 갖춰져야 치료가 가능한 겁니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전문의만 공보의라는 이유로 배치해 두고, 연락도 없이 밀고 들어온다... 도대체 책임은 누가 지나요?


환자 분들이나 보호자 분들이 이해하기 어려우신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이 이렇습니다. 의료취약지역, 흔히 말하는 인구 5만 미만의 시골 시군은, 대부분 상황이 비슷합니다. 시설은 없고 경제적 지원도 안 해주면서 의사만 배치해 두고는 생색은 정치인이나 정책 만드는 사람들이 냅니다.


그래서 저는 차라리 야간에도 검사와 입원이 가능한 곳이, 비록 제가 일이 많아지고 힘들더라도, 더 낫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일하는 병원에서 보든, 아니면 더 상급 병원으로 보내든, 적어도 제 책임일 때만큼은 환자들에게 최선으로, 부끄럽지 않게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렇게 지역을 옮기게 되면서, 저는 다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분들과, 새로운 형태로 응급실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이전 근무지와 비교하면 장단점이 있지만,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됩니다.


공중보건의사에 대한 글은 이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일단 가장 먼저, 지금도 나라를 위해 본인의 피 같은 인생의 시간을 바치고 계시는, 모든 국군장병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누가 뭐라 해도 여러분들 덕분에 이 나라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군대라는 곳에서 자유를 억압받으며 희생해 주는 여러분들 덕입니다. 나라에서 국군장병들을 위한 현실적인 보상책이 하루빨리 나와줬으면 합니다.

그리고 군의관 선생님들, 바로 제 선배이고, 동기이고, 후배인 의사 여러분. 대부분 공보의보다 더 열악하고 힘든 상황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저는 전공과 때문인지 공보의로 오게 되었지만, 항상 군의관 여러분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 가지고 있습니다. 제 친한 피부과 군의관 선생님 한 분은, 원인 모를 탈모로 고통받는 어린 부대원을 치료해 줘야겠다며, 사방팔방 알아보시더니 생물학적 제재를 구해서 탈모를 치료해 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열악하고 억압된 환경에서도 더 좋은 진료를 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군의관님들께, 존경을 표합니다.

그리고 동료 공보의 선생님들. 비록 군의관보다 좀 더 나은 환경이라고 하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환경에서 어렵게 진료하고 계신 점, 저도 지금 겪고 있어서,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조금이나마 환자 분들에게 도움 돼 보고자, 또는 당연한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오늘도 고군분투하시고 계실 선생님들에게 힘내시라고, 말씀 올립니다.

군의관과 공보의의 복무 37개월은, 그동안의 다른 군 복무가 줄어온 과정을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의관과 공보의뿐만 아니라 공중보건수의사, 군 법무관 등, 지나치게 긴 복무기간이 어서 현실성 있게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비록 저는 이미 복무 중이라 상관없겠지만, 후배님들 때라도 어서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제 글이 의사들의 군 복무를 이해하는 아주 작은 계기만 되더라도, 저는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공보의, 군의관뿐만 아니라, 모든 군인 분들, 의무 복무를 하시는 분들 등, 나라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작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https://blog.naver.com/bigdot17/223004175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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