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창 신부범 Feb 27. 2020

나는 이런 이발소가 오히려 좋다

그래서 이발소 문을 계속 두드릴 것이다.

지난주 목요일이다. 이른 퇴근 후 단골로 가는 이발소 문을 열었다. 영업 종료가 가까워서인지 손님은 없었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어 TV를 시청하시던 이발소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시면서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앉으시죠' 마치 VIP 손님을 모시듯 공손히 안내를 하는 아저씨의 모습은 수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건 나는 어느 의자보다 안락한 이발 전용의자에 앉았다. 기다렸다듯 내 곁으로 다가온 아저씨는 내 상위 옷깃을 안쪽으로 고이 접어 넣는다. 그리고 뽀송뽀송한 수건으로 목둘레를 포근하게 감싼 후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은은한 향기가 나는 새하얀 보자기를 덮어 씌우는 것으로 이발 채비를 마치신다.


여기서부터 나는 아저씨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된다.'머리숱이 많으니까 약간 솎아 주시고요' '옆머리와 뒷머리를 너무 짧게 처 올리지 마시고 적당히 깎아 주세요'라는 등의 원하는 스타일을 굳이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 아저씨 또한 '어떤 스타일로 깎아 드릴까요'라고 묻지도 않는다. 수년의 단골인만큼 내가 원하는 머리스타일을 훤히 깨 뚫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발은 시작되고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는 동안 이발은 끝이 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말씀을 하시면서도 아저씨의 가위 놀림은 현란하다. 그리고 한치의 흔들림도 없다. 좌우 옆머리 등 전반적인 머리 상태가 마치 자를 되고 자른 듯 정확해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이게 바로 수십 년 이발 경력의 아저씨만의 특급 노하우로 내가 모든 것을 편하게 맡기는 이유다.


이발이 끝나고 나면 얼굴 면도 차례다. 이발을 하기 위해 목에 감았던 수건과 하얀 보자기를 걷어 낸 아저씨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나를 살며시 눕히신다. 그리고 면도용 크림을 내 얼굴에 골고루 펴 바른 후 이마와 양볼 그리고 턱과 코밑 털 순으로 면도를 시작한다. 행여 미처 깎여 나가지 않는 털 한올이라도 있지 않나 손끝의 감각을 이용 일일이 확인하면서 면도에 최선을 다하신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 한 장면

면도까지 끝이 나고 이제 머리를 감을 순서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세면대 의자로 안내한 할아버지는 머리 감을 준비를 다 취하신 후 내 머리 위에 차갑지도 그렇다고 뜨겁지도 않은 아주 최적의 온도의 물을 끼얹고는 머리를 감기신다. 이 또한 수십 년의 경험에서 나온 아저씨만의 물 온도 감지법으로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머리를 감기는데도 세심한 배려가 이어진다. 머리를 너무 세게 팍팍 문지르거나 그렇다고 너무 약하게 감기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 가격까지 비싸 보인 유명 브랜드 샴푸를 사용하신다. 그리고 '뽀도독~,뽀도독~' 소리가 날 정도로 깨끗하게 머리를 헹궈주신다. 눈 주위로 흘러내린 물까지 깔끔하게 닦아 내는 세심함으로 머리 감기기는 끝이 난다.


그런데 아저씨는 이것으로 이발을 끝내지 않으신다. 다시 의자에 앉을 것을 권유하고 요리조리 머리 상태를 살펴보며 가위로 다시 한번 다듬어 주신다. 마지막으로 드라이기로 머리를 뽀송뽀송 말려주시고 얼굴에 스킨과 로션으로 마무리 해 주신 것으로 이발의 전 과정이 끝이 난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아저씨의 이발서비스를 받으면 적어도 그날 하루만은 상쾌함으로 내 마음까지 개운하고 행복하다.


이곳 이발소를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단돈 만원으로 이 세상 어디 가서 이렇게 대통령 부럽지 않은  융성한 대접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그런데 요즘 이런 이발소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고 하니 무척 아쉽기만 하다. 실제로  지금 주택가 등지에서 이발소 찾기가 어려워지면서 이발소 마니아들이 발품까지 팔아 찾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발소가 사라진 이유를 시대에 따라 변화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틀렸다고 할 수 없는 맞는 말이다. 내가 찾는 단골 이발소도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이발소가 오히려 좋다. 이발소만의 후덕한 인심이 변하지 않아서 좋고 가식적이지도 않으면서도 진정성 있는 서비스 정신이 그대로여서 좋다. 그래서 나는 누가 뭐래도 이발소 문을 계속 두드릴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금전적 베풂만이 덕을 쌓는 것은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