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니깐

1년간 정리한 자료를 모르고 삭제해버린 자의 최후

by 최우주
과거의 내가 만들어낸 최고의 산출물은
자료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이 글은 1년간 열심히 정리하고 모은 저의 애착 인형과 같은 notion 자료를 잃고 쓰는

슬프지만 미래지향적인 글입니다...





최근에 회사 내에서 업무를 변경했다. 데이터 분석 업무를 하기 위해서 정말 왕기초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1년 전쯤부터 지금까지 정리하며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건 협업 정리 툴 Notion이었다.


정리 좀 한다는 사람들은 모두 안다는 이 툴!

핸드폰이나 노트북, 전자기기에서 접근 가능하며 다양한 탬플릿을 제공해서 업무노트, 일정관리, 가계부 등 다양하게 쓸 수 있는 Notion을 사용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정리를 하다 보니 처음에는 빅데이터 분석 쪽만 정리하다, 가계부도 쓰다가, 일기도 쓰다가, 책 리뷰도 쓰다가, 내 일상 모두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노션' 자체가 내가 얼마큼 열심히 업무를 준비하고 일상을 보내는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되고 있었다.



notion.png 최근까지도 이렇게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평상시 부리지 않던 욕심을 부리다 큰 코를 다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다른 계정과 연동해서 몇 개의 탬플릿만 공유하면서 관리하는 게 어떨까?

하면서 만들다 지우 다를 반복...



결국 무언가 하나를 지우고 말았는데...

pexels-andrea-piacquadio-3812731.jpg

그게 바로 내 계정이었다...!!!!!!



사라져 버린 나의 일 년 치 결과물.

부랴부랴 Notion 고객센터에 문의 이메일을 남겼다.

30일 이내라면 복구가 가능할 수 있다는 안내사항이 있었지만 불안했다.

시스템이라는 게, 복구가 완전히 되긴 어려울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알기 때문일까.


처음에는 내 기록이 모두 사라졌다는 상실감이 들었다.

내가 일 년간 기록한 방대한 공부 기록.

가계부.

일정.

계획.


모두 사라졌다.

어떡하지?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오히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정리한 기록이 사라진 것은 아쉽지만, 사라진 건 기록이지 '내'가 아니다.

결국 살아있는 산출물은 저 자료가 아니라 나여야 한다.


내가 정리했던 노트가 사라진다고 내 머릿속에 지식이 사라지는 게 아니며,

계획했던 것이 사라진다고 앞으로 계획을 못 세우는 게 아니다.


그 기록을 기록한 '내'가 살아있으니,

앞으로 다시 기록하고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오히려-

과거의 내가 이렇게 이뤄냈다고 자랑할만한 것이 사라졌으니 다행일지도 모른다.

2022년을 정리하며 2023년을 준비하고 싶었는데 이 사건이 나를 새로운 마음으로 만들어준 것 같은 홀가분한 기분까지 들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있다.

지금 부대에 새 술을 계속 쌓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만들어온 것들은 버리기가 언제나 아쉽다.

그게 내 전부인 것 같다.

그러나 부대는 부대일 뿐이다. 중요한 건 '새' 술이다.


다가오는 2023년은

내가 지금까지 이뤄오고 쌓아온 것들은 헌 부대에 잘 담아놓고(비록 사라졌다 해도)

새 부대에 새 술을 담는 일 년을 살고 싶다.



(몇 주간 고민했던 2023년 일 년의 방향성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렇게 혹독한 사건이 일어난 걸까요..?

내 눈에 흐르는 건 눈물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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