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3] - 친구와 함께 인도네시아 타케팅 유튜브 제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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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국에서 자주 사 먹는 편의점 제품을 사 왔습니다. 같이 먹어볼게요! "
급하게 빌린 홍대의 에어비엔비 어느 방에서 친구와 나는 카메라를 앞에 두고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먹다가 자꾸 웃음이 나서 큭큭 대면서 몇 번을 NG 냈는지 모른다. 다시 마음을 다듬은 후에 삼각김밥을 먹기 시작하다가 '맛있다'라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어 또 NG가 났다. 아니 유튜브 영상으로 볼 때는 '이거 먹기만 하면 돈 버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어떤 걸 먹을지, 어디서 먹을지, 맛 표현은 어떻게 할지, 리액션은 어떻게 할지.. 그리고 그걸 언제 다 편집하는지 정말로 머리를 꽁꽁 싸매야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유튜브는 이제 텔레비전을 대체할 만큼 자주 보는 수단이 되었지만, 내가 유튜버가 될 것이라곤 감히 상상도 못 했다. 조용히 회사를 다니는 회사원일 뿐이고, 지금 하고 있는 업무 외에는 내가 딱히 특출하게 잘하는 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장인 브이로그를 찍는 유튜버조차 조금은 특별하기 때문에 영상을 찍지 않겠냐고 단정 지었다. 그런 유튜버들은 대체적으로 집이 인스타 감성이 나게 이쁘다던가, 음식을 잘한다거나, 옷을 잘 입는 직장인일 게 뻔하지 않는가? 나처럼 정말 평범한 사람은 브이로그를 해도 아무도 안 볼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친구랑 유튜버를 시작하게 된 건 정말 즉흥적인 도전이었다. 당산의 한 카페에서 친구와 조각 케이크를 먹으며 회사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따분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정말 좋았던 순간을 회상하게 되었다. 나는 대학교 졸업 전에 인도네시아에 두 달간 봉사활동으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났던 사람들과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새롭고 좋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듣던 친구도 미국 유학 중 만난 인도네시아 친구와 즐겁게 놀았던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우리는 "우리가 만났던 인도네시아 친구들은 한국에 관심도 많고 호의적이더라. 그 친구들에게 한국을 소개해주면 좋지 않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 생각이 실행으로 이루어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왜냐면 성공이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린 정말 회사에 따분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만들어 보고 싶었던 그 무언가를 해내 보고 싶었다. 그 무언가가 '유튜브'였을 뿐이었다. 한국의 편의점 음식 먹방을 시작으로 이태원에 있는 인도네시아 음식점에도 카메라를 들고 갔다.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인도네시아 음식을 소개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둘씩 영상을 올리면서 우연히 인도네시아 관광청에서 제작한 'wonderful indonesia' 영상을 보게 되었다. 관련 영상을 찾다 보니 많은 외국인들이 해당 영상에 대해 '리액션' 영상을 제작하는 걸 알게 되었다. 리액션 영상은 특정 영상을 보고 리액션을 취하고 리뷰를 남기는 영상을 말한다. 그렇게 우리도 리액션 영상을 찍게 되었고 그게 조회수가 폭발하면서 구독자 수가 1,000명을 넘게 되었다.!
구독자 수가 1,000명이 넘어가니 즐겁기도 하면서 얼떨떨하기도 했다. 회사에 다니는 꾸준함 외에는 잘하는 것도 딱히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올린 영상에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구독을 눌러줬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것이 단기적으로 리액션 영상에 대한 궁금함으로 구독을 눌렀을지라도 말이다. 그 천이라는 숫자는 회사원 '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실어 넣어줬다. 공부로 대학을 가고, 면접을 봐서 회사에 합격하는 것과는 다른 기쁨이었다. 엄마 아빠가 시키지 않은 도전이었고 생계를 위해 꼭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해보고 싶어서 한 일이고,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해낸 일이었다. 그건 나의 일상을 회사원이라는 3글자로만 단정 짓기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이제 나는 회사원이기도 하면서 유튜버이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일이 터져버렸다. 유튜브가 더 커져서 구독자가 5,000명이 돼버린 것이다. 이건 친구와 나에게 없던 시나리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