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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한 건 가해자다.
피해자는 "사고"를 당한 거고.

그리고 사고는 누구한테나 일어나지. 영화 <스포트라이트>

피해자가 있는,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반드시 지켜야 할 점이 있다면,


1. 피해자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되, 전시하지 말 것.

2. 가해자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것.


이 2가지라고 생각한다.

결국 판단은 보는 관객들의 몫이기에, 더욱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아이들의 인생을 망가뜨린 가톨릭 사제들의 최악의 범죄,

그 피해자들과 사건을 쫓는 기자들을 다룬 영화, <스포트라이트>이다.


영화를 보며 가장 인상 깊은 건, 저널리즘, 말 그대로 기자 정신이다. 

기사를 내보내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들은 스스로를 검열한다. 

기사를 내보내면서 생기는 2차 피해는 없는지. 

9/11 테러 사태로 인해 이 기사가 묻히지는 않을지. 

기사 단어 하나하나의 논조와, 타이밍까지도. 그들은 스스로에게 엄격했다.


자극적인 사건일수록, 이를 다루는 언론이 차갑고 냉정하고, 사실만을 전달하려고 애써야 한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비극적인 사건들과, 그 사건을 다루던 언론의 태도가 어떠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조회 수, 클릭 수, 뷰 수에 눈이 뒤집혀서는, 사실 확인도 안 된 내용을 내보내진 않았는지.

어느 한쪽 진영을 대변하려고, 일방적인 기사를 내보내진 않았는지.

사실은 선택적으로 취득하진 않았는지.

맞는 말인지 따져보기 전에, "누가 말했는지"부터 확인하고 환호를 보내진 않았는지. 


영화는 우리가 "피해자"가 있는 사건을 다룰 때 어떠해야 되는지 모범을 보여준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실제 기자들만큼이나 톤 다운되어 진행된다. 


그 흔한 눈물 쥐어짜기 배경음악도 없고,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드럼 베이스도 없다. 시종일관 덤덤한 이 영화는, 그래서 더 실제 사건에 몰입할 수 있고, 관객들이 순수하게 분노를 느끼도록 도와준다.


기자들의 모범적인 태도를 그대로 반영하듯, 영화도 모범적 태도로 이들을 바라본다.




일상의 폭력은 우리 가까이에 존재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우리는 그저 운이 좋을 뿐이다. 

절대자의 이름을 빌린 저들의 위세가 그저 운 좋게, 나를 피해 갔을 뿐이다. 

결국 학대받는 아이들은 구원받을 그 수많은 기회를 놓친 채, 구원을 핑계 삼아 욕정을 채우려는 사제들에게 짓밟혔다.

결국 학대받는 아이들은 구원받을 그 수많은 기회를 놓친 채, 구원을 핑계 삼아 욕정을 채우려는 사제들에게 짓밟혔다.


우리는 시련을 마주하면, 다른 이유를 찾으려 한다.

문제는 그러한 태도가, 피해자를 대할 때도 이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왜 거기 있었어."

"그러니까 항상 주위를 살피고 조심해야지."

"옷을 좀 더 얌전하게 입고, 눈에 띄지 말아야지."

"그러길래 올해 초에 점집 가서 운수 좀 보라니깐."

"신을 더 열심히 믿었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그래, 물론 나쁜 상황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과한 대비를 하고, 복을 비는 것이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말은 이미 피해를 입은 당사자에게 할 말은 아니다.


범죄는 "사고"이다.

그냥 운이 없어서 하필 나에게 찾아온, 지독한 사고인 것이다.

범죄라는 사고에서, 다른 원인이나 당위를 찾을 필요가 없다.

범죄자, 가해자가 그 원인이다.


우리가 비난하고 처벌해야 할 대상은,
그 "사고"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범죄자, 가해자이다.  



영화 속 가톨릭 사제들이 말한다. 

"지식도 중요하지만, 믿음은 훨씬 더 중요합니다."


기자들이 말한다.

"믿음 따위로 진실을 가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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