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별거 있나? 그냥 사는 거지!
"인생 뭐 별거 있나? 그냥 사는 거지" 24살부터 회사를 다니다 보니, 29살쯤 되니 벌써 6년 차 직장인이었다. 직장인의 대화는 뻔했다. 대화가 뻔한 이유는 일상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어제 만난 친구는 이번에 새로운 재테크를 시작했는데 어떻다더라부터 시작해서, 여름휴가에는 강릉을 가야겠다는 등 회사를 뺀 나머지의 뻔한 이야기로 하루를 채웠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요즘 어떻게 지내?"라는 물음에 나는 항상 "그냥 그렇게 지내지"라는 대답이 절로 나왔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월급을 받고 있었으며, 이제 더 이상 학생도 아니고 취준생도 아니기에 내가 해야 하는 힘든 일 같은 건 없었다. 단지 나는 직장에서 꾸준히 일을 하면서 나이가 자연스럽게 드는 것을 지켜보면 되는 일이었다. 위의 부장님들도 그렇게 지내는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하루 일상은 회사에서 보내고 저녁에는 좋아하는 취미를 찾거나 가끔은 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마무리하면 좋다고 생각했다. 가끔 회사 때문에 스트레를 받는 날이면 아침에 회사 근처에 있는 바나익스프레스에서 2,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행복으로 친한 대리님과 수다를 떨면 느껴지는 잠깐의 행복으로 스트레스를 떨칠 수 있었다.
그렇게 안정적인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내던 내가 무너지던 계기는 평상시에는 믿지 않았던 아홉수에 일어난 아빠의 수술이었다. 건강하던 아빠가 두통을 호소했고, 머리가 너무 아파 찾아간 서울 신촌의 대학병원에서 뇌하수체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전까지 나는 '내'가 쌓아오는 실력, 모아가는 돈이 전부였는데 당연시 여겼던 가족이 한번 휘청이고 나니 일상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빠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매일 잠을 잘 때 불안했고, 아침에 눈을 떠도 불안했다. 특히 어느 날 아침 6시쯤에 동생에게서 전화가 와 "아빠 응급실 가셨대"라는 말을 들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날을 기억한다. 나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다'라는 말이 이 말이었구나 라는 걸 이제야 이해할 수 있다. 그건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파도의 출렁임 같이 요동치는 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아빠가 아픈 후부터는 누군가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되는 순간이 많아졌다. 인스타그램에 병원 사진을 올리긴 어려웠다. 꼭 병원 사진이 아니더라도 '가족 중 누가 아파서 내가 마음이 많이 힘드네'라는 말도 올리기 힘들었다.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SNS는 화려하고 기쁜 순간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친구들의 일상도 버거워져서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그곳의 화려한 이야기가 나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서울 어느 핫한 연남동의 카페와 맛집, 가끔은 기분 내는 강남의 오마카세, 힐링을 위해 떠나는 제주도 여행, 그리고 감동적인 선물 증정까지- 나는 온라인 공간에서 피로감을 느꼈다. 그리고 질투도 났다. 대부분 '나는 똑같은 직장인인데 나는 지금 집에 있는데 친구들은 핫플 음식점에 갔네. 나도 너무 가고 싶다. ' , '나도 직장인인데 너무 여행을 안 갔나 봐. 5월엔 꼭 제주도를 가야겠어'와 같은 것이었다.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런 감정이 깊어질수록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하는 30대부터 80대는 '질투'를 빼면 무엇이 남나 싶었다. 평상시에 좋아했던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이 시가 문득 떠올랐다. 그때는 '아니 그렇게 질투가 많아서 되겠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그 마음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라는 말에 시선이 멈춘다. 희망과 질투는 어떻게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데 말이다. 이상하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무언가를 하고 싶고,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희망이 질투에서 비롯될 수 있다니.. 그 부분이 조금씩 이해가 되면서 나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그 출렁이는 파도와 같은 나의 허무한 감정은 결국 어떤 한 가지의 마음으로 모이게 되었는데, 그건 '나도 제대로 잘 살아보고 싶다'라는 마음이었다. 허무함과 공허함이 이렇게 희망적인 메시지로 귀결됐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허무함이나 질투 감을 가지면서 근근한 행복에 집착하지 말고, 정말 남들과 비교할 필요 없이 내 안에 있는 행복으로 '잘' 살아보고 싶어졌다. 누군가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을까? 인스타그램으로 남의 행복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인생으로 제대로 살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며칠을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드라마에서 보면 머릿속에 동그란 단어 뭉치들이 떠다니는 것과 비슷했다. 그 단어는 '퇴사'가 되기도 했다가 '여행'이 되기도 했다. 가끔은 '결혼'이 되기도 하다가 다시 슬그머니 작아져고 사라지기도 했다.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건지 주변에도 물어보면 좋겠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웠다. 어디로 이직할지 연봉은 얼마나 될지와 같은 이직 문제나 연인 문제와 같은 건 쉽게 물어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깊은 곳에서 나오는 이 질문은 오히려 물어보기 어려웠다. 혼자 고민하던 여러 나날들이 지나고 나는 일차적인 해답을 찾았다. 그건 바로 내가 가진 것,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특별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나의 재능을 찾는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