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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한 발버둥은 추하다. 그래도 살아내야지.

살아낸 것만으로도 박수받아야 마땅하다. 영화 <버드맨>

영화의 연출이나 구도, 미장센, 촬영 기법에 대해 많은 지식이 없는 일반인 입장에서, 영화에 대한 평론가들의 분석을 보기 전에 실시간으로 연출에 대한 감탄을 하기는 어렵다.

아, 뭔가 영화가 되게 좋은데...? 하고 나서 평론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저 부분은 저렇게 촬영해서 더 살아난 거구나. 정도로 깨닫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간혹 너무 과한 연출 및 기법에 영화의 주제가 먹혀버리는 불상사도 벌어진다. (대표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이 그런 경우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연출은 무언가 대단하다."는걸 실시간으로 느끼면서, 그 연출로 인해 주제가 확 와닿고 빠져드는 영화를 만나기란, 쉬운 일은 아닐 거다.


하지만 그런 영화가 분명 있다.


마이클 키튼과 에드워드 노튼이 처음 만나는 연습 장면에서 둘의 시선 뺏기, 호흡 잡기, 호흡 훔치기는 보면서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와 임마누엘 루베즈키의 연출과 촬영의 극한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특히 루베즈키의 롱테이크 촬영이 경지에 이른 영화이다.

영화 초반의 이 장면에서 나는 숨 하나도 조심해서 쉬어야만 했다. 완전히 몰입되었거든.


이 영화가 그런 영화다. 영화 <버드맨>.

 


리건은 왕년의 스타이고, 추락해 버린 히어로 버드맨이 그의 분신이다. 블록버스터는 이미 그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남아있는 삶의 의지와 연기 내공을 쥐어짜서 브로드웨이에서 살아남아보려 하지만, 냉소적인 관객들과 평단, 그를 압박하는 후배들 틈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리건은 왕년의 스타이고, 현재의 부적응자이다. 그는 여전히 "진짜" 무언가를 찾는다. 만약 그가 찾는 "진짜"라는 게 사실 없는 거라면, 돈이라도 벌어야 할 텐데.


이따금씩 찾아오는 버드맨 망상은 실제로 그가 내지르는 소리만큼이나 초라하고, 의미 없다. 그는 더 이상 하늘을 날지 못한다. 비웃음거리라도 좋으니, 이제는 현실에서 울부짖어야 한다.

그는 여전히 과거의 버드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과거의 영광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그가 과거의 영광이라는 망상을 떨쳐내고 현실로 전환되는 장면은 바로 그가 마지막 막을 위해 실제 총을 들고 공연 무대에서 연기하는 순간이다.

그는 내뱉는 대사들은 곧 자신에게 던지는 일갈이다.

관객들은 그가 총 맞는 연기를 참 잘한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자신의 껍데기에게 당기는 진짜 방아쇠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머리를 빗나간 총알은 코를 지났고, 수술 후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버드맨 그 자체이다.

총 한 발로는 부족했던 걸까.

"슈렉"에서의 피오나 공주가 "아름다운 본모습"으로 돌아가는 마법 후 초록색 그대로인 것처럼.
총 한 발로는 부족했던 걸까.

그의 연기는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받는다.

버드맨이 내 껍데기라고 생각했는데,
껍데기 안의 내가 버드맨으로 자라나 있었다.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버드맨 또한 역시 그의 본모습 중 하나였던 것이다. 자신의 초라한 모습까지도 사랑해 줄 수 있었더라면 좀 더 아름답게 품어낼 수 있었을 것을.

화장실 옆 버드맨 망상의 핀잔을 듣던 그는 창문 밖으로...

과연 추락했을까? 날아올랐을까?
추락했다면 어떤 모습이고, 날아올랐다면 어떤 모습일까?


필자는 추락한 것이 아닌 날아올랐다고 생각한다. 그는 여전히 남아있는 버드맨 망상이 싫어서 자살한 것이 아니라, 버드맨 망상을 끌어안고 날아오른 것이다.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며 함께 날갯짓한 것이다.

이제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난 그는

인생에서도 진짜 자신의 주인이 되었다.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고,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은 추하고 측은하다.

하지만 살아남았다면, 그것으로 됐다.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연극이 끝난 뒤의 커튼콜, 관객들의 박수갈채, 소중한 사람들의 사랑한다는 말.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는다면,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다.

자유롭게 날아오르자. 상처까지도 다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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