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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Jun 12. 2020

아! 보고 싶구나, 그때 나의 전우들!

지금은 50대 장년이 되어있을 그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내 중요 보관함에 군 전역 시 후임병들에게서 받은 전역 기념액자가 고이 간직되어 있다. 당시 병사들의 월급여가 이등병 5,500원, 일병 6,000원, 상병 6,500원, 병장 8,300원이던 시절이었다. 빵 하나 선뜻 사 먹지 못하고 주저할 수밖에 없는 형편없는 월급을 쪼개 선물해 준 전역 기념액자이기에 그 어느 것보다도 소중한 애장품일 수밖에 없다.


가끔씩 전역 기념액자를 보면 군대생활 중에 있었던 즐겁고 유쾌한 일들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억도 교차된다. 지금은 생소하지만 그 당시 유가증권 형태인 '소액환'이라는 것이 있었다. 적은 금액의 송금에 쓰이는 우편환으로 어느 우체국에서나 환증서에 기재된 금액을 현금으로 교환해 주는 증서가 바로 소액환이다.


당시 나는 전방부대인 보병 모사단 모연대 모대대 본부중대 참모부 지원과 서기병으로 근무했다. 지원과 서기병은 대대를 총괄하는 행정업무가 주류를 이루지만 이 외에 연대본부로부터 하달된 전언통신문이나 각종 편지와 등기우편물을 접수해 각 중대로 내려 보내는 업무도 담당했다.


이런 지원과 서기병의 업무를 상병 때까지 무리 없이 진행해 오던 어느 날이었다. 연대본부 인사계(당시 계급은 상사)라는 사람에게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이유인즉 우리 대대 소속 모 중대 병사가 '부모가 보낸 5만 원짜리 소액환을 수령하지 못했다'는 연락이 왔는데 어찌 된 상황인지 물어보기 위한 전화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소액환을 연대본부로부터 내가 받았다는 사인은 되어 있었지만 해당 병사는 그걸 받지를 못했다니 이에 대한 자초지종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런 경우를 두고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하는 걸까, 연대본부로부터 인수 사인을 하고 분명히 해당 병사 중대로 내려 보냈는데 당사자는 받지를 못했다는 말에 그저 황당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서류상 사인을 한 내가 빼도 박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어떻게 '이 어려운 난관을 뚫어가야 하나' 뜬눈의 고민으로 하룻밤이 지나고 그다음 날이었다. 우리 부대에 헌병대 백차 한 대가 들이닥쳤다. 죄를 지은 게 없으니 마음만은 떳떳했지만 헌병대 차량에 오르는 것 자체만으로도 두려움은 컸다.


그렇게 그날 나는 사단 현병대 유치장에 수감되었고, 소액환 실종사건 대한 수사가 이루어졌다. 당시 민간인 복장의 수사과장이라는 사람이 하루에 세 차례씩이나 나를 조사실로 불러 때론 부드러운 말로 때론 억압적인 말로 소액환 절취 혐의를 시인하라며 추궁했다. 나 또한 '절대 아니다'라며 완강히 부인했지만 내 억울함이 쉽게 통할리는 없었다.


이런 나에게 수사관은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해 압박 수위를 높였다. 그리고는 '솔직히 시인만 하면 간단히 풀려날 수 있다' '왜 그렇게 일을 어렵게 만드느냐'며 협박 회유까지 하는 것이었다. '절도하지 않았어도 절도했다고 시인만 하면 금방 풀려 날 수 있다'는 수사관의 달콤한 회유 유혹에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밀고 당기는 조사가 한달가량 흐른 어느 날이었다. 유치장을 감시하는 헌병으로부터 나갈 준비를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검찰에 의해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으니 풀어 준다는 말이었다. 불기소 처분이란 사건이 죄가 되지 않거나, 범죄의 증거가 없거나 또는 공소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을 때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그렇게 나는 헌병대에서 풀려나 원 소속 부대로 복귀를 하게 됐다. 그런데 이런 나를 선임은 물론 전부대원들이 따뜻하게 맞이해 준 모습에서 눈물이 울컥 쏟아질뻔했다. 경위야 어찌 됐건 헌병대에서 불미스러운 혐의로 조사를 받고 온 나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봐 주지 않고 오히려 '고생 많이 했다'며 하나같이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부대원들에게서 나는 나머지 군생활을 무리 없이 할 용기를 얻었고 평생 잊지 못할 전우들로 남아있다.


그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덧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제 그들 모두는 50대 장년이 되었을 것이고 지금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아! 보고 싶구나 그때 나의 전우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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