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발견된 엄마의 일바지가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지난 주말, 한동안 펼쳐보지 못했던 사진첩으로 소소한 행복을 찾고자 했습니다. 책장 깊숙이 꽂혀 있었던 사진첩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오래됐음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묵은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거북스럽게 내 손끝을 자극했습니다.
'툭~툭~' 털어내고 펼쳐 든 사진첩에는 내가 자란 성장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풋풋했던 중고등학교 때부터, 힘들었지만 추억이 가장 많은 군 복무 시절까지, 사진첩 속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 간 듯한 착각에 빠진 시간이었습니다.
요즘 손안에 작은 세상 최첨단 5G 시대입니다. 손에 쥔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때와 장소 구애받지 않고 손쉽게 사진을 볼 수 있는 디지털 세상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맛볼 수 없는 아날로그 사진첩만의 정감이 내 마음의 정서를 흠뻑 적셔 놓았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내 시선을 유독 이끌게 만들었던 아주 특별한 사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언제 어느 때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을 찍어 아들 사진첩에 끼워 두셨을까요, 인자인 미소에 곱게 차려입은 개량한복. 예쁜 머플러를 살포시 목에 두른 채 찍은 엄마의 사진이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다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가장 곱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엄마의 사진은 나의 눈길을 오랫동안 붙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엄마를 이제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울컥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힐뻔했습니다.
엄마의 힘겨운 투병생활은 2008년도 4월 초순의 어느 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날 엄마는 저 멀리 전라도에서 먼길인 인천의 아들 집까지 달려오셨습니다. 본격적인 농사철을 앞두고 '바쁘면 못 온다' 하시면서 배낭 터질 듯 농산물을 가득 담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엄마는 가져오신 농산물로 손수 반찬을 만들어 밥상을 차리셨습니다. '아들~ 밥 먹거라' '나는 피곤해서 잠 좀 잘란다' 안방으로 들어가 누우신 엄마는 영영 일어나지 못하셨습니다. 그 이후 엄마는 10여 년의 기나긴 뇌경색 투병을 하시다 지난해 11월 25일 새벽, 저 하늘의 별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렇게 그날 소소한 행복을 찾고자 펼쳐 든 사진첩은 그 속에 담긴 엄마의 고달픈 인생의 쓰라린 기억만을 떠 올린 채 슬픈 엔딩으로 덮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저녁 다가올 봄을 앞두고 옷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된 엄마의 일바지는 나의 마음을 다시 한번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엄마는 평생을 일에만 파묻혀 사셨습니다. 없는 집에 시집와 8남매를 낳고 오로지 자식들만을 위한 헌신적 삶을 사셨던 엄마이셨습니다. 오히려 사진 속 어여쁜 한복이 낯설을 만큼 평생을 거의 일바지만을 입다시피 하셨습니다.
지금은 유품이 되어버린 이런 엄마의 일바지, 가족 누군가가 엄마에게 보내드리면 어떻게냐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세상 태어나 자식들만을 위해 진절머리가 나도록 일바지를 입으셨을 엄마에게 어떻게 또 그런 일바지를 그곳으로 보내드릴 수 있을까요,
설사 엄마가 보내달라고 통사정을 해도 보내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러니 하늘에 계신 엄마께서도 이제 일바지는 잊어 주세요, 그리고 찾지도 말아 주세요, 대신 그곳에서는 사진 속 엄마처럼 고운 한복만을 입고 늘 행복한 나날들만 보내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